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다학제 때 2만8000원 정도... 의료계, 외래 진료봐도 이 정도는 수익 가능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한 관계자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제도 개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버나드 쇼의 시구가 떠올랐다고 했다. 정부가 제시한 보존 방안 대부분이 생각보다 턱없이 낮았고, 병원이 돈을 투자해야 비용을 보존 받을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라고.

정부는 수가보존을 위해 고도수술·처치·기능검사 상대가치점수 인상과 중증환자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수가 조정, DRG수가조정을 제시했다. 여기에 기본입원료를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3%, 병원 2%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수가 조정 부분에서 입원중 협의진찰료, 가정간호 기본방문료, 다학제 통합진료료에 대해 수가를 인상하고 집중영양치료료와 혈액관리료를 신설했다.

협의진찰료는 나쁘지 않다

의료계는 협진료, 다학제 통합진료료, 집중영양치료료 등은 병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협의진찰료는 현재 외래 기본진찰료의 50% 수준으로 월 1회 인정하고 있는 것을 상급종합병원 30일에 5회, 종합병원 30일 3회, 병원·치과·한방병원은 30일에 2회로 횟수를 늘렸다. 또 병원급 기준으로 4790원이던 수가를 상급종합병원 1만700원, 종합병원 9720원, 병원 8740원으로 인상했다.

협진료와 관련해 현장의 의사들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기획조정실장은 "그동안은 환자를 다른 진료과에 진료 의뢰를 하면 한번만 인정했는데 5번까지 인정한다니 현실화 됐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며 "병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혜택임에는 틀림없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는 "환자가 조금만 불편을 호소하면 다른 진료과로 컨설트를 의뢰하는 사례가 증가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는 시행 후 컨설트가 많이 증가하면 또 이를 규제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8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가조정방안 설명회에 참석한 모 의사는 "앞으로 다른 진료과로의 환자 컨설트는 경영진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의사들이 알아서 많이 할 것이다. 병원이 수익에 대해 압박을 주는 상황에서 환자가 불편을 호소하는데 왜 컨설트를 의뢰하지 않겠냐"라며 "6개월 이후 정부가 5번이라는 횟수를 조정하려고 들 것이 분명하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학제통합진료료 신설

이번 정부 발표 중 의료계가 가장 아쉽게 느끼는 사항은 다학제통합진료료이다. 4인이 다학제 통합진료에 참여하면 병원급 기준으로 11만3210원, 5인 이상이 참여하면 14만 1510원을 책정하는 것으로 이번에 신설된 수가다. 상급종합병원, 암관리법에 따른 지정병원,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진흥법에 따른 원자력의학원이 대상 기관이다. 복지부는 외래 암환자 기준으로 원발암 기준은 환자당 3회 이내, 재발시 2회 이내 추가해 수가를 신설했다.특히 서로 다른 전문과목 또는 세부전문과목 전문의가 동시에 대면진료를 해야 수가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진단과 치료에 관련된 전문의 3~7인 이상이 동시에 진료에 참여해 진단 및 치료계획을 위해 학제간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한번에 도출하는 다학제통합협진이 이상적인 치료방법이라는 데 의사들의 의견은 없다.

단국대병원의 암센터 다학제진료위원회 위원장인 방사선종양학과 최상규 교수는 "다학제통합진료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는 미국은 환자의 생존율을 4~5% 이상 상승시키고 있다"며 "국내 병원에서도 진료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10% 정도 되고, 환자의 만족도도 높다는 통계가 있어 통합진료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점을 설명했다.

지난 2006년부터 다학제 통합진료를 하는 서울아산병원은 환자가 통합진료실에 오면 각 진료과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료 소견을 피력하고 또 치료방침을 논의하고 있다. 다학제 통합진료를 통해 가장 좋아진 것은 환자 만족도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10년 6~7월 환자 및 보호자 210명을 대상으로 고객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98.6%가 통합진료에 대해 만족하고, 진단 및 치료방향에 대한 신뢰도 질문에도 98.6%가 신뢰한다고 응답했고, 통합진료 전후의 심리적 변화에 대해서도 86.2%가 진료 후 편안해졌다고 답한 것으로 발표됐다.

좋은 거 알겠는데 수가는 어쩌란 말이냐

다학제 통합진료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이 의사들의 발목을 잡는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의사들이 진료하고 수술하는데 4~5명이 외래에서 모두 같은 시간에 모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적은 수가도 문제다.

상급종합병원에 11만3210원으로 수가가 책정돼 있는데 4명이 진료하면 한 사람 당 약 2만8000원이다. 통합진료를 하는데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면 외래에서 환자 몇 명만 봐도 2만원 이상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빈약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다학제협진위원장을 맡은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교수도 "하면 할수록 손해나는 구조다. 5명이 협진을 해 수가를 받느니 각자 진료실에서 진료하면 훨씬 더 많은 이익이 된다. 사실 상 이미 하고 있던 빅5병원 정도 외에는 현실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우리 병원도 다학제진료를 실시한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일부 고위험군 환자에 대해 시도는 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병원 최 교수도 수가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최 교수는 "각기 다른 진료과 의사 5명이 모여 외래 대신 진료를 하는데 수가가 너무 적다"며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등 큰 병원은 무리가 없을 것 같지만 규모가 작은 병원은 다학제협진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낮은 수가 등 몇 가지 맹점이 있지만 병원들은 정부의 다학제 통합진료료 수가가 신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암센터 다학제진료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교수들의 외래 스케줄을 조정하는 등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학제 통합진료료는 몇 가지 숙제도 않고 있다. 환자 한명에 대한 다학제 진료 후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또 만일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남았다.

종합병원, 울고 싶은데 빰 때렸다?

상급종합병원들에 비해 이번 발표로 울상인 곳은 종합병원들이다. 종합병원의 한 관계자는 "복지부가 왜 수가를 이렇게 설정했는지 모르겠다. 협진료, 가정간호기본방문료, 다학제통합진료료, 집중영양치료 등 거의 부분에서상급종합병원과 수가 차이를 뒀다"며 "가장 큰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은 종합병원들인데 정말 상황이 심각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수가개편안으로 상급종합병원에 비해 종합병원들이 타격을 받은 것은 복지부도 인정하는 바다. 지난 18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복지부 보험급여과 모두순 사무과은 종합병원의 상황을 공감한다고 밝혔다. 모 사무관은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개편에 해당하는 병원의 70% 이상이 상급종합병원이었다.

개별 병원의 상황에 대해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 안건을 올려 모니터링 했을 때 손실액이 ±20% 수준이었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별도의 팀이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6개월 이후 다시 보정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반기가 되면 2차 병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3차 병원 진입을 위해 애쓰고 있고, 암환자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다학제진료 수가가 매겨지면서 환자들의 외면을 받을 확률이 커졌기 때문이다.

2차병원의 한 교수는 "암센터를 만들고 갑상선암, 유방암, 위암 등 예후가 좋고 환자수 자체가 많은 암에 특화시키려고 해왔다. 중증도를 높이면서도 병원의 특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봤지만, 이번 다학제진료가 결국 암 환자를 놓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또 "현재도 환자가 진단을 받아도 다른 병원으로 가기 일쑤다. 다학제진료 수가가 매겨지면 기존 빅5병원 외에도 시도하는 병원들이 늘고 환자들이 다학제진료 여부를 따져 암센터를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2차병원의 교수는 "중증 환자, 암 환자 등 수술을 많이 해야 그나마 사라진 선택진료비 수가가 보존되는데, 내과나 정형외과 환자가 많은 지역병원 성격에 특화돼있는 2차병원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며 "아무래도 정부가 몇 개 병원은 망하라는 시나리오를 짠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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