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중독' 진단기준·치료전략 마련해야

요즘 우리 사회는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을 시작으로 백화점 모녀, 사무관의 음주 행패, 부하직원에 대한 욕설 등 일명 '갑질' 관련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만큼 갑을관계는 대기업 횡포가 극심한 경제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형성되고 있어 이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경정신의학계에서는 과도한 권력 남용을 하나의 질환인 '권력중독'으로 간주하고, 공식적인 진단기준 및 치료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카이스트 뇌공학 박사이자 이지브레인 뇌기능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이재원 원장은 "현재 권력중독을 진단할 수 있는 선별도구들이 있지만 공식적인 진단기준은 없는 상태"라며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갑질사건에 매우 민감한 만큼 이를 신경정신학적 관점에서 풀 수 있는 방법들은 없는지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뇌 이상과 관련…도파민 수치 비정상

 

현재 미국은 소위 '권력중독'에 따른 폐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실제 권력을 과도하게 남용하는 사람들에서 나타나는 특징 분석을 비롯한 치료법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 중 심리학자이자 현재 위스콘신 대학 건강 정서연구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David L. Weiner 박사는 "권력중독자는 자신의 지배권이 조금이라도 침범당했다고 생각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자신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보복을 꿈꾸는 경향이 있다"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Weiner 박사는 자신을 존대하지 않는 사람에겐 어떤 식으로건 보복을 가하는 버릇은 권력에 굶주렸던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됐을 때 드러내는 전형적인 권력중독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권력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또 권력 남용을 중독이라고 지칭할 만한 근거는 있는 걸까?

미국 스탠퍼드 대학 Robert I. Sutton 교수가 펴낸 '또라이 제로 조직(The No Asshole Rule)'의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실제로 직장 내 악질 10명 중 7명은 보스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50여 년간 권력 부문을 연구해 온 미국 UC 버클리대 Dacher Keltner 교수가 일명 '악질 보스'가 많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심리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권력을 거머쥔 사람일수록 적의를 갖고 타인과 동료를 괴롭히며 모욕을 줬는데, 마치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안와전두엽이 손상되면 사용 행동(utilization behavior) 장애, 지나친 모방 행동, 사회 기준과 규범이 무뎌지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거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즉 과도한 권력 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정신건강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뇌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

뇌 이상과 관련해서는 2013년 신경심리학자 Ian Robertson 박사가 발표한 "실험 대상군에게 권력을 주니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했다"는 논문이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Robertson 박사는 "권력이 지나치게 남용되면 도파민이 비정상적으로 촉진되면서 타인의 공감능력이 상실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오직 목표달성에만 돌진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거울 뉴런' 기능 못해 공감능력 상실

이 중 지나친 권력 남용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최근 캐나다 연구진이 또 한 번 입증했다.

 

지난해 4월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어 대학 Hogeveen J 교수팀이 심리실험과 자기공명단층촬영(MRI)을 통해 뇌 활동을 측정한 결과, 권력을 가졌던 기억을 떠올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와 비교했을 때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강압적인 상사가 부하 직원이 느끼는 고통을 거의 공감하지 못하는 것과 일치했다(J Exp Psychol Gen 2014;143:755-62).

'거울 뉴런'이란 타인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신경세포라는 뜻으로, 1990년대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원숭이 실험을 통해 최초로 발견한 현상이다.

눈여겨볼 점은 권력을 과도하게 남용하는 사람들을 약물로 치료할 수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도파민을 정상 수치로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이재원 원장은 "도파민 수치가 비정상적인 사람은 권력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약물치료를 통해 도파민 수치를 정상으로 맞춰준다면, 과도한 충동 욕구를 억제해주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도파민 수치가 정상인 사람에서도 권력중독자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일 때가 있다. 이들은 권력 남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라는 인식이 있지만, 조절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습관 교정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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