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감별질환·다른 정신질환 / 수면장애

 

‘잠이 약보다 낫다(Sleep is better than medicine)’는 영어 속담이 있다. 우리 식대로 하면 ‘잠이 보약’이라는 말로, 질 높은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인생에서 수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일일 수면시간을 8시간으로 봤을 때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잠자는 데 보내는 시간은 무려 27년에 달한다. 평생의 3분의 1을 잠자리에서 보내는 셈이다.

수면은 피로회복뿐 아니라 면역체계, 인지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반대로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의료진 및 일반인 사이에서도 수면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주요 병원을 중심으로 수면건강센터나 수면클리닉이 속속 개설되고 있으며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5년새 1.57배…노인·청소년 유병률 증가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환자수가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수면장애란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음에도 낮 동안에 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 또는 수면리듬이 흐트러져 있어서 잠자거나 깨어 있을 때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불면증,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수면무호흡증 등 환자의 증상에 따라 다양하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은 2008년 22만 8000명에서 2012년 35만 7000명으로 최근 5년 새 1.57배(12만 9000명) 늘었고, 연평균 11.9%의 증가율을 보였다. 총진료비는 2008년 195억원에서 1.81배 증가해 2012년 기준 353억원에 달했다<그림 1>.

 

성별에 따라서는 2012년 기준 남성 환자가 14만 5000명, 여성 환자가 21만 2000명으로 여성이 1.46배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50대(7만 4800명), 70대(6만 8000명), 60대(6만 1500명) 순으로 60대 이상 노인 환자가 44.8%를 차지했다.

세부 상병별로 살펴보면 불면증이 23만 7931명(66.7%)으로 가장 많고 상세불명 수면장애(8만 4287명), 수면무호흡증(2만 6168명)이 그 뒤를 이었다. 50~70대는 불면증이, 30~50대는 수면무호흡증이, 10대 이하 및 20~30대는 과다수면증과 발작성 수면장애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돼 연령별 차이를 보였다.

60대 이상 노인 절반가량 수면장애 호소
특히 노인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노인에서의 수면장애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노년기에는 정상적으로도 일주기 리듬변화 및 활동량 감소 등에 의해 불면증이 흔히 발생하므로 과도하게 염려할 필요는 없지만, 정상적인 노화현상인지 아니면 질환으로 봐야 할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감별이 필요하다.

또한 정확한 평가 없이 노인에게 습관적으로 수면제를 처방하면 수면제 의존 문제 외에도 인지기능 저하나 낙상으로 인한 2차적 골절, 증상악화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정확한 조기진단과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면장애가 노인의 인지능력 손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는데, 지난해에는 노년기 수면장애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JAMA Neurol. 2013;70:1537-1543). 70대 노인을 대상으로 수면유형과 알츠하이머병 생체표지자인 베타아밀로이드의 연관성을 평가했을 때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에서 베타아밀로이드가 더 많이 생성됐다는 것.

연구를 주도한 존스홉킨스블룸버그공중보건대학원의 Adam P. Spira 박사는 “PET 영상을 통해 수면시간이 적거나 수면의 질이 낮은 노인에게서 베타아밀로이드 수치가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알츠하이머병이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이고, 노인 2명 중 1명은 불면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공중보건문제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으로 최근에는 수면장애가 노인에서 자살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분석 결과가 JAMA Psychiatry 2014년 8월 13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스탠포드의대 Rebecca A. Bernert 교수팀이 65세 이상 고령자 1만 4456명을 10년간 추적·관찰한 결과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서 연구시작 당시 수면장애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잠들기 힘든 증상(difficulty falling asleep)을 호소한 경우 10년 이내 자살할 위험(OR)이 2.24배(95% CI, 1.27-3.93) 높았고, 수면의 질이 저하된 경우(nonrestorative sleep)는 2.17배(95% CI, 1.28-3.67) 증가했다.

연구팀은 “우울증이 미치는 영향을 보정한 후에도 수면장애가 자살에 의한 사망 위험을 30% 높이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임상에서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 시도 병력이 있는 환자들을 치료할 때 수면장애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면장애는 관절염, 심혈관질환, 천식, 파킨슨병과 같은 신체질환이나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등의 정신과적 질환에 의해 유발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꾸로 이러한 질환의 원인 또는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탠포드의대 Maurice M. Ohayon 교수(수면역학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주간졸림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10% 정도에 해당한다. 주간졸림증 중에서도 중증에 해당하는 기면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대조군에 비해 우울증이 2.67배, 사회불안장애가 2.43배 높았고, 고혈압(1.32배), 고콜레스테롤혈증(1.51배), 심장질환(2.07배), 상기도질환(2.52배), 소화기장애(3.27배) 등 신체질환 발생률도 높게 나타났다. 사망률은 1.65배로 55세 이하인 경우 3.61배까지 증가했으며 자살률은 무려 7.35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뇌혈관·정신건강질환 악화 위험↑
가장 대표적인 수면장애인 불면증은 심근경색증, 관상동맥심질환, 고혈압 등 각종 심혈관질환 발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여러 연구들에서 보고된 바 있고(J Intern Med. 2002;251:207-16), 각성과 정서 등에 장애를 일으켜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남용, 약물남용 등 각종 정신건강질환에 대한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Biol Psychiatry. 1996;39:411-8). 불면증과 불안, 우울증의 양방향적인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불면증이 우울증, 불안장애의 증상과 동시에 유발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J Psychosom Res. 2008;64:443-9).

수면무호흡증과 관련해서는 지질대사이상, 염증반응, 인슐린 저항성, 혈압상승 및 활성산소 발생을 유도해 고혈압, 심근경색증, 뇌졸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고(Chest 2011;140:534-42), 10년 이상 지속될 경우 급성 심장사 위험이 증가해 생존율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J Am Coll Cardiol. 2013;62:610-6).

특히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소아의 27%에서 수면 중 호흡을 위한 에너지 소모로 인해 성장장애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고 소아 당뇨병, 복부비만 등 대사증후군의 위험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는 자는 동안 수면의 질 저하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교감신경계가 항진되고, 갑상선자극호르몬 감소 및 포도당 대사능력이 저하되는 기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기존에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었던 환자들에서 적절하게 치료되지 않을 경우 혈압과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의료비용 증가, 생산성 저하 등 사회적 문제 야기
수면장애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국가사회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대한수면학회 홍승철 회장(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지난 3월 세계수면의 날(3월 셋째 주 금요일) 미디어심포지엄에서 “수면시간 부족이나 수면의 질 저하로 유발되는 주간졸림증이 개인에게는 피곤함, 두통, 업무능력저하를 일으키고 사회적으로는 주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며 “이는 국가적 비용증가 및 경쟁력 저하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청소년건강행태에 대해 온라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수면시간이 적을수록 음주율, 비만율, 우울감이나 자살 생각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수면시간이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됨에 따라 청소년의 수면장애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성균관의대 홍승봉 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가 질병관리본부 학술용역연구사업으로 2011년 2월부터 12월까지 전국 150개 중·고등학교에서 무작위 선정된 청소년 2만 6395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온라인 수면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학생의 66.6%가 수면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수면시간이 짧을수록 주간졸림지수나 우울지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체 응답자의 18.5%가 주간졸림증을 호소하고 16.1%가 수면 문제로 주간기능에 자주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으며 주요 증상으로는 불면증 28.4%, 주간졸림증 16.4%, 코골이 20.0%, 수면무호흡증 8.6%, 하지불안증후군 23.4%, 몽유병과 같은 사건수면이 17.8%로 조사됐다.

연구에 참여한 단국의대 김지현 교수(단국대병원 신경과)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외국에 비해 매우 부족한 실정이며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수면관련 증상을 가지고 있고 우울증과 자살충동 같은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을 늘리기 위한 범국가적인 운동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요법과 인지행동치료 병행해야
수면장애는 대부분 자는 중에 발생하기 때문에 본인조차 증상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쉽지 않다. 성장통, 산후통, 허리디스크, 관절염, 하지정맥류 등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진단율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조기진단을 통해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진단에는 전문의의 문진이 필수적이다. 환자의 주관적 증상과 더불어 주간활동 및 증상, 수면환경과 습관, 복용하고 있는 약물과 동반 질환, 술, 커피, 담배 사용 등에 대해 전반적인 병력 청취를 시행한다. 피츠버그수면의질평가척도(PSQI)나 불면증심각도척도(ISI), 주간졸림증평가척도(ESS) 등 자기기입식 설문지나 수면일지를 활용할 수도 있고, 불안증이나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 증상을 감별하기 위한 설문을 시행하기도 한다.

수면장애의 확진에 사용되는 야간수면다원검사는 수면장애를 진단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검사로, 일정한 시설이 갖춰진 수면검사실에서 피검자가 자는 동안 수면상태에 대한 종합적인 검사를 시행한다. 수면 중 뇌파, 눈동자 움직임, 신체 근육의 긴장도, 호흡, 다리 움직임, 자세, 심전도, 혈중산소농도, 코골이소음, 적외선비디오로 촬영한 수면모습 등을 다양한 감지기를 통해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수면효율, 수면구조, 동반된 수면장애의 특성과 수면장애의 심한 정도를 평가해 진단하게 된다.

치료는 크게 약물과 비약물요법으로 나눠진다. 수면제 등의 약물치료가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약물 사용에 따른 이상반응 위험, 특히 장기복용의 영향과 내성 발현, 중단 시 반동 및 금단증상에 대한 우려로 인해 최근에는 약물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하는 방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초기에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함으로써 부가적인 효과를 얻고 장기적으로는 인지행동치료를 유지하다가 점차 감량한 후 약물을 끊는 방법이 추천된다.

인지행동치료에는 수면장애 증상에 대한 전문의 면담과 정상적인 수면 및 올바른 수면위생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각성상태를 늘려 수면압박을 증가시키는 수면제한요법, 침실에서 수면 이외 다른 활동을 제한하는 자극조절법 등이 있으며 이완을 돕기 위한 복식호흡, 근육이완법, 명상 등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앙보훈병원 수면의학센터의 강석훈 전문의(정신건강의학과)는 ‘임상의를 위한 대한수면학회 심포지엄’에서 “수면장애를 치료할 때 인지행동치료나 약물치료 한 가지만으로 만능이 될 수 없다”며 “상호보완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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