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신설 방침에 "호의는 고마운데…" 어떤 방식으로 줄까 '갸우뚱'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정부의 모든 재정이 안전에 관련된 것으로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안전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모 학회는 올해 초 학회가 추진해온 시범사업에 잡혀있던 재정이 세월호 이후 정부가 조금씩 줄여 급기야 해당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안전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의료계에서 그동안 찬밥 신세이던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도 더불어 급증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환자안전과 관련된 수가를 신설하거나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제1회 외과의료 미래전략 포럼에서 복지부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1200억 규모의 환자 안전 수가를 책정해 놓고 이를 어떻게 집행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손 과장은 "수술장 관리나 드레싱 등 환자 처치나 무균조제료, 투약관리 등 기존 수가를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환자 안전 관리를 위한 유무형의 노력을 보상해주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수가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어떤 방식으로 보상할지는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건정심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00억원 규모의 환자 안전 관련 수가를 인상하고 새로운 수가를 신설한다는 복지부의 방향에 대해 의료계는 호의는 좋은데 조금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안전관련 수가에 대해 수가를 올려주겠다는 기본적인 방향에는 찬성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올려줄 것인지에 대한 실체가 없다는 비판이다.

이상일 울산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안전과 관련된 수가를 측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도 정부가 안전이 이슈가 되니까 올려주겠다는 발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수가를 인상하거나 신설하는 것이 단순한 일이 아닌 것은 환자안전의 수준이 측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측정하지 않은 것은 관리할 수 없듯이 환자 안전의 수준은 즉 위해를 측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안전에 관련된 규제의 영역은 사건의 예방, 발생한 사건의 파악, 사건에 대한 사후 조치의 3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중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발생한 사건의 파악'이란 것.

이 교수는 "수가를 계산하기 이전에 환자안전의 수준을 파악해 이와 관련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그 대책을 수행했을 때 얼마나 문제가 개선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안전 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난제도 존재한다. 국내에서 대부분 환자안전과 관련된 사건의 확인은 의료인의 자발적 보고에 의존하고 있어 의료진이 보고하지 않으면 측정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환자안전에 대한 기본이 다져져 있는 상태에서 안전 관련 수가를 논의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슈가 되니까 1200억원이라는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윗돌 빼서 아랫돌 채우는 것처럼 선택진료비를 낮추고 그 비용으로 안전수가를 책정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석화 회장.
김석화 환자안전연구회 회장(서울대병원 성형외과)은 "복지부의 접근 방식이 원칙이 없고 굉장히 우려스럽다"며 "선택진료비를 줄이고 남는 비용으로 고난이도 수술이나 환자 안전에 수가를 더 주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영상 수가 등 원가가 높은 곳에서 빼 원가에 못 미치는 곳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정부의 상대가치 체계가 엉망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고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1200억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향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석화 회장은 그동안 정부가 시험문제는 어렵게 출제하면서 답을 푸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처럼 환자 안전이 중요하다고 강조만 하면서 지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이번에 환자안전 관련 수가를 인상하고 신설하는 것은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정부가 대형병원에 지원하고 잘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환자안전의 취약지역이라 할 수 있는 중소병원에 정부 지원을 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안전에 대한 지원이 없어도 대형병원들은 스스로 의료의 질을 관리하는데 환자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며 "환자안전에 대해 관심이 있어도 비용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는 중소병원에 이 돈이 쓰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중소병원들도 환자안전에 참여하고, 이들이 안전사고 등에 보고할 수 있도록 리포팅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환자안전은 어느 한 병원만 한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공유해야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환자의 안전을 향상시키는 해결 방안들을 찾아, 이득이 가장 크면서 이를 적용하는 데 장애가 가장 적은 해결 방안을 선택해 병원 진료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AHRQ)에서 Evidence-Based Practice Center를 통해 각 개별 환자안전 활동의 근거 수준과 연구 우선순위를 결정하도록 한 것을 우리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환자안전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들은 다른 상황에 일반화할 수 있는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환자안전 수준 향상을 위한 해결 방안들이 유사한 효과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정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 안전에 정부가 지원을 하겠다는 것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 회장은 환자안전법이 내년 1~2월 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앞으로 환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1200억원 규모의 돈이 선택진료비를 낮추는 것 대신 병원에 그냥 지원하는 형식이라면 곤란하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안 회장은 "1000원짜리 물건은 1000원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며 "1200억원을 환자안전에 투여한다면 그만큼 환자안전의 질도 좋아져야 하고 이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좋아졌다는 의료의 질은 의사뿐 아니라 국민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투자한 비용에 대한 효과를 조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일 교수는 국가 수준의 환자안전 관리 활동을 뒷받침하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환자안전법을 제정해 의료제공자들의 환자안전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또는 기술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평원 “수가 책정 어려움 많다”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정부가 환자 안전 관련 수가를 인상 혹은 신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복지부도 인정하는 바다.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안전 관련 수가를 책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며 "안전상 장애를 야기하는 수가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기 어렵고, 유무형의 노력에 대한 보상체계를 확립하는 것도 어렵다"며 "물적인 보상은 의료계 외부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1200억원이라는 재정의 사용을 두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두 가지 트랙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부터 운영하는 '환자안전 관리체계 구축 TF팀'은 의료의 질 향상과 비용의 적정성 보장을 위해 심평원의 기능과 역할을 중심으로 환자 안전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평원 박춘선 환자안전 관리체계 구축팀장은 "심평원이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환자안전 관리 노하우를 재정비해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의료의 질과 안전수준 제고를 위한 안전표준 재설정 등 제도적 장치 마련 및 관리 효율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 진료정보를 이용한 환자안전에 필요한 예방•발견•대응 등 세 영역의 체계적인 접근을 통한 관리 및 새로운 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환자안전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자안전 관리체계 구축 TF팀' 이외에 복지부 사업으로 환자안전 관련 수가 신설 및 인상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박 팀장은 현재 수가인상 및 신설 내용에 대해 세부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말했다.

환자 안전 수가 인상 및 신설 등에 대한 결과는 오는 11월 의료질향상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고 이에 대한 토론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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