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기준 애매모호' 2년반새 67억원 삭감..."초진 같은 재진 반복" 의료계 불만

"초진환자는 초진료, 재진환자는 재진료 받으시면 되는데요. 일단 치료 종결 안 된 환자는 재진이고요. 치료종결 여부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90일까지는 재진이라서 초진료 청구하시면 환수당하거나 삭감될 수 있어요. 치료가 끝난 환자라도 환자가 병원에 다녀간 지 30일이 안 넘었으면 재진이니까 초진료 받으시면 삭감될 수 있고요. 또…."

무슨 수수께끼 같은 소리인가 하면, 의료기관의 '외래 진찰료 산정기준'에 관한 얘기다.

외래환자 진찰료는 초진료와 재진료로 구분된다. 특정 질병으로 해당 병원에 처음 온 환자는 초진, 같은 병으로 계속 진료받는 환자는 재진환자로, 현행 건강보험에서는 이 초진·재진 환자에 대해 각기 다른 진찰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의원급 의료기관의 초진료는 과목 구분없이 1만 4000원, 재진료는 1만원이다. 초진환자의 경우 환자의 병력이나 기타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데 의사의 노력이 더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비용을 조금 더 준다.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초진·재진 나누는 것이 무엇이 어렵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의료기관에서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치료종결여부, 의료기관과 진료과목의 동일여부, 내원간격 등 '세부 조건'들이 꽤나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준이 헛갈리다 보니, 진찰료를 삭감당하는 일도 다반사.

의료계는 진찰료 산정 기준에 맞춰 ‘초진 같은 재진’을 수년째 반복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초재진 구분기준 “의학적 판단 무시한 행정 잣대”

진찰료 기준은 해당 상병으로 동일 의료기관 동일 진료과목 의사에게 진료 받은 경험이 없는 환자를 초진환자, 해당 상병으로 해당 의사에게 계속 진료받고 있는 환자를 재진환자로 구분하고, 이 기준에 맞춰 초·재진료를 산정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이 기준에 맞춰 건강보험 진료비를 청구하자면, 헛갈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 기준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원칙 하에 초진과 재진을 구분하는 몇 가지 세부 기준을 두고 있다.

일단 '상병의 치료가 종결되지 않아 계속 내원하는 경우에는 내원간격에 상관없이 재진환자'로 본다. 치료종결의 기준은 '해당 상병의 치료를 위한 내원이 종결되었거나 투약이 종결되었을 때'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것이 첫 번째 혼란 포인트다.

의료계는 환자의 재방문·연속방문 여부를 사실상의 치료종결 기준으로 보고 있다. 진료 후 환자가 연속해서 추가로 방문하지 않았다면 해당 상병에 대한 치료와 투약이 필요치 않은, 치료가 완료된 상태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행정적으로는 '해당 상병’이라는 문구에 초점을 맞춰 ‘진단명’을 계속 치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고 있다. 동일한 진단명으로 의료기관을 재방문했다면 완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치료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치료 종결여부를 진료한 의사가 아닌, 행정부가 판단한다는 것이 현행 기준의 가장 큰 모순”이라며 “의사가 생각하는 초·재진과 행정부가 생각하는 초·재진이 완전히 다르다보니 반복적인 삭감, 그로 인한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료 중 전혀 다른 상병이 발생해, 새로운 치료에 들어가도 재진료를 받도록 한 규정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현행 진찰료 산정기준은 ‘하나의 상병에 대한 진료를 하던 중 다른 상병이 발생해 동일의 의사가 진찰했다면, 재진으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

개원가 관계자는 "정부의 기준대로라면, 의료기관 특히 만성병 환자가 많은 동네의원의 경우 모든 환자가 사실상 재진환자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만성위염을 가진 환자가 감기로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고, 소화기 약을 함께 처방받아 갔다고 가정해보자. 의료기관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진료가 시작된 셈이지만 정부는 소화기 약을 함께 타 갔다는 이유만으로 연속진료, 삭감대상이라고 말한다. 정당한 진료를 하고도 합당한 진료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했다.

환자 마찰에 번번이 삭감...삭감 99%는 동네의원서

치료 종결 기준이 애매하다 보니 '내원 간격'까지 동원해, 초·재진 구분선을 세분화했지만 의료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관련 기준에서는 '완치여부가 불분명해 치료의 종결 여부가 명확치 않은 경우 90일 이내 내원시 재진환자'로 보고, 또 '치료가 종결된 후 동일 상병이 재발해 내원한 경우에는 초진환자로 보되, 치료종결 후 30일 이내에 내원환 경우에는 재진환자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자체가 워낙 복잡한 데다 일일이 환자의 진단명과 내원간격 등을 확인해 분류하는 일이 쉽지 않은 탓에 수년째 착오청구와 삭감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료기관 종별 초·재진 심사실적'에 따르면, 최근 2년 반 새 병·의원이 재진을 초진으로 청구해 심사조정된 사례는 175만건, 금액은 67억원에 이른다. 삭감 건수·금액 모두 99% 가까이 동네의원에서 발생했다.

'90일 이내 내원시 재진'이라는 내원간격 기준을 어겨 환수된 진료비도 2년간 12억원에 달했다.

 

김종률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는 "질병의 종류에 따라 치료종결이 있고 없음을 일일이 따져야 하는 모호하고 불합리한 산정기준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초·재진료 본인부담금 차이로 인한 환자와의 마찰은 물론이고, 해마다 진행되는 대규모 환수로 의료기관의 허탈감도 크다. 진료때마다 초·재진 구분을 일일이 신경써야 하는 의사들의 무형의 노력 또한 엄청난 비용낭비"라고 지적했다.

김성주 의원은 "애매한 초·재진 기준으로 인해 의료기관들의 착오청구까지 제도 악용으로 의심, 환자와 의료기관 신뢰가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에 "관계단체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기준개선 움직임 재개...초·재진료 통합논의도 '솔솔' 

해마다 반복되는 삭감과 환수, 환자와의 마찰로 인해 의료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초·재진 기준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왔다.

진료나 투약 종료 후 30일 혹은 60일 등으로 초·재진 구분기준을 단순화하거나, 초·재진료를 아예 통합해 분란의 싹을 없애자는 것이 골자다.

대한의사협회 또한 의정협의 어젠다 중 하나로 초·재진 산정기준 개선을 강도높게 주장한 바 있다. 의사협회는 진찰료 산정기준 개선, 현실화를 1차 의료활성화를 위한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초·재진료 통합도 다시 떠오르는 분위기다.

이명희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불합리한 초·재진료 산정기준으로 인해 의료기관당 많게는 연간 700~800만원까지 삭감이나 환수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초·재진료 통합 등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초·재진 통합의 경우, 초·재진 구분으로 인한 민원과 다툼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목간 이견이 커 합의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전문과목별로 초·재진환자의 비율이 달라 초·재진료의 통합이 곧바로 과목별 득실로 연결되는 구조다 보니 의견조율이 쉽지 않은 것. 실제 지난 2007년과 2009년 의협을 중심으로 초·재진료 통합논의가 진행됐으나 모두 백지화된 바 있다.

2009년 의협이 초·재진료 통합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물은 결과에서는 내과와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정형외과의사회는 찬성의견을, 안과와 이비인후과, 피부과의사회 등은 반대의견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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