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중소득국가 신경정신장애 환자 5명 중 4명이 제대로 치료 못받아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0년 신경·정신장애 1차진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저·중소득 국가의 신경·정신장애 환자 5명 중 4명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치료를 받는다 해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양질의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WHO가 최일선의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1·2차진료의들의 역할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신체적 증상으로 병·의원을 찾는 환자들에게서 정신과적 병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련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WHO는 “모든 정신건강의 관리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전문의들에 의한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신과적 질환의 진단 및 치료와 관련해 1·2차진료의 또는 비전문의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반드시 우선돼야 한다. WHO가 ‘정신건강프로그램 진료 가이드(mhGAP Intervention Guide)’를 발표한 것도 1·2차진료의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진료의 대원칙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1·2차진료의들이 신경·정신장애 환자들을 진료할 때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일반 환자와는 다른 임상적 특성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환자와의 상담, 진단평가, 치료, 유지관리 전과정에서 정신과적인 측면의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경·정신장애 환자의 진료 시에 반드시 유념해야 할 원칙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환자 상담
연령·성별·사회경제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며, 간략하고 명료한 용어를 통해 명확하고 단호하게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또한 환자에게 우호적이고 정중하며 비-심판적인 태도(non-judgmental attitude)로 대해야 한다. 성적 학대나 자해의 경험 등 환자가 제공하는 개인적이고 민감한 정보들에 대해서는 보다 주의깊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이를 이해했는지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 평가
환자의 전반적인 병력과 더불어 정신질환력 및 가족력을 조사한다. 일반적인 신체검사를 실시하고, 현재의 임상상태에 대한 평가·관리 및 환자의뢰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사회경제적 요인과 대인관계의 이슈 및 현재의 스트레스 요인 등 심리적 문제들을 평가한다.

◇ 치료·모니터링
치료의 중요성과 환자의 의지를 파악한 뒤 치료목표와 함께 환자에게 적합한 전략을 결정한다. 상담을 통해 치료지속 및 유지관리 전략을 조절한다. 예상되는 치료기간, 잠재적 부작용, 치료선택의 대안, 순응도의 중요성, 향후 예후 가능성 등에 대해 알린다. 치료효과와 임상적 결과, 약물 간 상호작용(알코올, 일반의약품, 보조·전통약제), 치료 부작용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조절한다. 필요 시에는 전문의에게 환자를 의뢰한다. 유지관리 시에는 임상적 상태, 치료에 대한 이해도, 순등도 등을 재평가한다.

1·2차의료에서 우울증 관리전략

WHO의 가이드라인은 우울증, 정신병, 양극성장애, 간질, 소아청소년 발달장애, 치매, 알코올장애, 약물장애 등 전반적인 신경·정신계 질환에 대해 각각의 진단 및 치료전략을 쉽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Assess’ - ‘Decide’ - ‘Manage’ 단계를 순서도(flow charts) 형식으로 제시해 의사들이 이를 따라가며 진료할 수 있도록 길안내를 하고 있다. ‘Assess’는 환자의 임상적 상태의 평가방법을, ‘Decide’는 환자의 대답에 따른 다음 단계로의 이동경로를, ‘Manage’는 평가결과에 따라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알려준다.

사전징후(commom presentation)
가이드라인은 우선 진료실 현장에서 잡아낼 수 있는 우울증의 사전징후를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징후 가운데 하나 이상이 포착될 경우, 관련된 요인들까지 포함해 우울증에 대한 진단평가가 요구된다.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사전징후는 다음과 같다.
- 무기력, 피로, 수면 또는 식욕문제
- 지속적인 우울감과 근심, 과민함
- 늘 흥미롭고 즐거웠던 활동에 대한 관심 감소
- 육체적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다발 증상(고통, 통증, 심계항진, 마비 등)
- 일상적인 업무·학교·가정·사회활동의 어려움

진단평가(assess)

가이드라인은 중등도에서 중증의 우울증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3가지 평가척도를 제시했다. 첫번째는 ‘우울감(하루종일·매일)’, ‘즐거웠던 일들에 대한 흥미와 재미 상실’, ‘무기력 또는 피로’ 가운데 두 주 동안 적어도 2가지의 증상이 있었는가에 대한 평가다.

두번째 평가척도로는 ‘집중력과 관심의 감소’, ‘자존감과 자신감의 감소’, ‘자책감과 자신의 존재가 무가치하다는 생각’,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과 비관적 태도’, ‘자살이나 자해에 대한 생각’, ‘자주 깨는 수면’, ‘식욕감소’ 등 우울증에 따르는 특징이 제시됐다. 이 가운데 지난 두 주 동안 적어도 3가지의 특징을 경험했느냐가 평가의 요지다. 세번째로는 환자가 일상적인 업무, 학교, 가정, 사회활동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요구됐다.

치료결정(decide & manage)
가이드라인은 “이들 3가지 평가척도의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환자의 경우, 중등도에서 중증의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범주의 환자들에게는 심리교육(psychoeducation),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의 해소, 사회관계의 회복, 대인관계요법·인지행동요법, 항우울제요법, 신체활동프로그램 등의 치료법을 권고했다.

항우울제 요법

각 국가별 권고안이나 WHO의 처방목록을 통한 항우울제의 선택을 주문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WHO의 처방목록과 필수의약품 리스트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가운데 플루옥세틴(fluoxetine)과 아미트리프틸린(amitriptyline) 및 여타 삼환계 항우울제가 언급돼 있다.

가이드라인은 항우울제 선택에 있어 환자의 증상패턴, 약물 관련 부작용 프로파일, 과거 항우울제 치료의 효과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항우울제 처방 전에 약물과 질환 간 또는 약물과 약물 간의 상호작용 위험에 대한 고려를 주문했다. 특히, 향정신성 약물과 항우울제를 병용해야 할 때에는 전문의의 상담이나 감독을 요구했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약물효과의 지연, 잠재적 부작용, 사용중지나 중단에 따른 증상, 약물치료 기간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수한 경우의 항우울제 요법

◇ 자살·자해 위험환자
가이드라인은 자해나 자살의 생각, 계획, 행동위험이 있는 환자들에게 SSRI를 1차선택제로 권고하는 동시에 주 1회 정도의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특히 자살·자해위험이 높은 환자들의 경우 과용을 막기 위해 1주일에 1회 단위로 처방해 사용을 제한하도록 주문했다.

◇ 12세 이상의 청소년
사회심리적 치료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플루옥세틴의 처방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타 SSRI 또는 삼환계 항우울제의 처방은 제외됐다. 또한 가능하면 플루옥세틴 처방 시에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거치도록 요구했다. 또 플루옥세틴 처방 후 첫 한달 간은 주 1회 정도로 자살사고의 여부를 자주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환자와 부모에게 자살사고 위험의 증가 가능성에 대해 고지하고, 이러한 특징이 관찰됐을 경우 즉각 연락을 취하도록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 노령층
노령층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은 SSRI를 1차선택으로 권고한 반면, 삼환계 항우울제는 피하도록 했다. 삼환계항우울제의 경우에는 부작용에 대한 주의 깊은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더불어 약물 상호작용 위험을 고려하는 동시에 약물의 효과를 판단하는 데 최소 6~12주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두도록 권고했다. 부분적 약물반응 시에는 12주까지 시간을 늘리도록 했다.

◇ 심혈관질환 환자
역시 SSRI를 1차선택으로 권장했다. 반면, 중증의 심부정맥 위험이 높거나 최근 심근경색증을 경험한 경우에는 삼환계 항우울제를 처방하지 말도록 했다. 또한 모든 심혈관질환 환자에서 삼환계항우울제 처방 전에 혈압을 측정하고, 일단 해당 약물 투여를 시작한 뒤에는 기립성저혈압 위험을 관찰하도록 요구했다.

항우울제 요법의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은 약물치료 기간에 조증 증상이 발현될 경우, 즉시 항우울제 투여를 중단하고 조증 및 양극성장애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도록 주문했다. SSRI 사용 환자에서 정좌불능증(marked/prolonged akathisia)이 발현될 경우에는 해당 약물의 사용을 재검토하고, 삼환계 항우울제로의 전환 또는 디아제팜(1일 5~10mg)과의 병용을 고려할 수 있다는 설명도 추가됐다. 삼환계 항우울제로 전환 시에는 SSRI에 비해 열악한 내약성, 심독성(cardio toxicity), 과용량으로 인한 유독성 등에 유의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또 치료시작 4~6주 후에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악화되는 등 약물반응이 충분치 않은 경우에 진단의 재검토, 약물 순응도 평가, 최대용량 처방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대용량으로도 4~6주 동안 증상이 지속되면 여타 요법(사회심리치료)이나 여타 계열 항우울제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약물전환의 경우 첫 약물을 중단한 후 다음 약물투여 시까지 (임상적으로 가능하다면) 수일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를 둬야 하는데, 플루옥세틴에서 삼환계항우울제로 전환할 때는 일주일 정도 더 길게 간격을 둬야 한다”는 것이 가이드라인의 설명이다. 가이드라인은 두가지 항우울제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약물반응이 없다면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할 것을 권했다.

항우울제 요법의 중단

항우울제 요법의 중지는 9~12개월 간 우울증상이 전혀 없고 일상적인 활동의 수행이 가능해질 때 고려돼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은 밝혔다. 또한 어지러움, 근심, 과민함, 피로, 두통, 오심, 수면문제 등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약물중단으로 인한 증상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리가 요구된다.

가이드라인은 약물중단으로 인한 중증의 증상이 발현될 경우에는 효과적인 용량의 항우울제 요법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점차적으로 용량을 감소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약물중단으로 인한 중증의 증상이 지속되면 전문의와의 상담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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