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여의사 양성 뿌리 알리기 나선 고대의대…호의역사실 개소 '눈길'

아파도 병원에 못가고 끙끙 앓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던 여성들의 얘기다.

당시 선교사업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 의사들은 진보된 인술을 베풀었지만, 여성은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남녀유별의 유교문화로 인해 죽어가더라도 남자의사에게는 자신의 몸을 보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들 여성의 상황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 속에서도 여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되면서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태동은 오늘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태가 된 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 1928년 여의사 배출의 서막을 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제1의학관 2층에 위치한 '호의역사실' 입구.

고대의대가 전용 역사실을 열고 뿌리 알리기에 나섰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의 기원을 두고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이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을 비껴가 '여성'에 초점을 맞춘 점이 특징이다.

지난 27일 의대 제1의학관 2층에서 열린 '호의역사실 개소식'에서 김효명 고대의대 학장은 "고려대는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 등 전환점마다 시대와 호흡하며 역사 변화를 선도해왔다. 고대의대의 시작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임기내 중점사업으로 역사실 개소를 추진해온 김 학장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여성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선각자들의 노력과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의학교육기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1971년 국내 최초의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89년 세계 최초 유행성출혈열 예방백신을 개발한 것도 당시 시대적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면면이 이어져 오는 호의만의 전통을 기리기 위해 역사실을 개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진행된 호의역사 심포지엄에서는 염재호 고려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차몽기 고대의대교우회장, 이정구 고대의대 교수의회장 등이 참석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고대의대 역사를 이야기할 때 뭉클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과거 입학할 때 30%는 여학생으로 따로 뽑았는데, 이는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여성들을 위한 배려였다"면서 "앞으로 기술과 연구를 통해 전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병원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고대의대는 일제강점기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거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의사양성 교육기관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은 이래 서울여자의대, 수도의대, 우석의대 등의 변천을 겪다 1971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 '호의역사실' 내부 전경. 현 고대의대의 모태인 20세기 초 조선여자의학강습소부터 해방 후 수도의대, 우석의대까지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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