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소화기연관학회, "내시경적 시술 저수가…기형적 진료 초래할 것"

▲ 우리나라 내과 위기론이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온다. 의료 수준을 일컫는 게 아니다.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급여기준을 개선해야만 한다는 '저수가 위기론'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 내과의 미래는 암울하다."

최근 내과 전문의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급여기준과 일방적인 심사삭감으로 인해 기본적인 진료행위마저 발목 잡힌다고 토로한다. 또 해마다 이슈가 되는 전공의들의 내과 기피현상 역시 저수가 문제와는 떼어놓고 보기가 힘든 상황.

지난 11월 27일 성료된 소화기연관학회 합동 추계학술대회에서도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갔다.

"내시경 수가, 이게 말이 됩니까?"…현실 외면

"소화기내과의 현 보험급여 기준은 현실을 외면한채 심각히 왜곡됐다." 보험정책 심포지엄 세션에 첫 연자로 나온 한양의대 소화기내과 은창수 교수(한양대 구리병원)의 말이다.

그는 해결이 시급한 급여문제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 내시경 수가 △ 소독 수가 △ 내시경 시술 및 부속기구의 급여기준 문제점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 것.

물론 우리나라 행위별 수가제 상에서는 의료수가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그 중 내시경 관련 수가는 특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상부위장관내시경검사의 현행 수가가 4만 4392원으로 가격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주장.

4만 5000원 정도 책정된 가격도 속내를 알고 보면 빠듯하다. 여기엔 내시경에 사용되는 목마취제를 비롯한 주사기, 휴지 등의 각종재료와 함께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인건비 및 추후 의료분쟁 해결비용까지 합쳐졌기 때문.

타과의 검진 비용과 비교해 보면 차이는 두드러진다. 실례로 병리과의 병리조직검사 비용은 조각 개수별로 금액이 가산되고 특수염색이 추가되면 비용이 15만원에서 25만원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내시경 시술료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1개의 조직 채취나 10개 조직 채취 모두 동일한 8620원이 책정된 것.

은 교수는 "1회의 내시경 시술에 투입되는 원가를 산정해보면 감가삼각비 및 보수료, 소모품 등에 3만 3745원이 들어가고, 의사 1인과 간호사 1인 등의 인건비에만 약 4만 7000원이 추산된다"며 "시설관리비나 부대비용, 기술료를 제외해도 상부위장관내시경 한 건당 원가는 8만 7450원 정도가 요구되는데, 현행 내시경 수가는 이에 절반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예를 들었다.  

"기본을 저버리는 기형적 진료행위 부추기는 꼴"

소독 수가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미국에선 다제내성 박테리아가 담췌관조영내시경 시술에 사용되는 측시경을 통해 환자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당연 내시경 세척과 소독은 학계를 비롯한 의료계에 화두였다.

그러나 이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국내에선 내시경과 부속기구의 세척과 소독, 건조, 보관과 관련해 인력이나 장비, 공간에 대한 보상이 아직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내시경 시술 중 사용되는 부속기구들이 현재 급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일단 절제용 올가미, 내시경 지혈용 클립, 가이드와이어, 지혈용 주사침 및 결찰밴드, 지혈겸자 및 엔도루프, 삽관카테터 등이 별도 보상이 안되는 상황이다.

은 교수는 "올바른 의료행위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기본 진료마저 위축되고 되레 기형적인 진료 형태를 키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상대가치점수, 한국형입원환자 분류체계(KDRG), 한국형 의료행위분류(KCPT),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등에서 문제점을 찾아내 근본적인 개선 방향에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학회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도 언급됐다. 결국은 근본적인 수가결정제도 및 급여기준 개선을 위해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동네의원, 내시경실 운영 하지 말라는 얘기?"

충북의대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도 향후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직면할 보험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대표적 시술인 위내시경 수가는 미국의 14~57분의 1, 영국의 34분의 1, 싱가포르의 10분의 1 수준이며 대장내시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외사례와 비교하면서 "공공의료인 영국과 비교해도 해당 시술은 우리나라에선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일침했다.

대형병원은 적자분을 다른 부분의 이익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이나 동네의원급은 내시경실을 따로 운영한다는 게 실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 의료행위 항목간 수가 불균형 해소를 위한 2차 상대가치점수체계. 난이도가 높고 인력과 장비가 많이 투입되는 행위에 더 많은 보상을 해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시술위험도' 평가가 빠진채 '시술시간'이 주요하게 고려된 데 의료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내년 예정된 2차 상대가치점수체계 적용, 손질 시급 

문제는 또 있다. 오는 2016년부터 적용될 2차 상대가치전면개정과 관련해서도 손질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내시경 분야의 수가를 비롯한 선택진료비 폐지에 따른 종합병원의 손실분 보상기전, 내과계 포괄수가제 등은 손 놓고 관망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제가 되는 상대가치점수체계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기원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행위의 항목간 수가 불균형 해소를 위해 미국의 상대가치점수체계(RBRVS)가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 의사업무량 상대가치 △진료비용 상대가치로 구분해 놓았다.

이를 위해 의사 업무강도는 시간과 강도를 곱하고, 진료비용은 일단 국내 8개 병원을 대상으로 원가를 분석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문제점이 포착됐다. 한 교수는 "원가분석에 이용된 8개 병원의 데이터는 대표성이 부족하고, 의원급 자료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2006년 전면개정된 1차 상대가치 점수를 현재까지 적용해오다 진료과간 불균형이 초래돼 지난 2010년부터 다시 조정에 돌입한 상황.

심혈관조영술 및 ERCP 수가 '하락' 예상, 내시경은 '보다 심각'
시술 위험도 고려 않고 '시술시간 짧다'는게 이유?

우선 새롭게 바뀔 2차 체계는 과간 총점이 아닌 검체, 영상, 수술, 처치, 기능 등의 5가지 행위 유형으로 분류해 이를 보상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즉 난이도가 높고 인력과 장비가 많이 투입되는 행위에 더 많은 보상을 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개정과정에서 병원계가 의료사고 비용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술 위험도 보상부분은 아예 빠져버렸다. 따라서 여전히 시술시간이 가장 큰 평가요인이 된 것.

이와 관련 한 교수는 "진단 내시경은 기능검사 유형, 치료 내시경은 수술 유형, ERCP는 영상 유형으로 정비를 마쳤다"며 "선택진료비 및 상급병실 등의 비급여 항목 개편에 대한 보상개념으로 수술 유형은 수가 인상이 예고됐지만 영상 유형으로 분류된 심혈관조영술, ERCP 등은 상대적으로 수가가 하락할 것이며 기능 검사인 위 및 대장 내시경은 시술시간까지 짧다는 이유로 현재보다 수가가 더 낮아질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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