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신임 연구조정실장 인선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의료정책연구소를 책임지는 연구소장도 아닌, 관리직 성격의 연구조정실장 인사가 뭐 그리 대단한 사건이겠느냐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새로 의료정책연구소에 입성한 인물이, 다름 아닌 '이진석 교수'이기 때문이다.

이진석 교수는 대표적인 진보학자로,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며 포괄수가제 논란 등 각종 보건의료이슈를 따지는 자리에서 번번이 의료계와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로, 의료계가 여전히 '미워라 하는' 김용익 의원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런 인물이 새로 인선된 집행부 명단에 올랐으니, '깜놀(깜짝놀랐다)'이라는 의사들의 반응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논란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추무진 회장은 왜, 이진석 교수를 택했을까? 연구소장도 아닌 '연구소와 집행부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의 연구조정실장 인사에, 굳이 무리수를 둔 이유가 뭘까? 

현재까지 이에 대한 의협의 공식입장은 "의료계 정책 개발 강화를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연구소 발전의 기틀을 더욱 다져가기 위해서"다. 인사의 파격성과 이후의 논란에 비춰보자면, 그 이유가 너무 전형적이고 착하다. 무엇보다 수많은 의료정책전문가 가운데 왜 이진석 교수였나는 물음에는 적절한 답을 주지 못한다.

때문에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진석 교수의 선임을 두고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서울대 라인 청탁설부터 정치권 추천설, 추무진 집행부 '전향설'까지 갖가지 소문들이 양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무진 회장의 평소 인사 스타일에 비춰 이번 인사가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발이 예상되지만 대의를 위해 밀어붙이는 '인사 강행'이라기보다는, 반발을 미처 예상치 못해 벌어진 '인사 사고'에 가까워 보인다는 얘기다.

실제 추무진 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전형적인 폐쇄형이다. 주변으로부터 임원진에 합류할 인재들을 추천받지만, 어떤 인물을 어디에 준용할 것인지는 본인이 심사숙고해 최종 결정하고,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야 해당자에게 통보하는 방식이다. 

이번 39대 임원진 구성 또한 막판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임원진에 합류한 임원들조차 본인의 '선임' '유임' 여부를 짧게는 명단 발표 불과 수 일전인 지난 주말에야 확인했을 정도다.

그렇다보니 의협 내부에서 새로 합류할 인물들에 대한 '검증장치'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사권자인 추무진 회장은 이진석 교수와 관련된 '사연'을 잘 몰랐고, 의협 내부의 실무진들은 이 교수의 합류 여부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명단이 공개된 뒤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는 얘기다. 

의협은 29일 이번 인사 논란과 관련해 긴급브리핑을 열었다.

이진석 교수는 이날 "추무진 의협 회장으로부터 직접 '의협 활동을 같이 할 생각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고, 의사로서 의사의 대표조직인 의협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집행부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추 회장으로부터 직접적인 합류 제안과 통보를 받았다는 의미다.

추 회장의 최측근이자, 체계상 의사협회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강청희 상근부회장 마저도 복심을 그저 짐작할 뿐이다. 

강 부회장은 이진석 신임 연구조정실장을 향해 기자들의 날선 질문들이 이어지자 "훌륭한 학자이시니 모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의 변화와 다른 시각 등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논란의 확산에도 불구, 추무진 회장은 이번 인선 배경에 대해 이렇다할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29일 브리핑에도 이진석 교수와 강청희 상근부회장, 신현영 홍보이사 겸 대변인만 참석했을 뿐, 추 회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 시각, 추 회장은 남산에서 열린 '의협 임직원 한마음 걷기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행사는 추 회장의 재선과 39대 집행부 출범을 기념하는 임직원 단합대회 성격으로 마련됐다) .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언제나 뒷말을 부르는 것은 실수 그 자체가 아닌, 실수가 벌어진 이후의 태도다. 인사 논란의 최종 책임은 인사권자에게 있으며, 하물며 논란을 불러온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라면 그에 해명할 책임은 당연히 추무진 회장에게 있다.

논란을 잠재우는 가장 명쾌한 방법은 깨끗한 해명이다. 인사 논란을 해명하는 자리에 인사권을 행사한 회장을 대신해 '선임을 받은', 또 선임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받는 당사자가 나서도록 한 이 상황이 과연 온당한가. 의료계 최고 수장의 뒷모습을 본 것만 같아 뒷맛이 꽤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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