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VI 고시 6개월 모니터링 결과에 흉부외과 당혹

암환자들에게 일반화된 다학제 통합진료방식이 심장질환에서는 왜이리 어려운 걸까.

경피적 대동맥판삽입술(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TAVI)에 관한 고시가 발효된지 7개월 째다(보건복지부 고시 제2915-78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한 경피적 대동맥판삽입술 선별급여의 후속조치로, 6월 1일부터 시설·인력·장비 등에 관한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에서 적응증에 합당한 환자에게 TAVI를 시행할 경우 본인부담률 80%의 선별급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단 순환기내과 전문의 2인 이상(심장초음파학회에서 인증 받은 심장초음파전문의 1인 포함), 흉부외과 전문의 2인 이상,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1인 이상, 영상의학과 전문의 1인 이상이 참여하는 '심장통합진료'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중증 대동맥판 협착증 환자 가운데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 고위험군인 경우 심장통합진료에 참여한 전문의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만 TAVI 시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시술기관 측에 심장통합진료 시간 및 장소, 참여의사 서명과 치료방침 및 결정 사유 등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시술 후 30일, 6개월, 1년, 2년, 3년 시점까지 시술성공 여부, 합병증 발생 등에 대한 임상자료와 함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도록 했다.


고시 시행 6개월 경과...뚜껑 열어보니?!

해당 고시는 2014년 4월 경피적대동맥판삽입술에 관한 태스크포스팀(TFT)이 결성된 후 1년 여 동안 5차례에 걸친 전문가 자문회의 끝에 완성된 결과물이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와 대한심장학회에서 각각 5명의 자문위원이 직접 고시 제정 과정에 참여했고, 이후에도 일정 간격으로 모니터링회의를 갖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국내 주요 대학병원의 시행건수가 연평균 100~120건 정도에 불과하지만 밸브 하나당 가격이 3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가인 데다 대상 자체가 워낙 고위험군이다보니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해 선별급여를 강행한 것으로, 3년의 평가기간을 거친 뒤에는 급여화 가능성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심평원 모니터링 조사에 따르면, 지난 6개월 동안 국내에서 시행된 TAVI 시술 중 상당수가 고시안의 적응증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제출된 자료에는 적응증을 따르지 못한 이유조차 명시되지 않아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관계자는 "1차 평가인 점을 감안해 추가 자료를 요청했지만 다음 회의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대안이 없다"며 "유예를 반복했던 스텐트 고시의 전철을 밟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후 학회 내부적으로 긴급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방향에 관한 입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술 우수성 인정하지만 '협의과정' 빠져있어...

TAVI는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에게 카테터로 그물망을 삽입해 치료하는 시술방식이다.

가슴을 열고 좁아진 대동맥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외과적 방법(Surgical Aortic Valve Replacement, SAVR) 대신 대퇴동맥 등 경피적 경로로 도관을 넣어 인공대동맥판막을 이식하기 때문에 고령 또는 폐, 간 등 중요장기의 동반질환자에게도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4월 서울아산병원 박승정 교수팀이 처음 성공시킨 이래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종병원 등 몇몇 대학병원에서 시도돼 왔다. 국내에서 사용 중인 Edwards SAPIEN/XT와 CoreValve 2종을 합치면 누적건수가 500건 정도로 집계되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이미 10만건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그만큼 해외에서는 축적된 임상근거도 풍부하다.

지난해 발표된 PARTNER 1 연구의 5년 추적 데이터(Lancet 2015;385:2477-84)에 따르면, 적어도 고위험군에서만큼은 TAVI가 SAVR와 비슷한 임상 결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수술 위험도가 높은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에서 TAVI의 1년 생존율이 SAVR보다 유의하게 높았다는 논문(NEJM 2014;370:1790-8)도 발표된 바 있다.

▲ TAVI와 SAVR군의 사망률 비교(NEJM 2014;370:1790-8)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여러 임상연구에 나와있듯 수술이 불가능한 고위험군 환자에서 TAVI 시술이 갖는 장점 자체를 부인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환자군을 선정할 때 다학제적인 논의 방식이 빠져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저위험~중간위험도 환자에서 TAVI가 표준치료(SAVR)보다 낫다는 근거는 없으며, 환자 선정기준이 규격화 되지 않은 상태여서 주요 가이드라인들도 '하트팀(heart team)'에 의한 통합진료를 강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장질환자, 왜 통합진료여만 하나?

 

심장통합진료에서는 흉부외과, 심장내과는 물론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초음파 전문의가 한자리에 모여 환자의 개별 위험과 선호도를 따진 뒤 어떤 시술을 할지, 대퇴동맥 또는 심첨부 중 어떤 경로로 접근할 것인지, 어떤 종류 또는 크기의 판막을 선택해야 할지 등을 논의한다. 이렇게 상의된 결과를 당사자인 환자에게 설명한 뒤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Heart 2015;101:169-177).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 가이드라인은 수술 또는 시술의 적정성 여부를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 합의 하에 결정하고, 그 이유를 반드시 명시하도록 법제화 되어 있다.

또다른 흉부외과 의사는 "혈관박리, 대동맥 근부파열, 심낭압전, 뇌졸중 같은 합병증을 경험하고 나면 협의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시술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의 경우 시술 결정과정은 물론 시술 중에도 흉부외과 의사가 동석한다는 것. 시술 도중이라도 환자에게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즉각 대처하기 위함이다. 이 경우 시술에서 발생하는 수익도 양 진료과에 공동배분하게끔 정해져 있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관계자는 "환자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면 심장통합진료가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며 "시술 전부터 시술 중과 이후 중환자실 관리에 이르기까지 두 진료과가 협력해 환자치료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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