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질환 남성질환으로 여겨져 여성에게 오진 ...연구 디자인 남성 위주로 짜여져

젠더(gender)는 사회나 문화를 함축하는 사회학적 의미(남성적·여성적)의 성, 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의미(남성·중성·여성)의 성을 뜻한다. 생명과학계에서 말하는 젠더혁신은 섹스와 젠더 두 개념을 모두 포괄한다. 정확한 성별·젠더를 고려한 분석방법을 도입해 연구의 우수성과 질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 관점과 방법의 변화도 지향한다. 일찌감치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에서는 젠더혁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과제 선정 및 평가에 성별·젠더 요소를 적용할 것을 권고하는 등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젠더혁신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자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백희영(서울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료 분야에서 성별과 젠더에 대한 담론과 정책이 부족하다며, 다양한 실천방향 등이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6월 젠더혁신 포럼이 창립돼 격월로 운영되고 있고, 2015년 8월 서울에서 '젠더서밋(Gender Summit)'을 개최해 세계적인 젠더혁신관련 연구개발 추세에 동참해 협력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가치 중립적이고 성별에 무관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생명과학연구에서 젠더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꼭 성별을 구분해야 할까? 1. 성·젠더 편견으로 사회적 비용 증가 2. 같은 질환 다른 증상…심장질환·골다공증 3. 선진국 젠더혁신 확산…한국은 걸음마 수준 4. "양성 구분해야 명확한 실험 결과 얻는다"
 

심장질환 증상 성별 간 차이 존재

최근까지 진행된 일련의 사례연구를 보면 과학기술·의료계에서 더는 젠더 중립적이지 않다는 증거들이 속속들이 제시되고 있다. 심장질환과 골다공증을 바탕으로 성별·젠더 요소를 적용·분석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심장질환은 선진국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오랜기간 남성 질환으로 간주돼 왔다.

과거에는 임상적 기준도 남성에게 동반되는 심장질환의 병리생리학 등을 토대로 정립됐다. 심장질환을 동반한 여성환자에서 오진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vera regitz-zagrosek의 Sex and Gender Aspects in Clinical Management,p17~450 참고).

심장질환 연구는 가장 발전된 젠더혁신 사례연구로 알려졌다. 심장질환의 병리생리학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성별·젠더 분석을 통해 밝혀낸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미국 에모리대학 Leslee J. Shaw 교수와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Raffaele Bugiardini 교수가 가슴 통증을 동반한 남성 환자들은 관상동맥조영술을 통해 폐쇄성 관상동맥질환을 진단할 수 있지만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여성환자 대부분은 증상 원인을 찾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Shaw et al.JACC 2009;54 (17),1561-1575, Bugiardini et al.,JAMA 2005;293 (4),477-484).

이 때문에 여성 환자 중 가슴 통증은 있지만 혈관 조영 사진은 정상으로 나와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거나, 오진이 생겨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협심통을 동반한 여성 환자 일부는 심각한 심장질환이 아니라고 진단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규모 연구를 통해 협심증을 동반한 여성환자 예후는 좋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2008년 미국 아이오와대학 Jennifer G. Robinson 교수가 진행한 연구를 보면 불특정 가슴 통증으로 1차 진단을 받은 여성 환자들은 퇴원 직후 심장마비나 뇌졸중 발병 위험도가 높았다(American Journal of Cardiology, 102 (6), 693-699).

여기에 더해 Shaw 교수는 폐쇄성 관상동맥질환은 없지만 협심증을 동반한 남성 환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조영 사진은 정상으로 나오지만 협심증을 동반한 남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고 질병의 병리생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급성 관동맥 증후군(ACS)에도 남녀에서 나타나는 증상에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의사와 환자 모두가 만족하는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증상을 잘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9년 미국 미시건대학 Eric L. Dey 교수가 전 세계 ACS 환자 2만 675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ACS 환자가 겪는 가장 흔한 증상은 남녀 모두 가슴 통증이었다. 남성 환자의 94%, 여성 환자의 92%가 가슴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연구에 참가한 대상군의 29%만이 여성환자였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여성 환자에게 더 흔한 구토 증상과 턱 통증 등도 함께 고려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성별 차이를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성 골다공증 진단 위한 새로운 도구 필요

다른 말로 골다공증은 이제껏 폐경기 여성에서 발병 위험도가 높다고 알려져 왔다.

여성이 폐경기 호르몬 변화로 인해 골다공증이 평균 65세로 75세인 남성보다 10년 더 일찍 발생하는데, 동일 연령대 남성에 비해 골절이 더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골다공증성 골반 골절 환자 3분의 1이 남성 환자이다.

 

골절로 인한 결과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치명적이다.

2009년 미국 오리건주립대학 Erin S. LeBlanc 교수팀이 나이·성별 골다공증성 골절 발생 위험도를 비교분석한 결과, 여성의 경우 비외상성 골절 환자의 차후 골절 위험도가 약 2배인 데 반해, 남성은 3배 이상 높았다. 사망률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3배 더 높았다.(JCEM  2009;94, 3337-3346)

이처럼 골다공증 남성 환자 수가 비교적 높음에도 정상 골밀도 판단 기준은 1997년 남성 표본이 마련되기 전까지 20~29세 젊은 백인 여성을 토대로 했다.

1997년 이후에도 남성 골다공증 환자는 계속해서 여성 진단 기준점을 바탕으로 진단됐다. 즉 남성 준거 집단이 마련됐음에도 기준점이 남성 환자에게 맞게 수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성 준거 집단 구성원의 골밀도를 측정해 얻은 T점수 -2.5는 남성 골다공증을 진단할 때 흔히 쓰이는 기준점이다.

20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대학 Schuit SC 교수팀이 "55세 이상 남녀 7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비척추 골절 환자 중 여성 환자 56%, 남성 환자 79%가 골다공증 기준점인 T ≤ -2.5에 따라 골다공증으로 진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Bone; january 2004 Volume 34, Issue 1).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젠더혁신 프로젝트 연구진들은 골다공증성 골절 위험도를 높이는 골다공증 및 대사성 골질환의 이차적 원인(secondary contributors to osteoporosis and metabolic bone disorders, SECOBs)과 증상 및 치료법을 발견했다.

남성의 골절 위험도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SECOB 이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저외상성 골절이 있는 남성은 여성보다 SECOBs 진단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골다공증 및 대사성 골질환의 SECOBs에 근거한 골다공증 새로운 진단 도구는 △FRAX △GFRC △QFracture가 있다. 이들 도구를 통해 성별·젠더를 교차하는 기타 요소를 분석해 골밀도 점수로만 골절 위험도를 측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골절 유발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환자의 향후 10년 동안의 골다공증성 골절 위험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FRAX, GFRC, QFracture 시스템의 상대적 장단점에 대한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다.

연구팀은 "골다공증에는 젠더적 요소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골격은 생물적 특징뿐만 아니라 운동, 영양 섭취 및 전반적인 생활 습관 등에 따라 형성되고 변할 수 있다"면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덜 활발하다는 점과 남성이 여성에 비해 흡연율이 높다는 점을 인지해 운동량 제고 및 금연에 집중한 골다공증 예방 캠페인을 펼치는 다양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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