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짧은 시범사업·천문학적 재정 부담으로 실패작 전락 위험

의료인·법조인·국내외 전문가와 함께 세밀한 토의와 협조 거친 전반적 재고 필요

 

김홍정 (Arthur H. Kim)
미국 외과전문의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의대동창들과 함께 의료인들의 공동 관심사들을 듣고 의논도 하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국의 거의 모든 의사들이 관심을 같고 있던 사안 중 '원격의료'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켜봤다. 기존의 대면진료 형태에서 벗어나는 가히 파격적인 새로운 차원의 의료전달체계 모델인 원격의료가 최근에는 의협과 정부가 첨예한 대립상태로 발전하는 심각한 사안으로 확대됐고, 나아가서는 의료인들이 집단행동을 결의하며 총파업 등의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정부와의 이견 차이는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외과전문의로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토마스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의료경영학(HealthCare MBA)을 전공했다. 나의 주관심사는 첫째로 의료인에게 의료산업의 비임상적인 전반, 상업적인 면을 교육하는 커리큘럼의 연구개발, 둘째로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현재의 대면진료체계를 보완 혹은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대면진료체계인 원격의료 연구였다.

세부기획안도 없고 시범기관은 비밀리에?
한국 방문 당시 느낀 한국 개원의들 및 의협에서 보여줬던 원격의료에 대한 강한 반발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또한 정부의 대응 및 원격의료정책안이 세부적인 기획안조차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 등 납득할 수 없는 면이 많았다. 결국에는 의료인들의 강한 반발에도 현재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6개월에 걸쳐서 9개 지역에서 의원 6곳, 보건소 5곳, 특수시설 2곳을 지정해 원격모니터링과 원격진료를 시행해 그 안전성, 효율성을 시험하고 또 건강보험수가도 동시에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납득이 어려운 점은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들과 관련된 의료인들의 소재지 및 신분을 비밀로 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고 성실히 진료하는 의료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인해 진료결과가 획기적으로 발전한다면 모두가 그 새로운 방법을 신속히 수용할 것이다. 의술과 의학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의료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대로 강한 반발이 있다면 이해 부족이나 오해에서 비롯됐을 추측도 할 수 있다. 특히 원격의료의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오해를 할 수 있는 소지도 많다.

원격의료가 한국에 도입될 때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체계적인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 의료인들은 소외되고 정부의 의료정책연구원들에 의해 단순히 의료정책차원에서 고려됐고, 그로 인해 진료일선의 의료인들과 같은 시점에서 원격의료를 이해하고 장단점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

40년 전 영국서 원격의료 시작…윤리·법률부터 고민
원격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telemedicine’과 ‘telehealth’다. Telemedicine은 라틴어원으로 원거리(tele)와 의학(medicine)의 복합어로서 생긴 지는 약 40년이 됐다. 그 정의는 미국원격의학학회에서 정한 것이 가장 적절한데 다음과 같다. 원격의료는 '각종의 정보통신기술,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원거리에서 환자를 진단 관찰 감시 및 치료함'으로 규정하고 있다. Telehealth는 '각종의 정보통신기술,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환자 또는 대중 자신들이 자신의 만성질환을 관리, 상담 및 교육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중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원격의료는 telemedicine으로 사료된다. 원격의료는 원거리에서 진료를 함으로써 기존의 대면진료체계를 보완하고 보다 향상된 진료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disruptive'한 진료모델이다. 궁극적으로는 환자와 의사의 접촉이 보다 수월해지고 양질의 진료를 보다 적은 인력으로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어서 진료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원격의료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첫 시도는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통상 유럽에서 제일 먼저 연구가 시작됐다고 본다. 사회의료제도를 일찍이 시도한 영국이 원격의료의 시초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영국에서 1970년도에 기초적인 연구를 시작했으나 그당시 정보통신기술은 매우 초보적인 단계로 기술적인 발전은 없었으며, 대신 원격의료의 윤리적 측면, 법률적 측면, 기존의 대면진료체계에 미칠 파급효과와 사회 전반에 미칠 사회학적 요소들을 연구했다. 즉 이러한 준비는 앞으로 일어날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기초를 닦아둔 셈이었다.

미국선 의무기록 비호환성 문제로 최근 20년간 정체
미국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급속히 진행됐고, 간단한 무선장비 혹은 유선전화를 이용해 원격의료의 원시적인 체제로 시도를 했다. 특히 군사적 용도가 높은 점이 인식돼서 연방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기초를 다졌다. 비로소 1980년대에 개인소형컴퓨터가 개발되고, 1990년에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이 구축되면서 오늘날 원격의료의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급속히 성장하던 원격의료가 그후 20년간은 정체된 상태로 소위 원격의료의 암흑시대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의무기록의 비호환성과 유럽이나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의료네트워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무기록은 환자와 의사 사이의 고리역할을 한다. 다른 의료인이 진료에 참여하고자 하면 같은 의무기록을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돼야 한다. 또한 모든 환자의 의무기록이 전산화돼야 하고, 어디에서든 원하는 시간에 열람할 수 있는 전산화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관계로 의무기록 전산화 비율은 매우 저조했다.

메디케어 의무기록전산화 후 개원의 폐업 속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최근 의료정책개혁을 시도했다. 모든 의료인 및 의료시설은 미국연방 의료복지 보험공단인 메디케어의 환자를 보려면 의무기록전산화를 필수조건으로 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의 대다수 환자가 메디케어 가입자인 것을 감안하면 병원 혹은 개원의들은 정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의무기록전산화 비용을 일반 개원의들에은 감당할 수 없어 상당수가 폐업하거나 중대형병원의 봉직의로 직장을 옮기는 사태가 일고 있다.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이나 특별세제감면 등의 지원에도  개원의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한국 의료제도의 속살
외국 사례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의료실태가 원격의료를 시도할 준비가 돼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의료실태는 진료체계, 의료행정, 의료법령 및 그밖의 제도적 구조들은 건국 이후 여러 외국의 사례와 경험들을 꾸준히 받아들였다.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포괄적으로 관계자들이 연구하고 검토할 기회가 많지 못했던 것이 그당시 한국의 현실이었다. 의료보험제도는 유럽을 모방하고 의료교육은 건국 초기에는 일본강점기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다 점차 미국 제도를 도입했고 진료체제는 일본과 미국의 두 제도가 복합된 혼합형태이며 의료법 및 행정제도마저 대부분 일본과 유럽에서 도입돼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지난 60년간의 한국 의료산업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의료제도 전반에 이식된 이러한 외부 제도들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의료산업의 여러 분야 간에 효율적인 공조를 훼손시키고 있다.

미국에서 총국민의료소비액이 국민총생산량의 20%를 차지하면서 국가적 재정파산 위기가 일어났듯이 한국에서도 이러한 국가적 난제가 바로 앞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시기에 원격의료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독이 될까?

외국선 50년 걸리는 사업을 6개월로 판단?
원격의료는 ‘마법의 봉’이 아니다. 원격의료가 시행된다고 해서 한국 의료실태가 개선되고(현재의 의료실태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열악한 것도 아님), 의료수가가 줄어들고, 총국민의료 관련 소비액이 대폭 줄어드는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단지 의료취약지구에 양질의 의료를 전달해 그동안 소외된 특정지역의 거주민들의 의료권리를 보장해주는 방법으로서는 적절한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부의 원격의료의 대상은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의료취약지구(섬, 벽지) 거주자와 만성질환 등에 적용하려고 한다. 불과 수백미터마다 의원과 중소병원이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도시 의료실태를 고려할 때, 현재 정부에서 기획하는 원격의료는 그대상조차 적절치 못하다. 또한 전국의 동네의원들이 전산화된 의무기록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더라도, 전국에 의료전산망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또 의료전산망도, 호환성 있는 전산화된 의무기록조차 마련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하려는 의도를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정부에서 원격의료사업에 대한 입법관련사항 및 시범안까지 이뤄졌다면, 그 모든 것을 의료인, 법조인, 의학계 또한 국내 및 외국의 원격의료전문인력과 공유하며 세밀한 토의와 협조들 거쳐서 원격의료사업의 전반을 재고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로 볼때 40~50년 걸리는 원격의료정책을 정부가 제시한 6개월의 단기간 시범사업은 설상 그 시범사업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전국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그 성공여부는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19조원의 천문학적인 재정이 드는 만큼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부가 현재의 의지대로 원격의료정책을 실행한다면 국민에게 매우 중요하며 미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원격의료가 오히려 독으로서 작용하고 이 중요한 원격의료제도가 실패작으로 전락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본다. 상상하기조차도 두렵지만 부실한 결과가 나면 정부의 어느 부처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국민 모두에게 큰 사회적 및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며 원격의료는 원래의 목적과 취지대로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실패한 의료정책의 대명사로 기억될까 안타깝다.

미세침습외과·로보트수술 전문의 / 미국 옥스너 헬스 시스템 / MD. MBA, FACS / 의료행정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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