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기록 작성 시스템 변화, 수가 적정화 등 시스템·정책 먼저 바뀌어야 한다"

환자가 만족할만한 적정 외래진료시간이 6분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학병원 교수는 물론 개원가에서도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내과 이찬희 과장을 비롯해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공단일산병원 임상연구관리팀 등이 공동으로 '진료과별 적정 외래 진료시간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다. 

우리나라 다수의 국민들이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에서 전문성 높은 의료진에게 진료받는 것을 선호한다. 중증질환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경증질환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환자쏠림은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진료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대형병원의 짧은 외래진료를 비유해 '30분대기 3분진료'라고 표현한다. 일부 유명 대학병원에서는 3시간을 대기하고서도 실제 진료를 받는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 외래진료를 보는 의사.(위 기사와 관계 없음)

하지만 적정한 진료시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팀은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적정한 외래진료시간을 연구했다.

공단일산병원에 한 달간 내원한 환자 7만9561명(초진 1만1849명·재진 6만7712명)을 모집단으로, 이중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호흡기내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종양혈액내과, 감염내과, 류마티스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19개 진료과 24명의 의사에게 내원한 1106명 환자에게 만족할만한 진료시간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환자가 만족할만하다고 제시한 진료시간은 6.3분이었으나, 환자가 실제 진료를 받은 시간은 4.2분, 평균 대기시간은 12.6분이었다. 즉 만족할만한 시간에 비해 34% 부족한 것이다.

환자 간 편차도 상당히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짧은 진료를 받은 환자의 실제 진료시간은 33초였고, 가장 긴 진료를 받은 환자는 25분58초였다.

각 진료과별로 보면, 감염내과에서 실제 진료시간이 7분으로 가장 길었지만, 감염내과를 이용한 환자가 만족할만한 진료시간도 이와 비슷한 수치였다. 또한 신경과 환자의 경우 만족할만한 진료시간이 9.4분으로 평균 6.3분보다 3분 가량 길었다.

19개 진료과 중 14개에서 만족할만한 진료시간 실제 진료시간, 환자가 느끼는 진료시간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남성에 비해 여성환자가 느끼는 진료시간이 짧았고, 오후 진료시 오전에 비해 만족할만한 진료시간이 길게 측정됐다.

초진에 비해 재진환자의 실제 진료시간이 짧았으며, 평균에 비해 감염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의 만족할만한 진료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 이중 신경과에서 제시한 시간은 9.4분으로 평균보다 49%나 길었다.

이 교수는 "만족도와 불만족도 등을 측정했을 때 적어도 한 환자당 진료시간이 5.6분 이상은 돼야 바람직하다. 따라서 진료과별 외래 예약시간은 한 환자당 5.6분 이상이 되도록 설정해 다르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 진료과마다의 환자가 만족할만한 진료시간이 차이가 있으므로, 적정한 외래 진료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적정 외래진료는 물론 적정 진료에 대한 수가가 보전될 수 있도록 지침을 설정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 대기 중인 환자들.(위 기사와 관계 없음)

A대학병원 교수는 "오래 보고 싶은 건 의사도 당연하다. 그러나 예약을 많게는 100여명 잡아놓고 이들을 다 봐야하기 때문에 어렵다"며 "게다가 최근 컴퓨터에 차트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적정시간에 맞춘 진료는 커녕 환자와 눈마주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시스템상 적정진료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가면 간호사와 환자가 먼저 사전 진료나 간단한 체크 등을 하고, 의사가 들어가는 방식으로 꾸려지면 오래,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병원 전문의 역시 "환자를 보느라 쫓기지만 않으면 적정진료시간을 충분히 맞출 수 있다"며 "미국에서 환자와의 대화를 녹음하고, 챠팅을 나중에 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50~60명을 보기 때문에 그런 방식은 업무과부하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정시간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챠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간호사를 고용하는 방안 등 다양한 시스템 고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적정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개원가도 마찬가지였다.

C내과의원 원장은 "일단 환자 한명당 6분 정도를 보면 이동시간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1시간에 7~8명 정도를 보게 된다. 그러면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환자를 본다고 해도 60여명 남짓을 보게 된다. 여기에 내시경 환자나 추가적인 문의를 하는 환자 등이 있으면 하루에 50명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수가에서 과연 병원들은 물론 개원가 역시 적정시간을 맞추면서 진료를 보는 것은 어렵다"이라면서 "적정 진료시간에 대한 고민 전에 적정 수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원가에서는 초진환자의 경우 10분 이상을 보는 경우도 많다. 몇분이 적정하다고 설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빨리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적정하다는 것은 환자마다 다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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