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기관 관리료 얹어주기 경쟁

"의뢰기관의 할인요구를 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습니다. 검사비의 10%로 정해져있는 의뢰기관 몫의 관리료가 덤핑으로 인해 30~4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대로는 검사의 질을 확보하기 힘들어요."
 "할인도 할 만하니까 하는 것 아닌가요? 그 정도 할인을 해주어도 수익이 있으니까 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수탁기관 쪽에서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많으면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기관과 거래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의뢰기관과 수탁기관 간 검체검사를 둘러싼 논란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관행화된 할인경쟁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탁기관의 대상이 되는 진단검사의학회와 병리학회 등은 회원들의 의견을 취합함과 동시에 직접청구를 위한 EDI시스템을 검토하고 좌담회도 개최하는 등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한 시도에 들어갔다.
 현재 지급구조는 보험공단이 검사비를 의뢰기관에 지급하면 의뢰기관은 관리료를 제외한 나머지를 수탁기관에 전달하는 체계다. 여기서 관리료는 검사비의 10%로 책정돼 있지만 더 많은 검사 계약을 따내기 위한 수탁기관 간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관리료를 더 얹어주는, 즉 검사비 할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검사의 내용`이 아닌 `가격`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검사도 의료의 일부인 것에 비춰볼 때 문제가 많다. 게다가 할인을 통해 발생하는 이득이 환자들에게 전혀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환자는 합당한 비용을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질이 떨어지는 검사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짙다. 이처럼 검사 건수에 따라 발생하는 부당이득은 불필요한 검사를 부추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모 개원의는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제공하는 검사 중 일부항목은 장비발달로 원가가 내려가 오히려 실 비용보다 수가가 높이 책정돼 있다. 이런 부분이 할인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불합리한 수가체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탁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전문의는 "애초 덤핑은 국·공립기관의 최저가입찰제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검사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행정이 지금의 상황을 야기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탁기관은 의뢰기관에서 검사비를 받아 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많다고 호소한다. 진단검사의학연구소를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검사비를 평균 3개월, 심지어는 6개월 이후에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게다가 의뢰기관이 부도라도 날 경우 검사비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구조로 검사가 이뤄지다 보니 검사기관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전문의사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수탁기관의 직접청구를 가능케 할 EDI시스템 도입이다. 관리료는 관리료대로, 검사비는 검사비대로 청구하고 각각 지급받을 수 있다면 무차별적 할인경쟁은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도입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직접청구를 위해 꼭 필요한 환자정보를 의뢰기관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뢰기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지금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장세진 대한병리학회 섭외이사(서울아산병원)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현 구조가 관행처럼 지속 돼온 것은 수탁기관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또한, "청구방식을 달리한다고 해서 가격경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양 기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관리료를 책정해 가격이 아닌 검사의 질을 가지고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수탁기관과 의뢰기관이 윈윈하기 위해서는 수탁기관에는 적절한 검사비가, 의뢰기관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관리료가 지급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각종 행위에 대한 명확한 보상이 제시되지 않은 채 10%라는 관리료가 적용돼왔다.
 따라서 검사비 전체 파이를 늘릴 수 없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각 기관이 얼마의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 가장 합당한 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기준 마련이 현안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차영주 진단검사의학회 차기이사장(중앙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은 "보험수가를 의사업무량과 진료비용, 의료사고 위험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다 객관적으로 책정하려는 시도가 현재 이뤄지고 있다"며 "이 원리를 확대해 검사비도 실제 투입되는 비용을 세분화시켜 측정한 후 제시한다면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더불어 "수탁기관 규모 별로 취급하는 검사의 종류를 다르게 해 수탁기관 간 내부질서를 바로잡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병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 전문의는 "전체급여를 객관적 기준에 의거, 세분화해 양 기관 다 수용할 수 있는 검사비 세부항목을 만드는 작업과 동시에 EDI시스템도 도입해 특수검사 먼저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등 단계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에 대해 설명했다.
 각 기관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불공정행위를 가능케 한 현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보험수가 체계의 개편이나 EDI시스템 도입 등 필수적이겠지만 검사의 질을 중시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 공인된 기관에서 검사의 질을 측정하고 인증마크를 주거나 패널티조항 등을 마련해 검사의 질을 중심으로 시장이 좌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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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수탁기관 급여 각각 산정을"
차 영 주 진단검사의학회 차기 이사장



"수탁기관과 의뢰기관의 소요비용을 객관적 기준에 의거, 세부 항목 별로 급여의 가치를 산정해야 합니다. 뭉뚱그려 `관리료 10%`라고 정해놓으니 탈이 날 수밖에요. 수탁기관과 의뢰기관의 행위를 세분화시켜 정확히 산정하고 그에 맞는 급여를 각각에 지불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요?"
 차영주 진단검사의학회 차기 이사장(중앙의대)은 의뢰기관에서 일괄적으로 청구해 수탁기관에 전달하는 검체검사 보험수가 지급구조가 덤핑 등 여러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한번의 `검체검사`에는 여러 인적자원의 노력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검사비`로 수가를 지급하는 정부 정책이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 수탁기관과 위탁기관이 적이 될 수 밖에 없고, 각종 부작용도 생기게 된다.
 따라서 그는 "내년 6월 경 의료행위별로 막연하게 이뤄지던 보험급여를 의사업무량과 진료비용, 의료사고 위험 등 부분의 상대가치점수를 기준으로 객관화시키는 연구가 마무리 되면 검사비에 대해서도 이 기준을 적용, 실제비용을 세분화시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수탁기관의 규모 별로 취급할 수 있는 검사의 종류를 다르게 해 수탁기관 간 내부질서를 바로잡는 작업도 무분별한 경쟁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선 수탁·의뢰기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차 차기이사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할인이나 리베이트는 용납되선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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