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의사와의 윤리

문지호
명이비인후과 원장
의료윤리연구회
운영위원
32. 응답하라 의료윤리
동료 의사와의 윤리


최근 타과 선생님으로부터 진료의뢰서를 받았다. 환자 상태를 깔끔하게 정리한 요약이었다. 환자가 복용한 약의 종류와 기간, 처치 내용과 병의 경과가 꼼꼼히 적혀 있었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전문성과 의뢰받을 의사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막말과 출처 없는 글들이 난무하는 미디어 시대에 이렇게 투명하고 명료한 의뢰서 글자를 보니 눈이 다 청량했다.

생각해 보면, 동료 의사에 대한 첫 번째 윤리는 '소통과 배려'다. 환자를 위해 투명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전달된 정보를 환자 앞에서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동료와 잘 소통하는 방법이다.

간혹 실수가 발견됐더라도 환자 앞에서 동료 의사를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금해야 한다. 명백한 과실이 아닌 경우에는 의사나 환자를 위해 항상 언행을 삼가야 한다. 자신의 진단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먼저 진찰한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속단하여 다른 의사를 비난하는 행위는 환자에게 불신과 불안감만 더할 뿐이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라는 것이 아니다. 의학은 본디 불확실성의 학문이다. 불확실한 초기 증상이나 진단기기의 불충분 때문에 진단을 놓치는 한계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좋은 소통을 위해 실수를 인정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또한 투명하게 소통을 해준 동료의사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이런 소통과 배려는 불필요한 경쟁을 줄일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때로는 나의 실수가 공개돼 부끄러움을 겪고 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꺼이 감내하자. 그것이 의사 개인의 발전을 위한 일이고, 의사 면허가 사회와 계약한 내용을 지키는 길이다.

동료 의사에 대한 두 번째 윤리는 '잘못을 교정' 해주는 용기다. 바로 전문직의 고유한 특성인 자율 규제(self regulation)를 엄격히 시행하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이 기반인 우리나라 사회는 관계를 중시했다. 때문에 동료 의사에 대한 존경과 신의만 강조했지 동료의 잘못을 공개하고 교정하는 일에는 익숙지 못했다. 자칫 오만하고 의리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서다. 이런 행태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부정을 저지르게 했고, 의료과실 사건 때는 무조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해를 낳게 했다. 부정과 과실에 대해 쉬쉬하던 의사들은 공정성과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었다. 심지어 의료과실을 스스로 입증해야하는 책임까지 지게 되었다.

부정을 저지른 의사는 물론, 의료과실을 범한 동료의사는 배려하거나 감싸주면 안 된다. 1983년 제정된 ‘의료윤리에 관한 국제협약’에서는 '이런 의사들은 거침없이 폭로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의사집단의 전문가적 역량으로 환자에게 부도덕을 저지르는 의사는 신속히 막아야 한다. 환자의 이득과 권리에 해가 되는 일들은 공개하고 솎아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의사가 해야 할 동료에 대한 윤리요, 국민에 대한 의무다.

우리의 선배들은 대한민국의료를 세계 수준에 올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숨을 고를 때다. 이룩해 놓은 업적을 지켜내야 하는 때다. 이 시대 의사들의 윤리가 무너지면 선배들의 업적은 빛을 잃는다. 오늘날 우리들이 할 일은 앞선 선배의 업적을 단단한 윤리로 굳건히 세우는 일이다.

날카롭게 갈아놓은 우리의 의술이 윤리라는 칼집에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게 하자. 칼을 빼내었을 때는 정확하게 환부를 도려내어 환자를 치료하자. 또한 동료의사의 부정도 냉정하게 쳐 내주자. 우리 시대 의사들에게 주어진 의무며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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