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사실상 종료... 보건의료계의 힘없는 복지부 민낯 드러내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오는 2030년도에 개발돼야 할 기술을 발굴하기 위해 복지부, 의료전문가, 미래예측, 법제도 사회경제, 융합기술 전문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의료원정대'를 웅장하게 출범시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 미래의료원정대에 관련된 소식이 거의 없다.

▲ 지난해 9월 미래의료원정대 발대식 장면

확인 결과 올해 7월 미래의료를 예측하는 이 프로젝트는 잠정적으로 종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의료원정대에 참여했던 한 자문위원은 "지난달 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초안 보고서가 나왔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언론에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은 미래의료원정대 추진할 당시 '기술이 2030년 병원을 바꾼다' 등의 보도자료를 내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마무리는 아무런 결과물조차 발표하지 않으면서 슬그머니 활동을 정리 했다. 만일 미래의료원정대의 성과가 컸더라면 정부가 이렇게 프로젝트를 마치지 않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부분이다.

미래의료원정대를 기획한 곳은 복지부다. 의료기술은 미래사회를 전망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기술이라는 판단을 하고, 현재 기관들이 하는 단편적이고 나열적인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미래 환경 변화를 통한 미래의료 아이디어 및 주요이슈 발굴, 메가트랜드와 의료현장을 고려한 미래의료 발전 방향 도출, 미래의료 현장에서 구혈될 주요 이슈별 시나리오 분석 등을 목적으로 전문가들을 모집했고 지난해 9월 웅장하게 항해를 시작했다.

총 21인의 총괄위원회(위원장 박영일 이화여대 대학원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이정신 교수를 비롯한 고려의대 선경 교수, 연세의대 송시영 교수 등 10인의 자문위원회와 각 10인 내외의 7개 분과를 구성했다. 분과는 2030 질병극복 분과를 비롯한 생애맞춤 건강관리분과, 국민행복 의료서비스 분과, Global Top HT 분과, 미래의료산업창조 생태계 분과, 미래의료산업 기술예측분과, 법제도 윤리분과로 구성했다.

복지부가 추구한 것은 미국 국가정보위원회가 발표한 '글로벌 트랜드 2025-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9개 혁신기술'이나 랜드연구소의 '글로벌 기술 혁명 2020-16개 기술선별'이나 영국 포사이트 호라이즌 스캐닝센터가 발표한 '영국이 집중해야 할 7개 기술' 등과 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의료기술을 준비해 보자는 의도였다.

특히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의 바이오게론기술, 인간능력강화기술, 서비스 로봇공학 등과 랜드연구소의 특정부위 약물전달법이나 침투형 센서, 진단 및 수술방법 개선 등과 같은 미래기술을 개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도는 좋았으나...

전문가들은 복지부의 미래의료원정대는 생각에 생각했던 것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시도 자체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고 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보건산업진흥원과 의료기술 컨설팅 회사인 (주)날리지웍스가 위원회 운영을 지원했다. 여기에 HT포럼과 창조경제포럼 등과도 연계해 추진체계 자체에는 문제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원정대에 참여했던 A위원은 정부의 시도 자체는 모험이었지만 필요한 도전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미래의료산업 기술예측 분과, 미래의료산업 창조 생태계 분과, 국민행복의료 서비스 구축 분과 등 7개 분과로 나눠 미래의료를 예측한다는 것은 해볼 만 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가 시나리오 기법과 다수가 협력과 경쟁을 통해 최적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집단지성을 활용해 2030년도의 의료시장을 예측해 창의적인 지식과 아이디어를 모은다는 발상 자체는 긍정적이었다"며 "지금까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진행했던 것을 미래에 초점을 두고 시나리오 방식으로 미래정책을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의료전문가라 자신의 영역 범위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의사도 필요하지만 인문학자, 디자이너, 소설가 등 더 창의적인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논의된 결과물을 인간 즉 사용자가 동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텍스트 위주로 소개되는 걸 보면서 미래의료를 예측하는 일은 아직은 과도기 단계"라며 "이번에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앞으로 추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 시도하는 방법이었던 만큼 시행착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위원은 "초기 회의 때는 방향을 잡지 못해 의료계 위원들이 낸 아이디어가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를 두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과감한 아이디어도 내는 등 원정대가 원래 의도했던 시나리오 기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래의료원정대의 분과의 분류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미래의료산업 창조생태계 분과, 미래의료산업/기술 예측분과, 국민행복의료 서비스 구축 분과, Global TOP HT 혁신 분과 등이 거의 비슷해 각 분과의 특성을 살리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복지부가 의료산업을 통찰할 능력 있나?

시작할 당시부터 미래의료원정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게 곱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거창하게 미래의료원정대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실상은 복지부 내의 수많은 위원회 중의 하나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컸다. 또 먼 미래를 예측하는 프로젝트인데 짧은 시간 안에 몇 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성과물을 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프로젝트라는 주장도 있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복지부의 의지와 능력을 꼬집는 사람도 있다. C위원은 "처음 미래의료원정대가 시작했을 당시 복지부 장관은 진영 장관이었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각 분과 위원들도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모여 자신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내고 미래의료 청사진을 돌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얼마 후 복지부 장관과 담당국장이 바뀌면서 미래의료원정대에 대한 관심이 대폭 줄면서 위원회 회의도 줄고 복지부 의지도 덩달아 축소됐다.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됐다"고 꼬집었다.

또 "미래의료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장관이 바뀌면 언제 그런 기획을 했느냐는 형태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미래의료를 2030으로 잡았는데 이것도 너무 멀리 잡은 것 같다. 빠르게 진행되는 트랜드를 볼 때 5년 정도 이후를 잡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복지부나 진흥원이 과연 전문가들의 창조적인 생각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각 분과별로 미래의료 이슈를 도출해 이를 가지고 '미래의료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R&D 도전과제와 종합적 미래상을 작성하는 전문가들의 능력을 복지부 공무원이 과연 가능 했을까 하는 의심이다.

C위원은 "복지부 공무원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의료분야 전문가들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 때 의료계가 어떻게 반응할까를 걱정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복지부 공무원들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건 역부족이란 의견도 나왔다. D위원은 "복지부 공무원들이 미래의료원정대를 기획했다지만 이를 이끌고 가려면 의료산업에 대한 통찰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들과 얘기가 되고 미래를 기획할 수 있다"며 "복지부 공무원들이 과연 그런 능력을 갖췄는지는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힘없는 복지부,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미래의료원정대는 힘을 쓰지 못하는 복지부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도 나왔다. 복지부는 현재 미래부, 산자부 등과 의료산업 분야에 대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주도권은 미래부나 산자부에 빼앗기고 제대로 된 경쟁 상대조차 되지 못하고 것이 현실이다. 이번 미래의료원정대 활동도 마찬가지였다는 평가다.

C위원은 "미래의료원정대 초안 보고서가 나올 즈음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서도 비슷한 결과물이 나올 예정이었고, 결국 복지부가 결과도출 방법 등을 바꿔야 한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며 "복지부와 마찬가지로 미래부나 산자부도 IT융합이나 전자에 어떻게 의료를 접목할 것인지 등 미래예측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면서 복지부가 생각지 못한 것보다 크게 움직인다. 복지부는 아이디어도 없고 과감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E위원도 부처 간 경쟁도 미래의료원정대의 발목을 잡은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나 미래부, 산자부 등 각 부처 간 문제도 있고 또 경쟁이 치열하다. 더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래부나 산자부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는 미래예측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동정표도 있다. 복지부에서 이를 담당했던 부서는 보건의료기술개발과이다. 복지부 내에서도 관심도 적고 예산도 적은 부서인데다 게다가 기술개발이나 미래예측 분야라 더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몇몇 전문가는 힘없는 복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비판 이외에도 복지부가 다른 부서와 협업에 능동적으로 임하지 못했고 결국 부처 간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별다른 성과 없이 미래의료원정대가 끝났다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참여했던 한 자문위원은 "이 프로젝트가 아주 끝난 것은 아니라 앞으로 세부기획이 나올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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