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프라토 & 조영민 교수 본지와 대담

당뇨병 치료 시 조기에 혈당을 조절해야 장기적으로 환자들의 예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합병증을 막는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정부의 의료정책도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약물 급여기준이다. 지난 수십 년간 단계적 처방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거의 모든 약물을 1차 선택으로 열어주면서 환자에 맞는 약제를 고를 수 있도록 했고, 이를 통해 장기적 측면에서의 합병증 예방을 권고하고 있다.

이로써 의사들은 맞춤형 치료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고민도 생겨나고 있다. 어떤 환자에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약제를 투여해야 하는가이다. 임상경험이 많은 의사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의사들에게는 어려운 숙제다.

▲ 피사대 델 프라토 교수
이에 대해 이탈리아 당뇨병 석학인 피사대 델 프라토 교수가 국내 의사들을 위해 제시한 전략은 ‘ABCDE 원칙’이다.

이른바 환자를 맞이했을 때 ABCDE를 따지는 것이다. A는 환자의 연령(age), B는 체중(body weight), C는 합병증의 유무 여부/중증도 및 동반질환의 유무(complications, co-morbidity), D는 당뇨의 유병 기간(duration)이다.

마지막 E는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 E는 병인(etiology), 즉 당뇨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두 번째 E는 환자에 대한 교육(empowerment)이다. 아무리 좋은 약제가 있어도 환자가 왜 병이 생겼는지, 적절하게 복약하는 방법 등을 모르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세 번째 E는 환자의 경제적인 상황(economy)이다. 이것이 바로 ABCDE의 원칙이다.

Age
Body weight
Complications•co-morbidity
Duration
Etiology•empowerment•economy

여기에 가장 좋은 치료 목표와 최적의 치료 방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도 빠트리면 안 된다.

델 프라토 교수는 "'가장 좋은 치료'는 첫째, 환자에게 적용했을 때 효능(efficacy)이고, 둘째로는 부작용을 줄여줄 수 있느냐의 여부다. 부작용의 유무, 그리고 증세가 얼마나 중증인지의 여부가 환자의 치료 순응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좋은 치료이면서도 쉬운 치료, 즉 환자가 잘 따라올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서 환자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의대 조영민 교수는 ABCDE 원칙을 몇 년 전 배우면서 음향기기의 이퀄라이저(equalizer)에 비유했다.
조 교수는 "당뇨병 약제를 쓰는 것은 단순히 방의 불을 껐다 켜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 많은 요소가 있는 이퀄라이저의 개념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연령이나 체중과 같은 요소들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예술의 경지와 이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몇 년 전 ABCDE 원칙을 배웠는데, 이는 굉장히 간단하다. ABCDE 사항들은 대학 교수와 같은 전문가은 잘 알고 있겠지만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숙지하면 진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약제선택 기준 동서양 차이 고려해야

ABCDE 원칙을 숙지해도 어려움은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약제 선택이다. 환자 파악이 끝났다면 처방전을 발행해야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어떤 약을 적용하는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델 프라토 교수는 동서양의 병태 생리학적 차이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지역의 제2형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베타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기능이 점차 소실되는 특징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물론 아시아에서도 비만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서구와 비교하면 비만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또 비만의 기준에 있어서도 상당히 차이가 크게 난다고 정리했다.

델 프라토 교수는 "서구에서도 인슐린 저항성, 베타세포의 기능 상실과 같은 부분이 있지만 이보다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베타세포 기능 상실이 더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동서양 간의 이러한 병태 생리적 차이가 있다면,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치료제를 선택하는 데 몇 가지 기준들이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델 프라토 교수가 제안하는 약제 선택의 기준은 1차적으로는 인슐린의 생산을 더욱 촉진할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아시아 환자들에게는 베타세포의 기능이 점차 소실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약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크레틴 기반의 DPP-4 억제제와 같은 약이 될 수 있다.

▲ 서울의대 조영민 교수
조 교수도 "동양 환자들이 베타세포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며, 베타세포 기능을 보존하거나 증대시키는 치료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인슐린 저항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인슐린 저항성이 변하기 때문에,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DPP-4 억제제의 치료 효과를 동서양 간 비교를 해 보면, 동양인에서 당화혈색소가 0.3% 정도 더 떨어지며, 인슐린도 동양인 환자에게서 저혈당이 많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그래서 동양인은 '스케일'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인이 베타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도 맞지만, 인슐린 저항성이 덜 하다는 것도 치료제를 선택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고려사항이다"고 덧붙였다.

A1C 가이드라인 목표 수치 큰 의미 없어

조기치료 시 환자의 목표 혈당도 중요한 부분이다. 올해 미국당뇨병학회와 유럽당뇨병학회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당화혈색소(A1C)를 ‘7%’로 할지 ‘6.5%’로 할지에 대해 이견도 많이 있었는데, 결국은 7%로 유지했다. 여러 기준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환자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도 고민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델 프라토 교수는 개인에게 맞춘 치료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6.5%냐 7%냐 하는 것은 사실 용어 차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델 프라토 교수의 지론은 환자가 막 진단을 받았고, 앞으로 기대 수명이 많이 남아 있는 젊은 연령대이며, 합병증이 없는 상태면 치료의 목적은 합병증 예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령 환자와 같이 기대 수명이 짧게 남아 있는 환자들이나 저혈당 쇼크 사건이 있었거나 부작용을 겪었던 환자들, 그리고 합병증이 어느 정도 진행된 환자들이라면 너무 엄격하게 혈당을 떨어트려서 또 다른 부작용을 유발하기보다는 치료 목표를 안전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델 프라토 교수는 "모든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이 같은 당뇨병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옷을 살 때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사이즈를 입지 않는 것과 같이 좀 더 개인화된, 좀 더 정밀한 의학적 접근을 통해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영민 교수

당뇨병 약물치료 원칙
음향기기 이퀼라이저와 유사

환자의 연령•체중 등
많은 요소들 조화 이뤄야

델 프라토 교수

A1C 수치 7%냐 6.5%냐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

사람마다 옷 사이즈 다른 것처럼
환자 개인 맞춘 목표 설정해야
 

조 교수는 "국내 환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한당뇨병학회는 6.5%를 목표로 삼고 있는데, 앞서 델 프라토 교수가 언급한 것과 같이 이는 단지 수치적인 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라는 말과, '낮추면 낮출수록 좋다'라는 말은 다른 만큼 개인의 특수성을 잘 생각해야 하고, 환자마다 발생할 수 있는 체중증가나 저혈당과 같은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언급한 개인의 특수성은 환자마다 발생할 수 있는 체중증가나 저혈당과 같은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환자의 경제적 상황도 치료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이 외에도 치료를 따라올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이다. 먹는 약 같은 경우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주사제제라든지 인슐린 용량 조절과 같은 문제에서는 환자의 능력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킨다고 해서 환자가 다 따라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부분들을 고려해서 개인화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약물 지속성•조합도 중요

그 외에 약물의 지속성과 병용요법의 새로운 조합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이는 ABCDE 원칙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의대 조영민 교수와 피사대 델 프라토 교수는 당뇨병 조기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대담에서 맞춤형 치료시 필요한 원칙을 제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델 프라토 교수는 당뇨병 치료제 선택에 있어 혈당 조절뿐 아니라 효과의 지속성도 강조하고 있다. 그는 2년 동안 알로글립틴의 효능을 관찰한 ENDURE 연구만 보더라도 지속성이 유지되고 있다며 이러한 결과는 임상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론 하나의 제제만으로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병용 요법이 좋은 치료 전략으로 채택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델 프라토 교수는 "메트포르민 자체가 GLP-1의 생산을 촉진하고 GLP-1의 농도도 유지하기 때문에 DPP-4 억제제와 좋은 조합이고, 당과 지질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을 증가시키는 피파감마에 작용해, 췌장의 베타세포를 잘 보존해 준다고 알려진 글리타존 계열과도 좋은 조합이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당뇨병 치료와 동시에 환자의 혈압을 더 낮추거나 체중을 더 떨어트릴 수 있는 최신 약제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일까? 전문가들은 부가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 교수는 "제2형 당뇨병 환자 70%가 대사증후군을 갖고 있다. 고혈압 환자를 예로 들면 혈압약을 써야지, 고혈압에 효과가 일부 있는 당뇨병 약제를 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물론 그런 약효를 갖고 있는 당뇨병 약제를 씀으로써 부가적인 효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미 고지혈증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당뇨병 약제만 가지고 그러한 증상들을 치료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적 치료접근 가능성

나날이 발전하는 당뇨병 치료제 기술로 앞으로의 치료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도 세간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유전자적 치료접근의 가능성을 짚었다.

우선 매우 많은 당뇨병 치료 해법들과 치료제들이 나와 있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의 미래는 밝다는 반응이다.

델 프라토 교수는 "예전에는 우연히 발견된 치료제들이 당뇨병 치료에 사용됐지만, 이제는 당뇨병과 관련된 대사 이상을 유발하는 기전에 작용하는 작용 포인트들을 파악해서 이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다"며 "따라서 개인화된 치료와 어떻게 각각의 치료제들을 결합해서 사용할 것인가를 현명하게 판단하는 것이 훌륭한 당뇨병 담당 의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술이 발달하면 유전자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맞춤치료도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제2형 당뇨병과 유전 데이터와의 과학적인 상관관계는 아직 더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조 교수는 행동변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약제를 가지고 어떻게 환자를 잘 치료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행동 변화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이어 "비록 Look AHEAD 연구에서는 환자들의 생활습관 변화가 당뇨병 치료 예후에 부정적으로 나왔지만 이런 결과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당뇨병 환자들에게 있어 식이요법을 비롯해 생활양식 관리도 꼭 필요한 요소라고 본다. 즉, 앞으로는 첨단 약(high tech)도 물론 필요하지만, 로우 테크(low tech)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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