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적, 친구, 동무… 우린 무엇일까?

1994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격렬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살인 사건이다. 어린 북한 초소병 정우진 전사가 처참하게 살해되고 남한군 김수혁과 북한군 오경필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사건 이후 북한은 남한의 기습 테러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설로 각각 엇갈린 주장을 한다.

양국은 남북한의 실무협조 하에 스위스와 스웨덴으로 구성된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책임수사관을 기용해 수사에 착수할 것을 극적으로 합의하고 책임수사관으로 스위스인 지그 베르사미 소령이 파견된다. 인민군 장교출신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베르사미는 태생을 숨기고 사건의 정황을 수사하지만, 북한 측 주장만을 반복하는 오경필 상등병과 묵비권을 행사하는 김수혁 상병의 비협조로 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중 베르사미에게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함께 아버지의 일기장이 전달되고, 김수혁 상병은 베르사미의 아버지가 한국인임을 눈치챈다. 김수혁 상병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베르사미라면 사건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서서히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영화와 소설로 이미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동명원작을 소재로 뮤지컬화 된 작품이다. 전쟁과 휴전이란 역사적 배경과 현실은 2015년의 한국을 사는 우리에게는 잊고 사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전쟁위기가 닥칠 때마다 지인과 가족이 군입대를 하고, 북한에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이런 우리의 아이러니를 살갗에 딱 떨어지는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가운데 놓고 마주보고 있는 네 명의 남북한 군인들, 그들은 북한초소에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며, 불가능에 가까운 우정쌓기를 시작한다.  군대생활, 남북한의 위기도 이들의 따뜻한 일상을 막지는 못한다. 그저 엄마밥 먹여주고 싶은 형, 이쁜 여동생 사진 보여주기엔 불안한 친구, 그들의 일상은 관객들에게 이 일상이 마치 지속 가능하고 또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비쳐진다. 웃음 가득하고 정이 넘치는 그들의 일상이 총소리 한방에 무너지고 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실제가 조건반사에 가까운 우리의 현실 속 아이러니임을 알게 되는 순간 이 극은 한없이 무겁고 또 슬퍼진다.

결국 동포끼리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는 역사와 현실에 관객은 지금의 긴장이 얼마나 무섭고 또 아픈 상처인지를 깨닫게 된다.

비극의 말미, 총을 겨누는 김수혁의 대사 "우리는 언젠가 서로 총을 겨누어야 해"는 이 작품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소설 그리고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 스토리의 힘이다.

잘 짜여진 범죄추리물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반전이 강하다. 이를 위해서 등장하는 화자이자 또 하나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베르사미가 영화와는 달리 여러 회상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뮤지컬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마치 범죄수사물에 가까운 구조는 영화보다 더 몰입감을 준다. 암전 없이 계속 진행되는 장면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 그리고 추리에 따른 장면의 재전개 등. 무대라는 장치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기법은 다소 묵직한 소재에도 불구 관객을 무대위로 끌어올린다.

또한 상상력이 더해진 군대의 일상, 초소에서의 장난 그리고 만화주제가를 차용한 훈련 장면들은 전반 내내 웃음을 짓게 하고 우리의 젊은 시절 우정을 떠올리게 한다. 지포라이터, 컵라면, 성인 잡지 등 남북한의 문화차이나 사투리 등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웃음을 짓게 한다.

이에 반해 후반에 들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에서도 보여지는 인간 대 인간의 연민은 결말과 합쳐지면서 눈물을 참기 힘들게 한다. 여기에 뮤지컬에는 처음 합류했던 작곡가 맹성연의 넘버들은 아름답다. 다소 좁은 무대이지만 총을 활용한 안무나 수용소에서의 대결장면들은 안무가 거의 없는 작품에 활력소를 준다.

증오의 조건반사…반복되는 비극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진실을 감춤으로써 유지되는 평화의 비극을 주제로 하는 영화와는 달리, 50년 동안 계속된 '증오의 조건반사(Operant Conditioning)'와 이로 인해 반복되는 비극적인 주제를 이야기한다. 이 속에서 남북한의 '동포애'와 중립국 수사관의 개인사가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우연한 오발사고의 총격을 들은 김수혁 상병이 반공교육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 일어난 참극과 베르사미 아버지의 수용소에서의 참상은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 서로 다른 사상의 대립이 나은 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앞서 있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화는 결국 일상의 작은 우정과 형제애로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오경필의 넘버가 통일에 대한 수많은 논리적 근거와 대책들보다 더 가슴을 파고 드는 이유는 그의 노래 속 "내가 담배 한 대 피울 때면 나도 모르게 남쪽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에서 알 수 있다.
21세기 유일한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와 그들이 형제라는 점일 것이다.
초연임에도 북한 상병 오경필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최명경은 특히 이 작품의 매력을 더하는 주인공이다. 완벽한 사투리 표현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 작품을 위해 실제 탈북한 북한 교수의 어투를 수천번 따라하며 익혔다 한다.

처음 이 작품을 보는 관객이라면 임현수, 이정열, 최명경 페어를 추천한다. 일층 통로도 활용되는 작품이어서 가급적 일층 좌석을 권하지만 어떤 좌석이라도 감상에 큰 무리가 없다. 12월 6일까지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에서 공연되며, 현재 정부지원 1+1 제도 혜택 공연으로 2장에 4만 5000원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인터미션 없이 진행돼 2시간 이내로 짧게 진행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하겠다(티켓 문의 : 인터파크 1544-1555).  송혜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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