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관상동맥질환에 동반땐 질환 더 악화

당뇨병, 관상동맥질환(CHD),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주요 만성질환과 우울증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내과적 질환이 있는 환자 10~20%가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당뇨병 11%, 심근경색 20%, 파킨슨병 환자 17% 등에서 우울증이 이환돼 있다. 우울증은 특정 증상 중에 하나인 정서적 불안과는 별개로 동반 질환의 예후를 나쁘게도 한다.

실례로 환자들의 순응도를 떨어뜨리거나,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 뇌졸중 등의 특정 질환 사망률 역시 높인다.

이처럼 다양한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우울증은 흔하게 발생하고 있어 치료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만성질환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입증한 연구들을 살펴보고, 전문가를 통해 그 대안을 들어봤다.

당뇨병과 우울증 매우 밀접

당뇨병에 우울증이 겹치면 혈관계 등의 손상을 일으키는 혈중 염증표지(CRP)가 높아진다. 또 이전 연구결과를 통해 당뇨병 환자는 다른 이에 비해 우울증 발생률이 높고, 특히 우울증을 함께 동반한 환자는 장기적으로 건강상태가 나빠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연구소 Khalida Ismail 교수팀은 Diabetes Care 5월 19일자 온라인판에 기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입증했다.

연구팀은 당뇨병 환자 1227명을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한 결과 당뇨병과 우울증을 동반한 환자는 당뇨병만 있는 환자에 비해 장기적인 혈중 CRP가 높았다.

염증은 질병, 외상, 다른 긴장상태에 신체가 반응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인데, 당뇨병과 우울증을 동반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박동수가 빠르고 순환계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위험도 역시 최고 2배까지 높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당뇨병이 주는 심리적 부담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연구팀의 추정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면 당뇨병이 효과적으로 개선될까?

Ismail 교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 발병 위험도가 높은 것은 염증반응이 가장 큰 원인인데 저강도 염증반응이 만성적으로 지속된다면, 혈관계, 뇌, 췌장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단 우울증이 부분적으로 염증에 의해 유발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어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 중에서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을 동반한 경우 특히나 치료효과 및 증상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우울증상이 심하지 않더라도 2형 당뇨 합병증을 악화시킨다고 캐나다 맥길대학 Norbert Schmitz 교수팀이 Diabetes Care 4월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당뇨병 환자 1064명을 대상으로 5년간 우울증상과 함께 당뇨 합병증 정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상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우울증이 있었고, 질환이 없는 이와 비교 했을 때도 삶의 질이 3배 이상 떨어졌다. 즉 미미한 우울 증상을 보이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우울증을 동반한 경험이 많을수록 삶의 질이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Schmitz 교수는 "우울증으로 인해 삶의 질이 낮아지면 당뇨병 환자들은 치료 가이드라인에 따른 식단과 운동에 적극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 같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당뇨 합병증 발생위험도를 높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2010년에는 당뇨병과 우울증을 동반할 경우 치료적 혜택을 얼마만큼 손실시키는가를 알아보는 대규모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하버드의대 An Pan 교수팀이 JAMA Internal Medicine 11월 22일 온라인판에 발표한 연구결과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연구팀은 50~75세 이상 여성 6만 5381명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통해 당뇨병 여성환자가 우울증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우울증 환자의 당뇨병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이보다 17% 높았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여성도 그 위험도가 25% 증가했다. 또 당뇨병을 동반한 여성의 우울증 발병률은 29%, 인슐린을 사용 중인 여성 역시 위험도가 53% 높아, 두 질환의 병용치료 중요성을 재확인시켰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의대 소속 브리검 여성병원 Nicolas Bolo 박사팀은 지난 6월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미국내분비학회(ENDO 2014)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6세 이상 제 1형 당뇨병 환자 8명(남성 3명, 여성 5명)과 29세 이상 건강한 성인 남성 6명과 여성 5명을 대상으로 우울증과 당뇨병에 상관관계가 존재하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제 1형, 2형 당뇨병 환자 모두가 질환의 치료 및 관리가 까다롭다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이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그만큼 증가했다.

또 혈당이 높을 경우 주요 우울장애의 발병기전 중에 하나인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glutamate)의 활성이 증가했다. 이와 반대로 건강한 성인은 혈당이 높아도 우울증 발병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Bolo 박사는 "혈당이 높아지면 자기인지와 감정과 연관된 뇌 영역간 연결 강도가 건강한 사람보다 더 약해지게 된다. 당뇨병 환자들이 건강한 사람보다 혈당이 높을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 쉽지만, 우울증 지수는 실제 주요 우울증 진단 범위보다 여전히 낮다"고 전했다.

국내에도 당뇨병과 우울증의 상관성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화여대 교수팀이 당뇨병에서 우울증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화여대 류인균 교수팀은 2012년 10월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에 기재한 연구결과를 통해 "제1형 당뇨병으로 상측 전전두엽이 손상돼 두께가 줄어드는 것을 우울증 유발 요인으로 추정하고, 이를 뇌영상 연구를 통해 증명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제1형 당뇨병 환자 중에 과거 우울 증상이 있었던 환자는 우울 에피소드가 없었던 대조군에 비해 상측 전전두엽의 두께가 얇아진 것을 확인했다. 또 우울 에피소드를 가진 제1형 당뇨병 환자군에서 생애 혈당 조절이 안 될수록 상측 전전두엽의 두께 감소 정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상측 전전두엽이 제1형 당뇨병과 우울증의 병태 생리에 모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혈당 조절과 관련된 상측 전전두엽의 구조적 손상이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우울증 발병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횡단적 뇌영상 연구(cross-sectional neuroimaging study)이기 때문에 당뇨병과 우울증 관계의 인과성을 증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관련 종단적 뇌 영상연구 등 추가 연구를 통해 보다 분명한 관계 규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당뇨병으로 고혈당과 신경 독성의 증가, 우울증 발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생물학적 기전을 제시했다"면서 "치료적인 혜택을 더욱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CHD와 우울증 연관성도 부인할 수 없어

관상동맥질환(CHD) 환자에서 우울 증상이 함께 동반하고 있다면 즉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심장협회(AHA)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환자에서 우울증도 위험요인으로 관리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AHA 권고안은 ACS와 우울증 간의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강조했다. 우울증이 생물학적 기전으로 불규칙한 심장박동 수와 신경계 시스템과 호르몬 사이에서의 기능장애가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증상에 따른 특수한 행동패턴이 생활요법, 약물치료 등에 대한 순응도, 흡연, 음주, 사회적 고립이나 만성질환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심혈관질환 치료를 어렵게 한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이는 만성 우울증 환자에서 CHD 위험도가 높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권고안의 신뢰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국 런던대학 Eric J Brunner 교수팀이 European Journal of Preventive Cardiology 온라인판을 통해 "Whitehall II 연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1·2기와 달리 3기 이상인 환자일수록 CHD 발생위험률이 높다"고 밝힌 연구가 가장 눈에 띈다.

Whitehall II 연구는 1985년부터 런던에 거주하는 1만 308명을 대상으로 건강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했다. 대상군은 39~62세의 남녀로 67%가 남성 90% 이상이 백인으로 구성됐고, 4~5년의 관찰 주기와 3~10년의 관찰주기로 총 24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Brunner 교수는 "5년 주기로 수집한 자료를 보면, 만성 우울증이 CHD 누적 발생률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면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심혈관질환 발생위험 요소 가운데 우울증도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Whitehall II 연구 결과를 통해 증명됐다. 연구는 우울증 증상을 알아보기 위한 General Health Questionnaire(GHQ-30)와 2003~2004년도에 작성된 우울증 자가진단표인 Center for Epidemiologic Studies Depression Scale(CES-D)를 토대로 이뤄졌다. 분석 결과 GHQ-30 설문에 참가한 23%가 1년 주기로 우울증 증상을 겪었다고 했고, CES-D에는 15%가 우울증이 있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GHQ-30으로 분석한 결과 뇌졸중 발생위험도와도 연관성이 있었지만 이는 5년 동안의 데이터만을 분석한 결과로 10년 이상 수집된 자료는 포함되지 않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CHD 환자는 우울증 유병률이 높고, CHD 환자의 예후나 삶의 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질환의 예후에 연령이나 성별도 영향을 미칠까?

미국 에모리대학 Amit J. Shah 교수팀이 평균연령 62.5세 CHD 환자 3237명을 대상으로 2.9년간 우울증 선별검사(Patient Health Questionnaire)를 이용해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우울증상을 보이는 55세 이하 여성환자가 55세 이상인 남녀를 모두 비교했을 때보다 CHD 유병률은 1.07배, 사망률은 1.07배  높았다. 더불어 55세 이하 여성환자 중 27%는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었다.

Shah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우울증이 있는 젊은 여성은 CHD 위험도 역시 높았으며, 특히 남성과 고령 여성보다 심혈관 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 위험도가 크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재민 교수
"일시적 불안증상과 혼동해선 안돼"
■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재민 교수

김재민 교수는 만성질환자에서 흔히 동반되는 우울증을 간과하지 말고 즉각적인 병용 치료를 통해 질환 호전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일시적인 불안 증상과 우울증을 혼동하지 말고 과도한 항우울제 처방과 만성질환 환자에 적합한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치료의 키포인트라고 강조했다.

- 만성질환과 우울증의 상관 관계가 다수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만성질환에서 우울증을 함께 동반한 환자 가운데는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두통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신체질환 자체의 증상과 우울증 증상을 혼동할 수 있어 이를 먼저 구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례로 환자가 CHD, 당뇨병, 암 등을 진단받을 시 대부분이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불안 증상을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시적인 형태의 증상과 우울증을 구분하기 힘들다.

대개  불쾌 및 불안감 등의 가벼운 증상들은 2~4주 뒤면 자연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적어도 한달 간격으로 세번 이상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우울증인지 아닌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명확하게 진단을 내려야 한다.

- 만성질환 환자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높은데, 그렇다면 치료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나?

현재 미국에서 시행되는 통합적인 치료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즉 당뇨병과 CHD 등 만성질환을 완화시키기 위한 치료와 함께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을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인 문제를 함께 상담해줘야 한다.  이러한 치료가 장기적으로 시행된다면 약물 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면 그만큼 치료적인 혜택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또 만약 만성질환자 환자에서 우울증 증상 정도가 심각할 경우 항우울제를 처방하는데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이미 만성질환과 관련한 약물에 항우울제를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물간 상호작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약을 처방해야 된다. 또한 신체질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약물 위주로  사용하는 것도 염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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