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못바꾸는 전공의 수련제도... 이원화 논의 있지만 이해득실 달라 손 못대

의료 인력 9만여명 중 전문의가 7만여명이라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의료계의 오래된 숙제인 전공의 수련문제와 전문의 과잉 문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말 대한의사협회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전문의는 8만626명이라 발표했다. 전년도와 비교해 9076명이 증가한 수치로 군진을 제외하면 7만6973명이다. 의사 전체 회원 중 전문의 회원 수는 자격등록전문의 대비 95.5%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전문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 46.3%는 병의원 개원을 하고 있고, 42.6%는 의료기관에 취업을 한 상태다. 개원전문의 분포는 내과 15.7%, 산부인과 9.7%, 소아청소년과 9.5%, 외과 7.8% 등으로 기본적인 진료과는 지역에 상관없이 개원 전문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 전문의 등록 추이 현황

1차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네병원의 일차진료 의사는 동네병원은 포괄적이고 다양한 진료를 주로 하는 반면 전문의는 해당 분야의 최신의학 지식과 기술을 사용한다. 따라서 전문의가 1차 진료기관인 의원에서 진료하면 효과의 측면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또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의 상당 부분이 1차 진료를 할 때 불필요한 것으로 수련과정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1차 진료기관인 의원을 개원한 전문의 비중이 너무 높은 것은 의사인력 자격초과에 의한 사회적인 낭비가 많다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전문의가 병의원을 개원하거나 중소병원에 근무하는데 3차병원에서 필요한 수련을 받는데 이는 시간, 비용, 의료자원 등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우고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전문의가 많다는 점보다는 모든 전공의들이 똑같은 수련과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학병원의 한 내과 교수는 "미국은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는 인턴 과정 없이 3년만 수련 받으면 된다. 초기 우리나라에서 이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오류를 범한 것"이라며 "기본적인 수련을 받은 후 추가적인 수련을 받으려면 펠로우를 하도록 했는데 우리나라는 인턴포함해 5을 수련하고 또 팰로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모든 진료과에서 동일한 수련제도를 시행하면서 수련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해도 곧바로 의원을 개원해 환자를 진료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은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

서울의 한 개원의는 "과거 내과 전공의라면 1년차 말이나 2년차 정도에는 내시경 등 관련된 시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요즘은 내과라고 해도 소화기내시경 전공이 아니면 내시경을 경험하기 어렵다. 결국 전문의를 따고 별도로 1년 팰로우를 받던가 아니면 선배들로부터 속성으로 배워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오영호 연구위원은 현재의 수련제도는 단과전문의를 양성하는 구조라 과다경쟁을 유발하고, 의사양성 비용로 인한 의료비 상승요인도 안고 있어 의료공급체계와 비합리성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오 연구위원은 "전문과목 간에도 기대수입, 위험부담, 개업 가능성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안과, 성형외과 등의 선호과목은 확보율이 100%이지만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등은 기피전문과목으로 전공의 확보도 어렵다"며 "정부가 해결하기 위해 수련수당지급이나 수가조정, 전공의 선발시 인센티브 부여 등을 고안하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무너지는 의료공급체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한 전공의는 전문의제도의 문제의 기저에는 수련이 목적과 다르게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전공의 수련평가를 대한병원협회 병원신임평가위원회에 위임해 주관하고 있는데 수련병원들이 양적팽창을 목적으로 전공의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재의 문제는 정확하지 못한 수련평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평가로 병원 논리에 맞춰 진행돼 온 결과다. 대형병원의 병상의 증가에 따라 전공의 정원을 늘려야 했던 것처럼 저임금 노동력으로 전공의를 취급하고 있다"며 "정부는 전공의 수련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련평가의 공정을 유지하고 수련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련평가기구의 독립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수련과정 이원화 필요 목소리 커

전문의를 양성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과목별 수련과정을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단계는 전문과목별로 1차 의료와 일부 2차 의료에 해당하는 의료기술을 숙련하도록 하고, 2단계에서는 그 이상의 의료기술을 수련하도록 하는 단계화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오 연구위원은 "각 전문과목별 수련 내용 중 1차 2차의료에서 필요한 것을 수련하도록 하고, 수련기간은 전문과목별 특성에 따라 다변화 하도록 하는 방식"이라며 "이후 3차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분과전문의제도를 도입해 3차 의료에 필요한 수련을 하도록 하고, 그 기간도 분과의 특성에 맞도록 다양하게 정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또 "전문과목을 수련한 일반전문의는 짧아진 수련과정만으로 개원이나 중소병원에서 의료를 충분히 할 수 있고, 본과전문의 과정을 거친 전문의는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고도의 의료기술과 지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련기간의 다변화는 미국에서는 정착된 시스템이다. 전문의가 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인턴포함 5년이 필요하지만(가정의학과, 예방의학과, 결핵과는 4년) 미국은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핵의학과, 예방의학과는 수련 3년 만에 전문의 취득이 가능하다. 신경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는 6~7년 수련기관이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일부 전문과목을 지원하려면 타 전문과목을 수련해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다. 예를 들어 성형외과를 지원하려면 외과 수련과정을 2년 이상 필수로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인턴 과정이 존재하지 않고, 레지던트 수련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내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정신과 등만이 의대졸업 후 곧바로 전공의 과정에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성형외과는 다른 과 수련을 3년 해야 지원할 수 있다.

미국처럼 전공의를 수련하는데 여러 기간을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은 의료계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선뜻 이 제도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각 진료과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큰 목적을 보면 내과나 소아과 등은 수련기간을 줄이고, 흉부외과 등 특수 진료과는 기본적인 임상진료를 하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수련기간을 늘이는 것이 맞지만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수련기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각 진료과들이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이득을 포기하고 대의를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각 진료과들이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일부 진료과에 전문의가 몰리는 현상을 개선하려면 정부가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기대수입 및 근무여건을 개선 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강보험수가를 진료행위의 상대가치와 소요자원이 반영되는 상대가치수가제도로 정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사연 오영호 연구위원은 "지금은 상대가치의 반영이 미흡한 수준으로 전공의과정에서 전문과목을 선택하는데 건강보험수가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상대가치수가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며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고위험도의 외과영역에서 의료사고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등의 방안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병원신임평가와 수련실태조사에서 수련 프로그램인증제로서 분리해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수련 프로그램은 여러 병원의 동일 전문과목 간에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이를 단위로 정원을 책정해야 한다는 방안이다.

오 연구위원은 "수련을 마치면 상당수 전문의가 대형병원이 아닌 중소병원 또는 의원에 취업 또는 개원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중소병원을 포함해 광범위한 의료기관에서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문의 인력공급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은 국내 수가제도와 의료전달체계 등 의료제도의 특성을 반영하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보다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정책위원장은 "의료이용량을 산출할 때 행위별수가제인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모든 과목을 내원일수 또는 진료일수로 근거로 할 것이 아니라 과목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1차 진료를 하는 의사들의 능력을 제고하려면 의대졸업자의 진료 능력을 향상 시키는 교육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대과정에서 환자진료 능력의 기본을 익히고 이를 졸업 후 1~2년간의 임상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전공의 수련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체 전문의 수 뿐만 아니라 전문과목별 필요로 하는 전문의 수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전공의 수급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의 수를 줄이기 위해 전공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단편적인 생각보다는 전문의들이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적인 감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1차 진료를 하는 의사로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정부가 유인정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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