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약분업 재평가 논란] 선택분업 논의 '솔솔'...정부·약계는 ‘팔짱’
의료서비스 질 향상·전달체계 개선도 '헛구호'
의료계는 정부가 주창한 의료서비스 질 향상도 헛구호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병의원과 약국을 오가는 시간과 조제료 부담 등을 고려할 때 국민들의 불편은 늘었다는 주장이다. 약사가 복약지도를 철저히 해 국민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던 주장은 이제 논란거리도 못 될 정도다.
김홍식 원장은 "조제 독점권을 보장받았으니, 약사 입장에서는 복약지도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었다"며 "2000년 조제료 수가책정 시 복약지도를 3~5분 행하는 것으로 기준을 삼았으나, 실질적으로 복약지도는 25초 이내로 처방전에 명기된 복용 방법을 읽어주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약분업이 동네의원 붕괴로 대변되는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의료서비스 이용이 불편해진 환자들이 장기처방과 복수처방을 요구하면서 의사의 진찰료 수입이 감소했고, 의료 재투자 여력이 소실돼 동네의원이 회생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는 것. 여기에 환자들의 병원쏠림 현상이 맞물리면서 동네의원이 붕괴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의약분업은 건강보험 재정 지출 감소와 약사의 복약지도 서비스 개선, 그리고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목표를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 채 국민부담과 불편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의약분업 재평가를 통해 선택분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수흠 서울시의사회장은 "2013년 한 해 동안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조제한 것은 모두 4억 800만건으로, 국민 1인당 평균적으로 10번씩 병의원과 약국을 오갔다"며 "엄마 등에 업힌 갓난아기, 무릎관절로 고생하는 할머니 등 누구도 예외없이 처방전을 들고 병의원과 약국을 오간 것"이라고 여론을 환기했다.
이어 "의약분업 이후 13년 동안 약국관리료, 조제기본료, 복약지도료, 조제료, 의약품관리료 명목으로 약값을 빼고 약국에 지불한 돈이 무려 30조원에 이른다"고 꼬집고 "국민들은 과연 30조원 어치의 혜택을 누렸느냐"고 따져물었다.
의약분업 재평가…해법은 선택분업?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의약분업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의원 외래에 대해서는 선택분업을, 병원 외래에 대해서는 직능분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원 외래처방에 대해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조제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약국에서 조제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병원에 대해서는 병원내 약국을 두어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하도록 직능별로 역할을 나누자는 얘기다.
실제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선택분업이나 임의분업의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의사의 조제권을 불허하는 강제 완전분업을 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독일 정도다. 다만 독일은 병원의 외래진료를 제한하는 조치를 병행해 의료전달체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그러나 선택분업의 도입이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해결할 완전한 대안이냐는 데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론이 있다. 강제분업이 15년째 정착돼온 현실에서 오히려 의료기관들의 수용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이호상 부회장은 "여러 가지 약을 구비해야 하고 분실 관리 등의 문제도 있다. 선택분업을 하더라도 약을 구비하는 의원들이 많을지는 모르겠다"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개원의들이 선택분업을 지지할 지 의문"이라며 "이해집단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내주고 어디까지 얻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쾌한 약계…복지부도 "재평가 계획 없다"
약계는 불쾌한 구석이 역력하다. 의약분업이 이미 정착돼 있는 상황에서 조제권을 다시 의사의 몫으로 돌리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이라는 비판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의약분업은 의약정이 힘들게 합의한 사안으로 병의원, 의사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며 "불편은 있지만 투명성과 안전성에 있어서는 성과가 있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의약 간의 적대적 관계를 풀고,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국민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선택분업은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며 "약사는 약의 전문가이자 지역주민의 건강관리자로 국민의 편에서 의약분업 제도의 확립과 국민의 건강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 의료계와 약계가 서로 발전하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도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약분업은 의약정이 합의한 사항으로 정부로서는 이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면서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불편은 있을 수 있겠으나 합의한 원칙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상대방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의약이 문제를 공통으로 인식하고 개선하기로 논의하게 된다면, 복지부 또한 논의의 진행상황을 살펴보고 개선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