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파리넬리’

 
뮤지컬 ‘파리넬리’
5월 1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작품의 종반부 파리넬리가 등장한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아리아 ‘울게하소서’가 흐른다. 높은 굽에 화려한 깃털 장식, 노란 머리의 가수는 우리에게 약간은 낯설고 생경한 이방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파리넬리의 표정엔 작품 하나를 넘어선 슬픔이 있고 또 아픔이 보인다.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그의 숨소리, 눈빛에 관객은 압도당한다. 수백 명의 관객이 숨조차 멈춘 채 그의 몸짓 하나 숨결 하나에 혼이 빠진다. 넘버가 끝나고 그가 손을 뻗는 순간 객석에선 환호가 넘친다.

영화 파리넬리의 그 유명한 장면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이 풍경이 뮤지컬 파리넬리 공연장에서 매회 펼쳐지고 있다. 올해 초 프리뷰 형태로 2주간 짧게 올라갔던 이 작품은 입소문만으로 매진을 기록하면서 당시 표를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중극장 규모로 그 흔한 스타 캐스팅 없이 이 작은 초연 창작 작품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비결은 뭘까?
 
온전한 육성으로 듣는 ‘울게하소서’
▲ 루이스 초이
영화 파리넬리를 본 관객이 아니더라도 한번은 접해본 울게하소서는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즉,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는 카운터테너, 소프라노, 그리고 기계음까지 활용해 만들어낸 음성이다. 영화의 장면에서 관객들이 혼절 직전까지 가게 하는 고음의 매혹적인 선율은 실제하지 않는 소리인 것이다.

이 목소리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배우의 목소리만으로 재현해 내는 뮤지컬이 바로 파리넬리이다.

루이스 초이는 사실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카운터테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성악을 하지 않았고, 뒤늦게 독일에서 수학하면서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슈만 국립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 Belcantoartist 카운터네너로 활동 중이다. 실제로 필자도 올해 초 처음 작품을 접하고서야 이 성악가의 자료를 찾아보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이 힘들 정도로 루이스 초이의 노래는 강력하다.

기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카운터테너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도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교적인 부분에서의 호불호를 넘어 루이스 초이의 노래엔 익숙한 한이 있다. 파리넬리의 인생을 2시간 남짓에 담아야 하는 작품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순전히 루이스 초이가 부르는 넘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첫 뮤지컬 데뷔이기에 대사나 동작을 통한 연기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노래에서 전해지는 연기는 그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는다. 혹시라도 사전 자료가 필요하다면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루이스 초이의 울게하소서나 진혼곡을 접해보길 바란다. 같은 역할을 맡은 고유진도 가수 플라워 출신이다. 고음 소화가 탁월한 배우이고 이미 여러 뮤지컬 작품으로 연기활동을 한 바 있다. 고유진의 파리넬리도 부족함이 없다.
 
화려함에 가려진 가혹한 운명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카를로 브로스키는 주교의 강압 때문에 거세 당한다. 거세의 순간, 작곡가를 꿈꾸는 형 리카르도의 야망에 찬 눈빛이 가슴에 각인됐지만 애써 무시한다. 그리고 그는 '파리넬리'라는 예명으로 리카르도와 함께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을 흔드는 카스트라토가 된 파리넬리.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곡가인 리카르도의 음악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형과의 불화 속에서 과거의 악몽이 다시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은 안젤로와 주고받는 편지뿐. 기대했던 유럽 투어에 회의를 느끼던 파리넬리는 안젤로를 꿈꾸고, 리카르도는 영국의 흥행사 래리펀치에게서 영국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다시금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파리넬리와 리카르도. 하지만 래리펀치는 로열 오페라단과 경쟁 관계에 있는 노블레스 오페라단의 흥행사였다. 파리넬리는 로열 오페라단의 가수인 안젤로와 대립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냉정한 오페라 무대 위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안젤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마지막 결정을 하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카스트라토의 드라마틱한 삶은 아리아 넘버의 화려함에 가려진 가혹한 운명을 보여준다. 거세당하고 이용당하고 또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파리넬리의 운명은 화려한 무대와 객석의 찬사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극치의 화려함 속에 담긴 슬픔. 삶의 선택마다 겪어야 하는 절망과 비운이 담긴 노래, 표정 그리고 몸짓이 이 작품의 주제이자 힘이다.

아직 창작 초연인 탓에 초반부에서 약간의 친절하지 않은 나레이션과 결말 부분의 클라이막스가 약한 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파리넬리라는 캐릭터로 봉합된다. 이 작품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가급적 영화 파리넬리를 찾아보고 가길 권한다. 시간적 제약이 있다면 시놉시스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뮤지컬 파리넬리는 이미 소개했듯이 듣는 재미의 극치를 선사한다. 특히 국내 최초로 20명의 합창단이 21명의 배우진과 함께 무대에 선다. 오페레타 형식을 차용하기 위함인데 이 때문에 도입부나 중반부 오페라 아리아 부분에서는 대극장 합창 씬보다도 더 큰 웅장함을 선사한다. 간결한 무대디자인에 화려한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의상은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파리넬리 역의 루이스 초이는 파리넬리는 또 다른 나의 재발견이라고 인터뷰에서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파리넬리의 음악이 본인의 음악이며, 또 이 작품을 통해 그의 고뇌와 슬픔 외로움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뮤지컬 파리넬리는 5월 1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짧은 기간이지만 꼭 놓치지 마시길. 안산과 의정부에서도 추가공연을 가질 계획이다(문의: HJ컬처 02-588-7708).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