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경증, 중증, 소아, 성인 등 환자 세분화...환자 중심으로 내부 디자인 개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병원 감염관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응급실 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응급실의 문제라면 증환자와 경증환자가 분류되지 않고 응급실로 집중되는 점과 대기시간이 무척 길다는 것, 소아와 성인이 뒤섞이는 응급실 환경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정부가 응급실의 문제점에 대한 손질을 예고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응급실을 개편해야 할까? 내부 환경이나 구조 등에 초점을 두고 알아봤다.

미국 , 환자 세분화해 응급상황에 빠르게 대처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응급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내부 시스템과 디자인 등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BMC 병원은 응급실 내부 구조에 높은 점수를 받는 병원이다. 소아와 성인 등의 입구가 다르게 배치돼 있고, 소아응급실에서 아픈 아이와 아프지 않은 아이, 아픈 아이 중 열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구분된다. 응급실 내부에는 격리실과 처치실이 응급실 가장 자리에 만들어져 있고, 격리실은 모두 1인실로 구성돼 있다. 감염과 환자의 프라이버시 등을 모두 고려해 분리한 것이다.

▲ 응급상황시 미국 BHC 병원의 출입구 구조(사진 제공: 위아카이 노미경 대표)

위아카이 노미경 대표는 "BMC병원은 위급상황에 응급실 입구를 재설정해 응급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며 "미국의 응급실은 대체로 프라이버시, 감염, 차폐, 소음차단, 낙상 등을 고려한 응급실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도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의 세인트 빈센트 메디컬센터 응급센터는 환자를 위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침대가 있고, 사이드 가드를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가변형 응급실 침대가 있다. 또 환자 케어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개방형 응급실 구조로 돼 있다.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병원의 노인전용 응급실은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천장을 자연친화적 이미지로 디자인했고, 카이저병원은 이해하기 쉬운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환자들의 불만을 감소시키고 있다.

호주, 의료진 동선 맞춰 설계

지난 2011년 완성된 호주의 Cairns Hospital 응급실은 동선의 순환과 흐름을 효율적인 곳으로 손꼽힌다. 즉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효율적일 수 있도록 디자인을 변경한 것.

또 Triage(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부상자 분류) scale 즉 Resuscitation(즉시 치료), Emergency(10분 이내 치료), Urgent(30분 이내 치료), Semi-urgent(60분 이내 치료), Non-urgent(120분 이내 치료)가 지켜지고 있다.

이 외에도 응급실을 한눈에 보기 쉬운 사인과 컬러 구분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웨이파인딩(Wayfinding) 했고, 병원 이미지를 통일해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능률적인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영국, 응급실 폭력 줄이려 개선 시작

영국의 Pearson Lloyd 응급실은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응급실 내 폭력을 줄이기 위한 서비스 디자인으로 시작된 작업이었다.

NHS가 연간 응급실을 이용한 사람을 조사했더니 2100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협이나 조롱 등 폭력사건이 매년 5만 9000건이나 됐다. 이후 NHS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더 나은 응급실(A better A&E)'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 영국은 '더 나은 응급실 프로젝트'를 진행해 응급실 폭력을 감소시키기도 했다. 

오래 기다린 환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응급실 상황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안내 패키지를 개발했다. 또 복도에 안내판을 붙여 환자 자신이 심각한 상태로 분류됐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응급실 내 진료 과정을 '접수, 평가, 치료, 결과'의 네 단계로 나눠 환자가 현재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또 응급실 안의 혼잡도 등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했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응급실 방문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변 응급실 위치와 혼잡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해 특정 병원에만 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75%의 환자가 대기 시간 동안의 불만이 줄어들었다고 답했고, 의료진에 대한 비물리적 폭력 발생도 이전 대비 50%가 감소했다.

우리나라 응급실 환자 분류 시급

미국이나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 응급실도 환자 분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자를 경증환자, 중증환자, CPR이 필요한 환자, 소아환자, 술 취한 환자 등 응급실 사용자 유형별 특징을 분석해 환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캐나다 어빙 그린버그 가족 암 센터 응급실 모습(사진 제공 : 위아카이 노미경 대표)

최근 '응급실 의료서비스 경험제고를 위한 환자 유닛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위아카이 노미경 대표는 응급실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를 구분하고 이들에 맞는 처지를 가장 빠른 시간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 대표는 “응급실에서 경증환자는 진료시간이 짧고 대부분 앉거나 서서 진료를 받는다. 군에 따라 베드를 의자로 대체 시켜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며 "베이스크린을 통해 환자의 개인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증환자와 CPR이 필요한 환자군은 베드보다는 처치도구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오픈형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며 "커튼을 이용해 공간을 나눠 개인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세인트 조 헬스케어센터 응급실 모습(사진 제공: 위아카이 노미경 대표)

전문가들은 환자가 도착하는 동시에 신속한 처치가 가능하도록 구역(zone)별로 색깔을 구별하는 것도 응급실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동선 편의와 접근 용이성, 빠른 판단과 진단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명지병원·삼성서울 개선 앞장

우리나라에서도 응급실 환경을 개편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2011년 5월 문을 연 명지병원 소아응급센터는 성인응급센터와 분리돼 있는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우주선 모양의 응급실 출입문, 흰 구름 조각이 그려진 진료실의 하늘색 천장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응급실을 꾸몄다.

메르스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지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도 국내에서 응급실 개선에 앞장선 곳이다. 국내 처음으로 실시간 응급의료정보 시스템 POINT(Patient Oriented Information NeTwork)를 자체적으로 구축, 환자들이 응급실 도착 직후 대기하는 공간에서는 응급실 재원환자 수와 혼잡도, 체류 예상시간 등 응급실의 종합적인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서울시가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동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5개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서울형 시민공감 응급실' 운영을 발표했다.

기존 중증환자부터 단순진료 환자까지 혼재돼 있던 병상공간을 일반·외상·중증·절대 안정 구역으로 나눠 배치해 환자를 배려했다. 또 환자별 진료상황, 예상 대기시간 등을 실시간 제공하는 '환자 진료 현황판'을 설치했다. 환자 이름 옆에는 주치의와 담당간호사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다. 또 환자별 각 검사 진행 사항이 자세하게 표시돼 있고 진료와 대기시간까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응급실에서 어떤 진료가 이뤄지는지를 한눈에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디자인한 '응급실 이동안내 표지'를 벽면 스티커, 리플릿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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