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 시 생성되는 유리파편, 인체유입돼 환자안전 노린다

얼마 전 '주사액 속 유리파편이 혈관을 타고 환자 생명을 노린다'는 내용의 기사가 모 일간지를 통해 보도되며 논란이 일었다.

주사제 포장에 사용되는 유리앰플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리 미립자들이 떠다니다가 주사액과 함께 환자의 혈액 속으로 주입된다는 것.

유리파편들이 혈류를 따라 폐, 비장, 신장 등 여러 장기로 이동하게 되면 혈액순환을 방해함으로써 혈전을 생성하거나 패혈증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사태가 불거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리앰플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리앰플 사용 시 생길 수 있는 유리파편으로 인한 인체 위해성의 직접적인 근거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사용돼 왔던 유리앰플의 위험성이 갑자기 도마에 오르게 된 연유는 뭘까? 지침개발, 교육 등 현재 식약처의 조치만 믿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유리앰플 혼입 위험? "가능성 충분"

 

유리앰플 개봉 시 유리조각 혼입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886년 프랑스 리모쟁에 의해 개발된 유리앰플은 무균적 보관이 용이하고 일회량 단위로 편리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지난 100여 년간 널리 사용돼 왔는데, 절단 시 생성되는 유리파편들이 불가피하게 약액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고질적인 한계점을 지닌다. 고온밀봉하는 과정에서 팽창했던 앰플 내부의 공기가 다시 대기온도로 냉각되면서 약간의 진공이 발생하게 되고, 앰플 개봉 시 혼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유리조각의 체내 유입에 따른 변화를 밝히기 위해 수많은 동물실험 또는 임상시험이 시도됐으며(Ann R Coll Surg Engl 1984;66:423), 앰플 종류와 용량, 주사바늘의 크기 및 개봉방법 별로도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위스콘신주의과대학 Sabon R.L. 교수팀의 동물실험 연구가 대표적(Anesthesiology 1989;70:859-62).

연구팀이 토끼에게 유리조각으로 오염된 정맥주사를 매일 실시한 결과 32일째 폐 모세혈관에서 유리조각이 발견됐으며, 폐 모세혈관과 정맥의 충혈, 혈전 및 무기폐 소견을 보였다.

유리조각으로 오염된 정맥주사를 간헐적으로 실시했을 때에는 344일째 폐에서 만성 규폐증에서 볼 수 있는 크고 분리된 결핵결절양 병변이 나타났고, 간 문맥삼분지(portal triad)에서 작은 유리조각과 함께 거대 다핵세포가 확인됐다. 그 외 신장, 비장, 장벽에서도 거대세포가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정맥주사 시 유리조각이 혼입될 경우 상당한 병리학적 변화가 초래됨을 시사하는 결과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 식약처 연구용역을 통해 앰플 주사액에서 검출된 유리조각의 최대 크기가 870㎛로 보고됐었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유리앰플 사용과 관련된 부작용 보고는 없었다는 식약처의 공식입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폐 모세혈관 지름이 10㎛라는 점을 감안할 때 폐색전증과 같은 심각한 질환이 유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남궁형욱 약제부 특수조제팀장은 "유리조각이 인체에 들어갔을 때 위험한 이유는 대사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근육, 피하주사할 경우 조직괴사 등 해당 부위에 국한된 피해가 일어나지만, 혈관내 주사하게 되면 폐 모세혈관과 같이 혈관 내경이 좁은 부위에 손상을 줄 뿐 아니라 혈액을 타고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척수강 내로 주사하게 되면 척수액을 타고 뇌로도 이동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 인체 대상 연구는 불가능 하겠지만 기존 동물실험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필터주사기' 대안 있지만…"비용 부담 커"

유리파편의 인체 유입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리앰플 사용을 고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개최한 '유리앰플 주사제 파편 인체유입에 따른 안전성 제고방안 토론회' 당시 발제자로 참석한 숙명여대 약대 신현택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 대학병원의 앰플주사제 사용 점유율을 비교했을 때 미국은 20.2%인 반면 국내병원 2곳은 35~44%였다.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앰플주사제 사용비율이 약 2배 정도 높은 셈이다.

남궁형욱 팀장 역시 "분당서울대병원을 예로 들더라도 전체 주사제 700여 종 가운데 앰플주사제가 150종 정도를 차지한다"며, "그 이유는 아무래도 비용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바이알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은 앰플 포장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더군다나 기존에 앰플 제형으로 허가를 받았던 약제의 포장제를 플라스틱 앰플이나 바이알로 바꾸기 위해서는 별도 테스트를 거쳐야 하고, 제조공정 전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상당한 투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 약제부에서 필터주사기를 이용해 조제 중인 모습 (사진제공: 분당서울대병원)

유리앰플을 유지하면서도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또다른 대안으로는 필터주사기가 거론된다.

일반주사기 대신 필터주사기나 필터니들을 이용할 경우 앰플 개봉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리파편의 99%까지도 인체 유입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국내외 여러 논문을 통해 입증됐다. 이에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병원약사회(ASHP) 차원에서 필터 사용을 권고하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2004년 식약처 용역조사 결과를 반영, 필터 사용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긴 '유리앰플 주사제 사용시 안전 가이드라인'이 발간됐고, 2010년에는 개정판까지 나왔다.

문제는 따로 있다.

필터주사기, 필터니들을 포함한 의약품주입여과기가 우리나라에서 임의비급여로 책정돼 있다보니 일선 병원들이 사용을 꺼리는 것. 개당 800~900원 정도로 일반주사기에 비해 10배가량 비싼 필터주사기 비용을 부담하려는 병원은 흔치 않다.

취재협조를 요청한 분당서울대병원에서도 필터니들은 약제부에서 일부 약을 조제할 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사용률이 1%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 특정 병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국공립 대학병원의 현실이라고 보여진다.

지난 2010년, 2012년 국감 때도 필터주사제의 급여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료진 인식전환부터 시작하자" 

▲ 분당서울대병원 남궁형욱 약제부 특수조제팀장

최근 식약처는 유리앰플 등 주사제의 안전사용을 위해 조제·투약하는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주사제 안전사용 가이드라인'을 보급했으며, 유리앰플 절단 시 유리파편의 혼입을 최소화하는 내용도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2015년 6월 입법예고된 '의약품 안전사용 및 교육 지원법'을 제정해 의료현장에서의 의약품 안전사용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

다만 이러한 대안이 실효성을 띄려면 의료인들의 인식변화가 선행돼야만 한다.

남궁형욱 팀장은 "식약처에서 가이드라인을 냈다고는 하지만 현장에 있는 의료인 중 이를 참고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면서 "약제부에 근무하는 약사들 외에는 많이들 심각성을 모르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필터주사기의 급여 문제가 해결되면야 좋겠지만, 치료에 사용되는 모든 비품들이 병원관리료에 포함돼 있다는 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입장이어서 인정하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교육을 통한 의료인들의 인식개선부터 차근차근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남궁 팀장은 "앰플주사제 사용률이 높은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을 중심으로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필터주사기 보급률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며 "환자안전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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