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질병관리본부가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발표한 ‘한국 성인 우울 증상 경험’ 보고서를 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우울증을 동반한 환자가 70세 이상에서 17.9%로 가장 높았다. 이어 60대가 15.1%, 50대가 15%, 40대가 12.9% 순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15~25%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우울증상을 동반하고 있었고, 주로 은퇴 후에 따르는 외로움·허탈감·무기력감 등이 우울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로 인해 치료환자도 꾸준이 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이 제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치료받는 우울증 환자는 2009년 49만 5619명에서 2013년에는 59만 114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에서 증가폭이 컸는데, 전체 연평균 증가율이 5%인데 반해 60세 이상 노인에서는 9%였다.

우울증으로 인한 노인자살 문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12년 발표된 연령별 자살률에 관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만 명당 10대가 5.1명, 20대는 19.5명인 반면 70대는 73.1명, 80대 104.5명으로 조사됐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경제적인 어려움,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함에 따라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목희 의원은 “사회활동에서 소외되고 해결되지 않는 빈곤문제가 노인 우울증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노인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빈곤해소 노력은 물론 노인 정신건강을 위한 예방책 마련이나 치료지원 등 정부 및 각종 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물치료는 필수, 좀 더 똑똑하게 처방하자

노인 우울증은 진단하기 매우 어려운 질환 중 하나다. 우울증을 동반한 노인 대부분이 우울하다는 감정적 표현보다 통증이 있다거나 기운이 없다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주요 증상에는 △일시적인 기억력 감퇴 및 지적 기능의 저하 △미래에 대한 희망 저하 △성기능 감퇴 △외출 거부 △외모에 대한 관심 저하 △음주·흡연 양의 증가 △비정상적인 성격·성향의 강화(강한분노, 의기소침, 대인관계 회피)등이 있다. 이 밖에도 설사나 변비, 피로감, 발한, 건강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비롯해 망상, 초조함도 증상 중 하나로 치매와 혼동되기 쉬워 진단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처럼 노인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는 호소하는 증상부터 큰 차이를 보여 전문의들은 충분한 상담을 통한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약물치료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삼환계 항우울제(TCA) 등의 항우울제가 주로 쓰인다. 일부에서는 노인환자의 신체적 증상(통증이 있다거나 기운이 없다 등) 만으로 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여기서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안정제 정도만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정제는 우울증 치료제가 아니다.

이에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석 교수는 노인 우울증에 있어서 ‘똑똑한 항우울제 사용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최소 용량으로 시작해 천천히 증량 △약물 농도 문제를 염두해 한꺼번에 보다는 분복 △순응도 문제를 고려한 복용방법이나 횟수 단순화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처방 등 약물사용시 잊지 말아야 할 4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공존 신체질환과 그에 따른 많은 약물복용 상황을 고려하고, 전형적 우울증상과 신체증상의 빈번한 호소 및 인지기능의 문제를 항상 염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우울제 사용에 있어 부작용 역시 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약력학과 약동학의 변화, 공존 신체질환 빈도 및 복용약물 증가, 치료 순응도 문제 등으로 인해 항정신성 약물 부작용 빈도가 많기 때문이다. 우울감 발생과 관련있는 약물에는 베타차단제, 벤조디아제핀계, 스타틴 계열(지질저하제), 항콜린제(위장질환 치료 사용)가 있다. 이 밖에 우울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약물에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파킨슨병 치료제, 호르몬 조절제, 정신자극제, 항경련제, 프로톤 펌프 억제제와 H2 차단제 등이 있다.

이와 함께 환자가 뇌졸중,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의 공존 신체질환으로 인해 약물을 과다 복용하고 있는지도 눈여겨 봐야 한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이외의 다른 임상과에서 신경성 가능성을 염두한 항불안제 처방은 물론 항우울제, 통증조절 약물, 특히 TCA 등의 사용이 빈번하다”면서 “환자 가운데는 신체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복용 중이거나 건강보조식품을 남용하는 경우도 많아, 약물치료에 앞서 이를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비약물요법으로 환자 정서 먼저 파악하자

노인 우울증은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비약물요법을 병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비약물요법에는 정신치료, 전기경련요법, 가족치료가 가장 대표적이다. 정신치료는 인지행동치료, 단기정신역동적치료, 지지적정신치료 등으로 나뉜다.

특히 정신역동적치료는 환자와 치료자 관계를 바탕으로 내부의 심리적 갈등이 개인의 우울증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기초로 두고 치료를 시작한다. 이를 통해 치료자는 환자가 갈등에 대해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고 거기서 치료자의 통찰과 함께 환자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층 더 수월해 질 수 있다.

지지적정신치료는 적응장애나 상황에 대한 불쾌기분 등의 우울 증상을 동반한 환자에서 적합한 치료로, 상실이나 스트레스에 적응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치료방법으로는 자유연상이나 증상의 발생원인에 대한 해석은 피하고 치료자가 능동적으로 관심을 갖고 동정적이면서 지지해주는 태도를 기본으로 암시, 충고 등을 사용한다.

관자놀이에 붙인 전극을 통해 70~150볼트 전류를 0.1~1초간 흐르게 해 발작을 유도하는 정신경련요법(ECT)도 있다. 주로 항우울제 복용을 거부하거나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 심각한 정신적 증상을 동반하거나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 이전에도 정신경련요법으로 효과를 본 환자들이 치료 대상이다. ECT는 다른 치료에 비해 효과가 빠르고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도 적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치료 전·후 짧은 기간에 대한 기억상실이 생겨 환자를 종종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존재해, ECT 시행에 앞서 환자의 상태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가족의 지지를 기반으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행해지고 있다. 자원봉사, 종교생활, 평생교육, 재취업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환자가 삶에 대한 이유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약물치료 만큼의 효과가 입증된 우울증 개선 프로그램 등이 소개되고 있다.

노년층 우울증 환자에서 인터넷 게임이 항우울제를 복용했을 때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결과가 하나의 예다. 미국 코넬대학의 Sarah Shizuko Morimoto 교수팀은 Nature Communications 8월 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한 연구결과를 통해 “컴퓨터 게임을 한 환자의 72%가 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했고, 주의력과 기획 등을 담당하는 뇌의 집행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게임이 약물치료보다 혜택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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