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원장 "20년 전 엄두도 못 내던 꿈…4달 후 현실로"

▲ 박진영 네온정형외과 원장

1994년,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그때

세계견·주관절학회(ICSES, International Congress of Shoulder & Elbow Surgery) 유치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전임 발령을 받고 외국에 처음 참석한 학회는 1994년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아시아견·주관절학회 창립 학회였다. 당시 나는 어깨질환에 대해 거의 무지한 전문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하권익(회장), 이광진(총무) 교수님이 대한견·주관절학회를 창립하고 1년이 안 된 때였다.

한글말 교과서에도 제대로 쓰여 있지 않은 회전근개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정형외과적 지적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하면서, 심포지엄 발표 내용을 깨알같이 적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1995년 세계견·주관절학회가 핀란드 헬싱키와 스톡홀름에서 공동 개최됐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Neer, Hiroyaki Fukuda 교수님과 현재 세계견·주관절학회장인 Bigliani 등 대가들의 강의를 들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이 큰 학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 학회 개최를 위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박진영 원장 

당시 경희의대 이용걸 교수님과 참가비를 내고 들어간 만찬회장은 책에서 본 대가들이 부인들과 같이 참석해 연미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서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우리도 이런 세계학회를 한번 유치해 보자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막연하기만 했다.

2년 후 아시아학회 유치 성공…더 큰 꿈 꾸다

그 후 1996년 퍼스에서 열린 2차 아시아견·주관절학회에서 이광진 교수님의 지휘 하에 2002년 제4차 학회 유치를 성사시켰다. 1998년 시드니 세계학회, 1999년 발리 아시아학회, 2001년 케이프타운 세계학회를 참가했다. 2002년 이광진 회장님과 이용걸 사무총장님을 모시고 제4차 아시아견·주관절학회 학술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학술대회 유치와 개최, 운영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배웠다.

2004년 9차 워싱턴 세계학회에서 우리 위상을 세계에 보여줘야 우리가 염원하던 세계학회를 유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학회 회원에게 세계학회 참석을 독려했고, 이에 부응해 준 40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그 결과 세계 학회의 임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학회 만찬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우연치 않게 당시 세계학회 임원진과 같이 걸어가게 됐다. 자연스럽게 식사 후 한잔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이용걸 교수님과 동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2013년 세계학회를 일본이 유치하기를 원하며, 다른 나라는 유치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2차례에 걸쳐 세계학회를 개최했고, 만일 한국이 나오면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조언도 들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여러 선생님들과 상의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004년 수포로 돌아간 노력…훗날을 기약하다

학회는 세계학회 유치를 위해 특수목적적립금을 만들고 있었고, 학회는 9년 후이므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유치 계획을 세우던 중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성공적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처럼 한일 공동개최의 세계학회를 만들어 보자고.

우리 학회는 이에 대해 찬반 논란이 많았다. 먼저 타당성을 조사하려고 일본 교토에서 한국으로 전용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지 혹은 배편으로 이동이 가능한지를 조사했지만 이동 경로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됐다.

또한 일본에서 요청한 '개막식 일본, 폐막식 한국'이라는 시나리오라면 우리나라의 역할이 과소평가 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공동 개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 "일본과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가야 할 운명이니 이번 기회는 일본에 양보하고 다음 기회를 보자"는 이광진 총장님의 말씀으로 2013년 유치를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2010년 에딘버러에서 성공을 외치다 

 

2010년 제11차 에딘버러 세계학회에서 2016년 개최지 선정의 때가 다가왔다. 학회 전임 회장단은 학회 전에 열린 Ryder's cup Golf 대회에 전원 참가해 개최 의향을 적극 알리기로 했다. 장소는 영국 3대 골프 명소인 Gleneagles CC였다. G8 정상회담도 열렸던 유서 깊은 장소로 그곳에서 우리 전회장단은 저녁식사 시간과 운동 중에 한국이 유치를 원한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전했다. 우리의 열정적인 모습에 많은 분들이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발표 준비를 위해 저녁 만찬 후 호텔방 노트북 컴퓨터 앞에 모여 발표와 수정을 매일 반복했고, 수정된 내용은 바로 한국으로 보내 슬라이드를 고치고 다시 이메일로 받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문제는 인터넷 속도였다. 100Mbyte 분량의 슬라이드를 한 번 다운로드 받는 데 4~5시간이 걸렸다. 고친 슬라이드를 다운 받기 위해서는 꼬박 밤을 지새워야 했다.

학회 첫날 한 쪽에서는 등록이 진행됐고, 세계학회 이사회(IBSES) 후에 차차기 후보지 선정을 위한 회의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기념품은 사전 선거유세라는 소문을 들을까 걱정돼 회의 후 나눠 주려 회의실 밖에 준비해 뒀는데, 아뿔사! 호주 멜버른팀은 기념품을 학회장 안에 가지고 와서 각 대륙 대표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아닌가! 몇 달 전 우리의 유치 준비 사항을 세계학회 임원들에게 알리려고 이메일을 보낸 것도 사전 홍보라고 반대하던 호주가 투표 전에 선물을 나눠 주다니….

한국, 인도, 아르헨티나, 호주의 발표가 진행됐고, 세계학회 유치를 위한 우리들의 혼이 담긴 슬라이드는 '10 years ago, it was a just dream and now, it isn't a dream. We want to host ICSES 2016, when the senior members are still with us. We don't have a time to waste anymore'라는 말로 끝맺었다.
투표가 시작되고 33명 선거인단 투표용지가 개봉된 후 세계회장과 사무총장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는 한국 제주와 호주 멜버른의 동점. 재투표를 해야 했다.

'17 대 16' 한 표 차…"우리가 해냈습니다"

투표 결과,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17대16' 한국이 한 표 차이로 2016년 세계학회를 유치하게 됐다. 이사로 참석하신 이용걸 교수님과 나에게 많은 분들이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했고, 우리는 준비된 기념품을 선거인단이 나갈 때 하나씩 전달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회의장을 나와 로비로 나오니 우리 학회 회원이 모여 있었다. 당시 나의 지친 얼굴은 우리가 유치하지 못해 낙담한 모습으로 비춰진 모양이다. 떨어졌냐는 질문에 나는 "아뇨! 우리가 세계학회를 유치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회원들 얼굴에 번진 기쁨의 표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학회 개최 성공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학회 회원들 

이제 2016년 세계견·주관절학회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학회의 꽃인 논문은 39개국에서 1189개가 접수됐다. Oral presentation은 180편으로 접수된 논문의 15%가 발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이를 위해 학술위원장 유재철(삼성서울병원, 견관절), 전인호(서울아산병원, 주관절) 교수 두 분이 고생을 많이 하셨고, 운영위원회 이용걸 회장(경희의대), 오주한 사무총장(서울대분당병원), therapist 위원장 김영규 교수님(가천대)이 불철주야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회원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이만큼 왔고, 앞으로도 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역대 가장 훌륭한 제13차 세계견·주관절학회가 제주에서 이뤄질 것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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