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메르스로 드러난 한국의료 민낯...1-2-3차 병원 제역할 찾아줘여

 

의료선진국을 자부했던 대한민국이 메르스 사태로 컨트롤타워 부재, 예산과 전문성 부족, 미흡한 방역체계, 혼잡한 응급실 관행, 다인실, 문병·간병 문제 등 의료계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수도권 대학병원으로의 환자쏠림'도 예외가 아니다. 환자쏠림은 글자 그대로 해당 병원으로 환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치료를 받고 다시 전국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기는 총체적 문제.

특히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의 대학병원을 찾는 전국의 환자들이 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삼성서울병원으로 전국의 환자가 몰려들었다가 다시 지역으로 내려가면서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된 배경이 됐다.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감염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예외로 한다고 해도, 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을 굳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상급종합병원서 진료를 받겠다는 환자의 선택을 제지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내 돈내고 치료받겠다는데 왜 간섭을 하느냐는 반발도 많다.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자원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국민들에게 적재적소에서 적정진료를 이용토록 1989년 도입된 제도다. 지역간 균형분포와 종별배치, 의료이용편의도·형평성 등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1998년 규제개혁 일환으로 진료권제도가 사라지고 의료계는 무한경쟁에 들어섰다. 의료전달체계는 현재 무늬만 남아 있다.

질병의 경중을 가지리 않고 수도권 특정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이 가속화되면서 오늘과 같은 불행이 초래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관련 현 제도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대학병원과 동네의원간 진료비 가감제도로도 이러한 현상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이 대학병원답도록 제도·사회가 이를 수용해야 하며, 중소병원·의원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외래에 열 올리는 상급종병·정책지원 덜 받는 중소병원·신뢰 못 얻는 동네의원

의사의 전문성은 특정 분야의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깊이가 더해진다. 여러 환자를 경험하니 질병의 추이나 돌발상황도 대처가 빠르다. 특히 장기이식이나 중증질환자 수술 같은 생명과 직결된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앞서 전제했듯 환자 입장에선 생명을 담보하는 만큼 진료와 수술을 잘하는 의사를 찾기 마련이다. 병원 입장에서도 하나의 질환, 예를 들어 장기이식을 많이 한 의사가 성공률은 높고 사고율이 적다면 이 의사를 적극 홍보하게 된다. 이른바 스타의사를 키우게 되는데 이는 곧 타 진료과 환자를 확보하는 계기도 된다. 건강을 챙기려는 환자의 욕구와 병원의 적극적인 자세가 맞아떨어지면서 환자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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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내원일수와 총 진료비 청구현황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4978만7822일에 7조6225억549만4000원에서, 5123만2160일에 8조 642억3241만2000원, 5062만9512일 8조5649억4363만1000원으로 늘었다.

종합병원은 7752만5847일 7조1508억9475만1000원에서, 8065만8003일 7조7170억8181만5000원, 8401만8353일 8조3377억9430만2000으로 증가했다. 의원은 5억3403만8788일 10조4854억 7129만8000원에서, 5억2361만967일 10조6741억8573만1000원, 5억2741만8493일 11조 3133억8431만1000원으로 증가했다.

이 중 상위 5개 상급종합병원만 살펴보면 환자쏠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내원일수와 총 진료비 청구를 보면 2012년 1451만4516일에 2조6078억3647만8000원이었으나 2013년엔 1515만790일 2조7623억1297만8000원으로, 지난해엔 1489만2315일로 내원일수는 조금 줄었지만 청구액은 2조9798억1450만4000원으로 늘었다.

서울지역 한 중소병원장은 "나도 환자를 진료하고 병원을 경영하지만 큰 질병을 치료하면 경험 많은 의사에게 보낼 것"이라고 토로했다. 100명의 이식경험이 있는 의사와 1~2건의 경험이 있는 의사가 있다고 했을 때 환자에게 어느 의사를 추천할 것이냐는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우리나라같이 좁은 나라는 예를 들어 중증질환센터 2~3곳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든 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데 권역별, 지역별 안배를 하면서 수십곳을 두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작 센터만 지정해놓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또는 센터 유지를 위해 예산만 계속 투자하는 것은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고 말했다. 의료전달체계도 그렇다고 비유했다.

공부하지 않는 의사…동네의원에 대한 불신도 한몫

대형병원의 환자쏠림은 동네의원에 대한 불신도 요인이 됐다.

한 개원의는 "최신의학을 항상 공부하고 열심히 환자를 보는 개원의가 많다. 그러나 20~30년 전 의학지식으로 약을 처방하는 일부 의사가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감기라고 해서 여러 차례 동네의원을 다녔는데 심각한 폐질환으로 이어지고, 소화불량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해보니 대장암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고 있다"며 "잘못된 제도 개선과 함께 의사들의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과다처방도 환자의 발길을 멀리하게 한다. 서울 강남의 한 내과 개원의는 지금은 크게 줄였지만 최근까지도 감기 환자에 대해 의약품 7개를 처방했다. 처방전을 받은 환자는 흔히 말하는 '리베이트를 받고 처방하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되고 다른 의료기관을 찾는다.

동네의원의 질 관리도 잘 이뤄져야 환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다. 개원의 스스로가 만성질환 진료는 상급종합병원보다 더 잘 본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개원의는 많지 않다.

한 개원의는 "환자들은 언론과 온라인을 통해 쏟아지는 의학정보들을 가까이 한다. 잘못된 정보들도 문제지만 전공분야를 벗어나 환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지 못할 경우까지 색안경을 끼고 의사를 바라본다"고 푸념했다.

덧붙여 "그럼에도 공부를 게을리하는 의사가 있는 것은 문제"라며, "이들은 의료제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만 정작 자신을 향한 환자들의 요구는 나몰라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환자들의 의료쇼핑도 의사가 일정부분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상급종병도 지역별 양극화…중소병원 도태 위기

의료전달체계는 국민들의 건강권욕구, 의료정보, 낮은 의료수가, 사보험 활성화, 본인부담상한제 같은 고비용진료 유인정책, 수익성 높은 외래진료 치중 등 다양한 환경들로 인해 붕괴돼 왔다.

대학병원들은 외래-진료-수술-재진 등 선순환 곡선을 그리며 발전을 거듭해 왔고,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먼 지방 대학병원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나름 선방했지만 일부는 어려움이 크다. 전달체계의 최상위에 있는 상급종합병원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허리역할을 하는 종합·중소병원들도 마찬가지. 대학병원과 동네의원에 맞춰진 정책으로 인한 정책적 불이익도 많다. 최근 위·아래에서 치이며 최악의 경영난을 맞고 있는 것이다. 중소병원협회는 "오죽했으면 28일 열릴 예정인 대한중소병원협회 총회 및 학술세미나 세션 주제를 '성장이 멈춘 시대, 중소병원의 위기 극복과 재도약 어떻게 볼 것인가'로 정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환자쏠림은 동네의원 붕괴와 중소병원·지방병원의 도태, 의료접근성 저하, 부익부빈익빈 현상 심화, 의료비 상승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계는 이는 원가이하의 낮은 의료수가, 대형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많이 볼수록 수익이 많이 발생하고 중증질환을 많이 볼수록 손실이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건강보험제도 때문으로 분석하고 건강보험료 적정 수준 인상, 행위별 수가개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행위별 수가개선, 상급병원 단순환자 비율 억제, 불필요한 규제 철폐 등을 주장하고 있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지난 2009년 의료법개정에서 의원은 외래중심, 병원은 입원중심으로 진료한다고 했고, 2011년엔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 분류하고 종별업무를 구분한 바 있다"며,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선 1차의료기관의 건전한 생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상급종합병원은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병원이 첫째 목표며, 고난도 치료에 적절한 보상, 교육과 연구에 상응하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면서 "의료전달체계를 준수하는 기관의 이익이 보장되고 되의뢰환자의 진료난이도에 따른 보상이 뒷받침되는 수가체계 확립 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장옥주 보건복지부차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러 차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강조했다. 이 틀이 제대로 갖춰져야 보건의료정책의 중심축이 바로설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의료전달체계는 또 그동안 중단됐던 정부와 의료계의 '의·정대화'를 재개토록 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의·정 모두 필요성을 인정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어떻게 정립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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