환자 본인에, 설명의 구체성까지 판단근거 삼아

의사가 환자에게 어떤 의료행위를 할 것인지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설명의무 이행에 대해 법원이 깐깐하게 판단하고 있어 이에 대한 의료인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선 3건의 의료사고 관련 소송에 대한 선고가 내려졌다. 재미있는 건 이 세 건의 사건 모두 피고인 의료인 측이 전부 패소했는데 패소한 사유가 ‘설명의무 위반’이었다.

서울중앙지법 제18민사부는 환자 A씨가 B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오른쪽 뺨에 통증이 발생했고, 이에 대해 삼차신경통(심한 전기적 통증, 전격통이 삼차신경분지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영역에 수초에서 수분에 걸쳐 나타나는 안면통증증후군)이란 진단을 받고 B대학병원에 내원했다.

B대학병원 의료진은 측두부 MRI 검사를 실시하고 우측 전교 정맥이 삼차신경에 인정해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이 신경을 압박해 통증이 발생했다고 판단, 이에 대해 A씨에게 설명한 뒤 미세혈관감압술을 시행했다.

수술 도중 의료진은 우측 전교 동맥이 삼차신경을 심하게 압박하는 정도능 아닌 것으로 보여 미세혈관감압술만으로는 삼차신경통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삼차신경 측하부 1/4 정도를 절제하는 신경근부분절제술을 추가적으로 시행한 뒤 수술을 종료했다.

수술을 받은 뒤 A씨는 의료진이 삼차신경통과 무관한 다른 신경을 제거했고, 수술 중 신경 일부를 절제한 가능성이 있다거나 절제 시 안면마비 등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유는 설명의무 위반이었다.

재판부는 “B대학병원 의료진이 수술 하루 전날 A씨의 아들에게 수술방법과 합병증이 있음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수술동의서를 작성받은 사실과 동의서에 ‘환자가 의사결정을 하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음’이라고 표시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며 “그러나 A씨가 수술 당시 의사결정을 하거나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A씨의 아들에 대한 설명을 A씨에 대한 설명의무 이행이라고 평가할 수 없고 의료진이 A씨에게 이 사건 수술에 관한 설명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 의료진이 A씨에 대한 이 사건 수술에 관한 설명의무를 게을리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의료소송을 다룬 사건에서도 의료진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C학교법인이 운영하는 C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환자 D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원이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환자의 손을 들어준 것.

D씨는 담석 제거를 위해 C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 의료진은 시술을 시행하기 위해 미다졸람, 페치딘, 프로포폴을 투여한 뒤 시술을 시작했다. 그러나 D씨의 산소포화도가 감소하자 의료진은 시술을 중단하고 미다졸람의 길항제인 플루닐을 투여했고 앰부배깅을 통해 산소를 최대용량으로 공급했다.

여기에 응급약물을 투여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D씨는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

이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미다졸람 내지 프로포폴 등을 사용한 마취의 경우 호흡억제, 기도폐쇄, 심혈관계 억제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으므로 의료진은 시술을 시행하기에 앞서 D씨에게 시술의 필요성, 마취 약물을 이용한 마취의 방법, 필요성, 부작용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환자 평가서에 이 사건 시술에 관한 동의서 등 확인란에 체크표시가 되어있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 같은 사실만으로 의료진이 D씨에게 시술 및 마취와 관련해 어떤 내용의 설명을 했는지와 설명의 구체성 정도 등을 알 수 없다”며 “의료진이 D씨로부터 시술과 마취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기재된 동의서 등을 받았음을 인정할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결했다.

비슷한 시기에 선고된 또 다른 의료소송에서도 설명의무 위반으로 의료인이 패소했다. 퇴행성 관절염을 앓던 환자에게 수술을 했지만 오히려 악화가 된 사건인데 재판부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수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재판부는 “의료진이 환자로부터 받은 청약서에는 ‘본인은 본인에 대한 수술/마취/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며 예상 또는 합병증과 후유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취지의 일반적인 내용만 기재돼 있을 뿐”이라며 “수술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고, 청약서마저 환자의 남편이 서명·날인을 해, 의료진이 환자에게 수술과 관련된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들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설명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 법원의 엄격한 태도가 드러났다며, 환자 ‘본인’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준래 변호사는 “설명의무란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환자 등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설명해 줘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며 “환자로부터 신체 침해에 관한 유효한 승낙을 받기 위한 전제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 변호사는 “이번 법원의 판결을 분석해 보면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사안에 따라 구분된다”고 전했다.

원칙적으로 설명의무를 위반하면 환자가 설명을 듣지 못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데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인 위자료만을 인정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설명의무 위반과 손해 발생사이에 상당한 정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설명의무 위반이 의료인의 의료과실과 동일시 할 정도의 중대한 정도 일 때에는 의료사고로 발생한 손해의 전부를 배상하게 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판례에 의하면 의사의 설명에 대한 승낙은 ‘환자 본인’의 승낙이어야 하고,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승낙을 받았더라도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이번에 선고된 판결 중 하나를 살펴보면 환자가 성인인 이상 환자의 아들에게 한 설명은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고, 수술동의서에 환자에게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점만으로는 당시 의사결정 장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결에서는 설명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어떠한 내용의 설명을 했는지 및 그 설명의 구체성 정도 등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이와 같은 내용들을 살펴보면, 설명의무이행 여부에 대해 법원은 엄격히 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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