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비급여 문제를 지적한 판결에 불과...면허범위와 관계 없어

한의사가 약침을 놨더라도 그 자리가 경혈이 아닌 정맥일 경우에는 '의료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를 두고 한의계는 혈맥약침술이 '신의료기술'을 신청하지 않아 나온 판결일 뿐, '면허범위'와는 관계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부산 P요양병원의 한의사 O씨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과다본인부담금 확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앞서 한의사 O씨는 지난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상세불명의 기관지 또는 폐의 악성 신생물(암)'로 내원한 환자에게 항암혈맥약침을 놓은 후 920여만원의 본인부담금을 받았다.

환자가 가입한 보험사는 심평원에 해당 약침술에 대해 비급여 여부를 문의했고, 이 과정에서 심평원은 해당 시술에서 과다본인부담금이 발생한 것을 확인한 후 O씨에게 환급 명령 처분을 내렸다.

심평원은 "혈맥약침술이 경혈에 침을 놓는 약침술과 달리 혈관에 약물을 주입해 치료를 하는 것이므로, 기존 약침술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신의료기술 신청부터 받은 후 시술을 해야 한다"고 처분 사유를 제시했다.
 

약침, 약침시술 장면.(위 기사와 관계 없음)

한의사 O씨는 "혈맥약침술이 보건복지부 고시에서 비급여 항목으로 등재된 약침술에 포함된다"며 "심평원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소를 제기한 것.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전에 보건복지부에서 '혈맥약침술에 대해 한의사의 면허된 범위 내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며 "한방원리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이므로, 한의사 면허 내 의료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대한한의학회에서 '혈맥, 혈락은 현대적 혈관의 개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한의학에서 치료 대상 및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고 밝힌 바 있다"며 침술로 인정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혈맥에 대한 침술에 침구 효과가 있다는 근거 자료도 찾을 수가 없다"며 "혈맥약침술에서 혈맥이 약물의 이동통로 기능만 한다는 점을 볼 때 혈맥약침술은 침술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로지 약물 효과만 극대화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심평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혈맥약침술은 사건 고시에 등재된 비급여 항목인 약침술에서 발전한 치료법이지만 약침술과 시술대상, 시술량, 원리 및 효능발생 기전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며 "추후 이를 사용하려면, 신의료기술 평가 등의 절차를 통해 별도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한한의사협회는 단순 '임의비급여' 소송일 뿐 '한의사 면허범위'나 '진료영역'과는 별개임을 주장했다.

한의협은 "이번 판결 내용은 혈맥약침이 아직 신의료 기술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비를 환수한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결코 혈맥약침이 한의사의 진료영역 밖의 행위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판결에서는 재판부와 심평원은 '혈맥약침술에서 이용되는 혈맥이 한의학적으로 경혈과 같이 치료의 대상이기는 하나, 치료방법을 고려할 때 기존의 약침술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오히려 혈맥약침술이 약침술에서 발전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혈맥약침술이 한의사의 의료행위인 약침술을 토대로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