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금 많은 건 게으른 투자 때문?

 

정부의 세수(稅收) 확보 정책으로 제약사에 불똥이 튀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 매출액에서 매출원가, 판관비, 영업외 손익, 법인세, 배당금 등을 제외한 이익잉여금, 자본잉여금 등을 사내에 축적한 것을 말하는데, 현금 외에도 기계설비, 공장 투자 등에 사용된 것을 포함한다.

정부는 기업 사내유보금 적립률이 지나치게 높아 내수 활성화 등을 위해 배당을 활성화하고 임금 인상을 모색한다며 과세 카드를 꺼냈지만 제약업계는 기업 안정성 저해와 투자여력 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상시험에도 부가세를 부과하는데 연이은 과세가 제약산업을 육성한다는 정부 정책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유보금 많은 제약사는?

CEO 스코어가 최근 매출액 상위 10대 제약사의 올 1분기 말 유보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사내 유보금 총액은 4조909억원으로, 2010년 3조16억원에서 36.3%가 증가했다. 단 지난해 지주사로 분할해 정확한 비교가 불가능한 동아쏘시오홀딩스와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 등은 제외됐다.

가장 유보금이 높은 곳은 유한양행이었다. 1분기 말 유한양행의 유보금은 1조2382억원으로 4년 전인 2010년 1조525억원에 비해 17.6%가 증가했다. 녹십자의 1분기 유보금은 7735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한미약품(4833억원), 대웅제약(4569억원), 일동제약(3017억원)이 뒤를 이었다.

 

상위 A사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유보금이 없어 망한 회사들도 있다. 우리 회사도 당시 유보금이 여의치 않아 지분 일부를 정리했다. 그 이후로 유보금을 꾸려오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유보금이 상승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또 쌓인 금액으로 지분을 인수하고 그에 따른 배당으로 현금성자산이 쌓여 사내유보금이 증가했으며, 이를 공장 교체 등에 투자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사내유보금이 일정 규모 쌓이면 M&A를 통해 적극적인 영역 확장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기업은 몇 번의 크고 작은 M&A를 통해 사세를 키웠는데 이 또한 꾸준히 투자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보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은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긍정적인 요소가 많을 때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정작 M&A나 해외 시설 투자 등에 있어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추진할 여력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기업 전략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보금이 많은 가운데 연구개발비가 적다는 지적이 있는데, M&A를 통해 기술력 있는 업체를 인수, 제품화하는 것도 오픈 이노베이션적인 경영전략 차원에서 R&D 투자가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임상시험 이어 유보금까지 과세 '부담'

B사 관계자는 정부의 과세 정책 목적이 내수 진작보다 세수 진작에 있지 않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제약사에 대한 집중적인 세무조사가 이어지는 판국에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경로로든 세수확보에 나서지 못하겠냐는 지적이다.

또 기술 투자, 회사 지분 인수, 공장 설립 등 실질적으로 미래 투자를 위해 재투자된 자산이 현금보다 많기에 사내유보금을 과세하면 공장을 팔면서 유보금을 줄이지 않는 이상 오히려 투자는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사내유보금 과세는 사실 제약업군이 다른 산업보다 작아 상대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임상시험에 부가세를 매기는 것은 2020년까지 글로벌 7대 제약강국을 만들겠다는 것과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제약 글로벌 강국이라는 열매는 바라면서 산업이 잘 자라도록 물과 거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금과 각종 규제로 부담을 떠안겨 아쉬움이 있다는 의견이다.

"유보금 많은 건 투자 게을러서?"

유보금 많은 제약사가 투자에 게으르다는 지적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조세팀장은  "산업이 완전 성숙기에 올라가 더 이상 유용한 투자처가 없다면 굳이 기업이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배당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산업은 수익처를 발굴하고자 유보금을 쌓아두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단지 유보율이 높거나 유보금이 많다고 해서 투자를 안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정부의 과세 기조는 2009년 이후 증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R&D 세제지원을 줄인다거나 부가세를 부과하는 등은 점차 확대되고 이는 제약뿐만 아니라 산업전체가 그렇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점차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제약사는 리베이트와 과도한 병원 랜딩비 등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사회적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리베이트 등 문제가 많았는데 사내유보금이 과연 제약사가 정당히 기업이윤활동을 통해 번 돈이냐는 부분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제약사는 다른 사업과 달리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사업을 하고, 국민적인 불신이 있기에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약사는 이익이 났을 때 일반 주주나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것보다 오너와 오너 일가에 대한 이익 집중이 유독 심하다며 사회적 책임 측면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단순한 현금도 아닌 것을 소모시키고자 투자 혹은 배당하도록 과세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지난 2009년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통해 인하분만큼 투자나 고용을 증대하라는 기회를 줬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인하된 법인세가 사상 최대의 기업 사내유보금으로 이어졌다"며 "법적의무는 아니지만 기업도 건전한 투자나 임금인상, 배당에 신경쓰면서 사회적 책임을 할 필요가 있다고 도의적 측면에서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사내유보금 과세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라는 명칭으로 2014년 세법개정안에 반영됐다. 기업이 이익의 일정 부분을 배당, 투자 임금 인상에 사용하지 않으면 세금이 부과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소득 환류세제에 대한 현재 정부 방침은 과거 소득에 대해 과세한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발생하는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만 부과하는지 해외투자도 포함하는지 등 범위와 구체적인 사항이 향후 결정되기에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안은 내수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부담 증대에 대한 기업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향후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도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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