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기수’


 
뮤지컬 ‘로기수’
5월 31일까지 대명문화공간

1952년 거제포로수용소.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6.25 전쟁.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 중 하나가 포로수용소가 아닐까. 한 민족이 상반된 이념에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한 아픈 역사의 한 대목에서 빼앗긴 것은 목숨만이 아닐 것이다.

그 이름 없는 포로들의 가족, 청춘 그리고 저마다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가장 아프고 치열했던 역사의 한 장면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춤이라는 꿈을 꾸는 17세 북한군 포로 소년 로기수. 좌우이념의 대립으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를 넘어 꿈을 향해 달리는 감동의 창작 뮤지컬 로기수를 만나보자.

복면 쓰고 춤 추는 포로들 사진서 모티브
이 작품은 복면을 쓰고 춤추는 포로수용소 포로들의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대체 어떤 사연이 이들을 복면 속에 신분을 숨기면서까지 춤추게 했을까라는 모티브에서 시작된 스토리라인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로기수 공연의 모티브가 된 사진.
 출처: ⓒWerner Bischof/Magnum Photos/EuroCreon
창작 뮤지컬이고 소극장 뮤지컬인 탓에 군데군데 서투른 넘버나 장면은 있지만 그 자체가 감동인 이유는 바로 이 전쟁터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삶이라는 점을 소위 잘 빠진 스토리에 녹아냈기 때문이다. 포로들 사이의 이념전쟁이 극에 달해 있고 미군들은 종전 후 자신들의 이익계산에만 사로잡혀 있던 거제포로수용소. 북한 포로들의 수뇌부도 다를 바는 없다.

로기진과 로기수는 전쟁 통에 미군 폭격에 어머니를 잃었고 그 탓에 로기진은 북한포로의 혁명전사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최고의 전사가 됐다. 로기수는 그런 형 밑에서 그저 시키는 대로 배식하고 이유도 모르는 적개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리운 것은 오로지 전쟁 전 평화로웠던 일상과 형 그리고 어머니.

미군들은 전쟁 막바지에 제네바협정을 걱정하게 되고 유엔사절단에게 정치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탭댄스단을 급조한다. 미국사절단으로 근무하던 흑인상사 프랜을 통해 포로들을 속여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탭댄스 공연을 준비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춤에 대한 열정과 소질을 발견하게 된 로기수는 결국 목숨을 건 공연을 하게 된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찬사받는 작품 중 하나인 빌리엘리어트의 모티브와 비슷하면서도 더 극한의 상황에서 춤을 꿈으로 이야기한 이 작품은 우리네 역사를 닮고 있어 더 공감하게 된다. 극의 말미, 극만큼 매력적인 탭댄스는 삶의 절규가 되고 어쩌면 진부한 대사가 될지도 모를 포로들의 외침은 관객들의 가슴을 친다. "각오 높게 임하라. 그곳이 전쟁터일지라도"

소극장 한계 뛰어넘은 ‘탭댄스’
안무는 뮤지컬의 중요 요소 중 하나다. 대극장에서의 화려한 안무는 이제 당연한 것이고 필수적이다. 소극장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른데, 공간적인 제한이나 투자 규모 때문에 대부분 라이브연주나 화려한 안무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탭댄스라는 장르를 통해 소극장 무대의 한계를 넘어 대극장보다 더한 춤을 선사한다. 게다가 작은 극장인 탓에 탭소리가 난타의 북소리만큼이나 음향적인 울림을 준다. 탭댄스의 화려함보다는 치열함이 이 극에는 더 잘 어울린다. 가까운 무대는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 땀방울까지 전달하면서 주제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시각을 만들어낸다. 2막으로 들어서면 마치 내가 포로수용소의 객석에 앉아 처절한 포로들의 절규를 듣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사진 속 포로들의 춤이 포크인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보면 탭댄스를 기용한 창작자의 영리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관객 사로잡는 배우들의 ‘땀’
9명의 배우들 대부분이 탭댄스를 소화해야 하고,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탓에 몸싸움도 많다. 처음에는 땀방울이 보이다가 2막 후반부에서는 말그대로 땀에 젖은 로기수를 만나게 된다.

공연을 보는 내내 로기수의 열정이 배우들 자체라는 점은 이 작품의 큰 무기. 일부 장면이 여전히 신파적이고 또 일부 장면에서는 넘버가 약하지만 최고의 감동은 역시나 배우들의 땀에 있는 것 같다. 각오로 표현된 배우들의 부상투혼이 관객들의 탄성과 박수로 터져나오고 작은 공간에서 3시간 남짓 관객들은 작품에 동화된다. 스태프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그 작은 무대에 미니 회전무대와 부양장치는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대학로 무대에 꿈같아 보인다. 작은 밴드지만 2층에 자리잡은 라이브밴드의 연주는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극을 더 살아 숨쉬게 한다.

로기수 역의 김대현은 왕세자실종사건에서도 보여줬듯백지 같은 순수함과 치기 그리고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한다. 로기수 형인 혁명전사 로기진 역의 홍우진은 역대 최고의 씽크로로 말 그대로 로기진을 연기한다. 돗드 역의 권동호도 기대 이상의 호연을 보여준다. 모두 최고의 캐스트들이지만 상황이 허락한다면 홍우진, 김대현, 오의식 캐스팅을 추천한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소재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고 특히 자주 보기 힘든 최고의 탭댄스와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봄 꼭 추천하는 소극장 뮤지컬이다. 삶에 지친 우리에게도 꿈은 있고 어쩌면 모진 세상 풍파에 정말 각오 있게 노력해도 내 꿈은 이루기 어려운 신기루 같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로기수가 목숨을 걸고 지킨 그 각오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빌리엘리어트에서 춤은 전기충격같이 모든 걸 잊고 빠져들게 한다고 했고 로기진은 작은 탭에 전쟁의 극한 공포도 이겨낸다.

“각오 높게 임하라 그곳이 전쟁터일지라도” 뮤지컬 로기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뮤지컬 로기수는 5월 말일까지 대학로 대명문화공간 비발디파크 1관에서 공연되며 1층 중간블럭을 추천한다(공연 문의 02-541-2929).
 송혜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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