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빠르고 강하게 조절하면 장기적 심혈관사건 혜택 담보

 

심혈관 위험인자를 초기에 집중치료함으로써 장기적인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른바 레거시효과(legacy effects)가 최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혈당을 중심으로 대두돼 오던 이 개념이 혈압과 지질 분야에서도 임상적 실체가 보고되면서 심혈관 위험인자 전반으로 확대·적용되고 있는 것. 지금까지 고혈당의 메트포르민, 고혈압의 ACEI와 이뇨제, 지질이상의 스타틴 등을 통한 초기 집중치료로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심혈관질환 개선혜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돼 왔다.

당뇨병 환자에서 초기의 집중적 혈당관리가 궁극적인 임상결과 개선을 가져온다는 점은 일련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RCT)를 통해 밝혀져 왔다. 현단계에서 초기·집중 혈당관리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설명은 대사기억(metabolic memory) 가설이 유일하다.

대사기억이란 고혈당 발생 시 발현되는 일련의 체내 세포단백질 이상반응이 기억으로 고착돼 향후 합병증 이환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이 같은 현상이 고혈당 노출 초기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일단 대사기억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혈당이 정상적으로 조절된다 해도 이 현상의 폐해를 돌이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혈당 노출이 장기화되면서 합병증 원인물질이 축적되고 여타 위험인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치면서 당뇨병 합병증 위험은 더욱 악화된다. 즉, 과거 고혈당에 노출됐던 기억이 현재의 당뇨병 합병증 진행에까지 이월효과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이를 다시 풀어 해석해 보면, 대사기억은 고혈당 노출로 인한 합병증 예후의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미 대사기억이 시작되면 차후에라도 적극적인 혈당조절을 통해 진행을 멈추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초기의 집중 혈당조절을 통해 대사기억을 차단하거나 늦출 경우, 당뇨병 합병증 역시 지연이나 예방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당뇨병 환자에서 초기·집중 혈당조절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며, 이른바 레거시효과의 개념이다.

대사기억은 아직 명확한 기전이 입증되지 않은 가설단계지만, DCCT·EDIC 연구를 통해 처음 제기됐으며 UKPDS·UKPDS-10 연구를 거치면서 재차 그 가능성을 검증받았다. Diabetic Medicine 2007;24:582-586에 발표된 실험실 연구논문에서는 고혈당 스트레스 신호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세포단백질의 비효소의존성당산화(non-enzymatic glycation of cellular proteins)와 과도한 활성산소종(cellular reactive oxygen)에 의해 대사기억이 촉진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DCCT와 EDIC
대사기억 가설은 1990년대 이뤄진 DCCT(NEJM 1993;329:977-986)와 그 후속으로 추가관찰을 진행한 EDIC(NEJM 2005;353:2643-2653) 연구에 기원을 둔다. 혈당조절이 당뇨병 합병증 개선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던 당시에 제1형 당뇨병 환자에서 그 효과를 입증했으며, 더 나아가 초기의 집중조절 효과가 장기간 지속됨을 보여줬다.

DCCT 연구는 제1형 당뇨병 환자에서 당시의 수준으로 혈당을 정상범위까지 적극적으로 낮추는 집중치료군과 기존 방법을 유지하는 대조군을 비교했다. 집중치료군의 평균 망막증 위험이 대조군과 비교해 76%까지 감소되면서 연구는 6.5년 시점에서 조기종료됐으며, 이후 대조군 환자들은 모두 집중치료군으로 전환됐다. 이후로 현재까지 진행된 일련의 대규모 RCT 연구에서 집중 혈당조절 전략은 미세혈관합병증 개선에 뚜렷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EDIC 연구는 DCCT 대상환자들을 10년간 추가적으로 장기간 추적·관찰한 결과다. 주목해야 할 점은 DCCT 조기종료 후 대조군 환자들이 모두 집중치료군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관찰결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우선 모두가 집중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DCCT에서 나타난 집중치료군과 대조군의 미세혈관합병증 개선의 차이가 유지됐다. 또 다른 분석에서는 과거 집중치료군의 주요 심혈관사건 위험이 대조군과 비교해 42%(P=0.02), 비치명적 심근경색증·뇌졸중·심혈관 사망이 57%(P=0.02)까지 감소했다. 미세혈관에 이어 대혈관합병증에서까지 개선효과가 관찰된 것이다.

학계는 과거의 대조군을 집중치료군으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난 점에 대해 고혈당의 폐해가 어느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고착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이 같은 시점이 고혈당 노출 초기에 나타나는 세포단백질의 이상반응과 이에 대한 기억에 해당한다며, 대사기억 가설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UKPDS와 UKPDS-10
DCCT가 제1형 당뇨병 환자를 검증했다면, UKPDS(Lancet 1998;352:837-853, 854-865) 연구는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신규 당뇨병 진단 환자에서 생활요법 또는 약물을 통한 적극적 혈당조절의 합병증 예방결과를 비교했다. 약물치료는 설포닐우레아 또는 인슐린을, 과다체중인 하위그룹 환자에게는 메트포르민을 투여했다.

10년 관찰기간 동안 설포닐우레아 또는 인슐린 치료그룹의 경우, 당뇨병 관련 종료점(대혈관 및 미세혈관합병증)에서 생활요법군 대비 12%의 위험도 감소효과를 보였다(P=0.029). 이 같은 유의성은 대부분 미세혈관합병증의 상대위험도 감소(25%, P=0.0099)에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심근경색증·당뇨병 기인 사망·전체 사망률의 상대위험도 감소는 각각 16%(P=0.052)·10%(P=0.34)·6%(P=0.44)로 통계적 유의성에 도달치 못하거나 개선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한편 메트포르민 치료 하위그룹은 당뇨병 관련 종료점의 상대위험도 감소(32%, P=0.002)와 더불어, 심근경색증(39%, P=0.010)·당뇨병 기인 사망(42%, P=0.017)·전체 사망률(36%, P=0.011)에서도 유의한 통계치를 얻었다.

UKPDS가 완료된 후 또 다른 10년간은 내원과 설문을 통해 생존자들의 대혈관·미세혈관합병증 및 사망에 대한 모니터링이 실시됐다. 두 그룹의 특정 치료방법 차이는 유지되지 않고 관찰만이 진행됐으며, 이로 인해 과거 시험군과 대조군의 A1C 차이는 모니터링 시작 1년 후 소실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링 완료시점에서 설포닐우레아 그룹 생존자들의 생활요법군 대비 당뇨병 관련 종료점 감소는 9%(P=0.04)로 통계적 유의성을 유지했다. 미세혈관합병증(24%, P=0.001)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심근경색증(15%, P=0.01)과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13%, P=0.007)에서조차 UKPDS 당시와 달리 통계적 유의성에 도달했다. 메트포르민 치료 생존자 그룹은 당뇨병 관련 종료점(21%, P=0.01), 심근경색(33%, P=0.005),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27%, P=0.002)에서 보다 큰 혜택으로 이어졌다.

지질·혈압 치료의 레거시효과
반면 이상지질혈증이나 고혈압은 고혈당에서 관찰되는 이 같은 특성이 적어 혈관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간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며, 초기에 목표치에 도달해도 이를 유지(지속)하지 못하면 다시 본래의 위험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에서 유지요법이 강조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질이상 환자에서도 초기의 집중치료가 장기적으로 심혈관사건 개선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연이어 보고되고 있다. 학계는 이를 두고 고혈당에서 관찰됐던 레거시효과가 이상지질혈증 치료에서도 관찰된 것이라며 초기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ASCOT-LLA, ASCOT-LLA-11
지질치료의 레거시효과는 스타틴이 대표적이다. 아토르바스타틴을 통해 초기 집중지질치료의 장기적인 심혈관사건 개선 혜택을 입증한 ASCOT-LLA와 ASCOT-LLA-11 연구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ASCOT-LLA-11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에서 초기부터 아토르바스타틴 치료를 적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사망률 감소 혜택이 개선·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초기의 적극적인 혈당조절을 통해 미세혈관 및 대혈관 합병증을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던 당뇨병 환자에서의 레거시효과가 스타틴을 통한 이상지질혈증 치료에서도 관찰됐다는 데 힘을 실고 있다.

WOSCOPS, WOSCOPS-20
가장 최근에는 또 다른 스타틴 제제인 프라바스타틴의 장기적인 임상혜택이 보고된 바 있다. WOSCOPS 연구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글래스고우대학의 Chris Packard 교수는 지난해 미국심장협회(AHA) 연례학술대회에서 WOSCOPS 연구의 20년 관찰결과를 발표, “5년 관찰에서 확인된 프라바스타틴의 심혈관사건 예방효과가 20년까지 유지·개선됐다”고 밝혔다. Packard 교수는 “5년에 걸친 프라바스타틴의 초기치료 전략이 레거시효과를 발휘해 장기적으로 심혈관 혜택을 담보했다”고 설명했다.

총 20년 관찰결과, 5년간 프라바스타틴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전체 사망률은 위약군 대비 13% 유의하게 낮은 수치를 보였다(P<0.001). 관상동맥질환 사망률 역시 27% 감소하며 유의한 혜택을 지속했다(P<0.001). 이 외에도 심부전 입원율이 31%(P<0.001), 심혈관질환 입원율은 25%(P<0.0001) 유의하게 감소했다.

ADVANCE, ADVANCE-ON
심혈관 위험인자 관리의 레거시효과는 혈압치료에서도 관찰됐다. 당뇨병 환자에서 혈압과 혈당의 집중조절 혜택을 검증한 ADVANCE 연구가 대표적이다. NEJM 2014;371:1392-1406에 게재된 ADVANCE-ON 연구에서는 ADVANCE의 혈압치료 환자들을 10년 정도 관찰한 결과, 본래 연구에서 확인된 페린도프릴 + 인다파미드의 병용요법의 대혈관합병증 및 사망률 개선효과가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ADVANCE 연구가 종료된 후에, 남은 생존자(1만 1140명 중 8494명)들을 대상으로 5.9년(중앙값)의 확대관찰이 진행했다. 결과는 ADVANCE 종료 후 두 그룹 간에 혈압의 차이가 소실됐음에도 불구하고, ADVANCE를 통해 적극적으로 혈압을 조절했을 당시의 전체 사망률과 심혈관 원인 사망의 감소효과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으나 계속 유의한 상태를 유지했다(사망률 hazard ratio 0.91, P=0.03, 심혈관 원인 사망 0.88, P=0.04). 연구팀은 “심혈관사건과 이로 인한 사망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장·단기적으로 혈압을 적극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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