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만성·퇴행성 질환의 임상관리 - 고혈압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노인 고혈압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의학계는 노인 고혈압의 이환특성에 더해 과학적 근거의 부족으로 임상현장의 적극적인 치료가 미흡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ACC)와 미국심장협회(AHA)는 지난 2011년 ‘노인 고혈압에 대한 전문가 합의문’ 제목의 성명을 발표, 임상현장의 분발을 주문했다. 핵심은 노인 고혈압의 유병률은 높은 데 반해 혈압 조절률은 낮아, 합병증과 사망위험이 증가하고 이로 인한 의료·사회비용의 부담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유병률

 
성명은 노령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고령남성 64%와 여성 78%가 고혈압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Framingham Heart Study에서는 55세 때 정상혈압이었던 사람 중 90%에서 이후 고혈압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30세 이상 성인의 고혈압 유병률(잠정치)이 30.3%로 남·여 모두 연령이 높을수록 증가곡선이 역력하다. 30~39세가 9.1%, 40~49세 22.7%, 50~59세 39.2%, 60~69세 55.6%, 70세 이상 69.5%로 연령 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2011년에도 남성이 14.6%, 31.2%, 38.0%, 53.5%, 58.9%였으며 여성은 3.4%, 10.8%, 29.7%, 57.1%, 71.5%로 여전히 연령별로 고혈압 유병률의 차이가 심하다<그림 1>.

조절률
문제는 높은 유병률에 반해 혈압을 목표치 미만으로 낮추고 유지하는 조절률은 상대적으로 신통치 않다는 데 있다. ACC·AHA 성명에 따르면, 고령 연령대에서 중년에 비해 고혈압 인지율과 치료율이 높은 반면, 조절률은 떨어진다. 특히 80세 이상 초고령에서는 조절률이 30%대에 머문다. 노인고혈압 환자들의 경우 고혈압의 위험은 잘 인지하고 치료에 나서고 있으나 혈압은 제대로 조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건강통계
우리나라의 국민건강통계에서 2007~2009년 고혈압 관리현황(잠정치)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의 인지율(76.9%)과 치료율(72.7%)이 높은 것은 미국과 일치한다. 그런데 조절률은 유병자(고혈압 환자) 기준 47.1%, 치료자(항고혈압제 복용자) 기준 64.1%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2011년 통계를 봐도, 60세 이상 인구의 고혈압 인지율은 남(75% 이상)·여(83% 이상) 모두가 높은 가운데 조절률은 50%에 머물고 있다<그림 2>.

 
임상현장의 경험
관동의대 제일병원 심혈관내과의 박정배 교수(대한고혈압학회 학술이사)는 이에 대해 “노인 고혈압의 이환특성상 공격적으로 혈압을 떨어뜨리기가 어려우며, 이로 인해 실제 임상현장에서 노령층의 혈압 조절률이 젊은 연령대에 비해 낮다”고 밝혔다. 전체 고혈압 환자의 혈압 조절률은 50~60%, 노인 고혈압은 40% 대에 머문다는 것이 임상현장의 중론이다.

연령이 늘수록 수축기혈압이 상승하는 특성으로 인해 단독 수축기고혈압이 노인 고혈압의 가장 흔한 병태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완기혈압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인데, 예를 들어 180/70mmHg와 같은 양상이다. 이 경우 수축기혈압을 140mmHg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혈압을 조절하다 보면 이완기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돌출될 수 있다. 임상현장의 진료의들이 노인 고혈압의 치료에 애를 먹거나 공격적으로 나서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ACC와 AHA 역시 이 점을 고려해 80세 이상 초고령 고혈압 환자에서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40~145mmHg로 공략하는 것도 타당하다는 권고를 냈다.

“근거 부족” vs “이대론 안 돼”
이 권고는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RCT)와 같은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전문가 견해와 합의에 기반한 것이다. 노인 고혈압의 치료전략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은 임상의들의 소극적 대처에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해 왔다. 고혈압 치료와 관련한 대부분의 임상연구들이 고령층, 특히 80세 이상의 초고령 환자들을 대변하지 못해 왔다. 명확한 근거 없이 사망위험을 무릅쓰고 적극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HYVET (NEJM 2008;358:1887-1898) 연구는 RCT를 통해 노인 고혈압에서 항고혈압제 치료의 혜택을 명확히 입증했다. 80세 이상의 고령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적극 조절했더니 위약군에 비해 뇌졸중을 30%, 심혈관 원인 사망은 23%, 심부전 64%, 사망률은 21%까지 감소시킨 것으로 보고됐다.

가장 최근에는 중증의 노인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OSCAR(AJM 2012;125:981-990) 연구에서 ARB와 CCB의 병용요법이 심혈관질환 병력자의 심혈관사건을 유의하게 예방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ARB 고용량 요법은 당뇨병 환자의 심혈관사건 예방에 우수한 효과를 보였다. ACC와 AHA는 “적극적 치료의 혜택을 명확히 밝힌 이러한 연구들이 노인고혈압의 치료전략에 대한 성명의 배경과 계기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아직 근거가 많지는 않지만, 노인 고혈압을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이다.

고혈압성 질환 사망률
2008년 우리나라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고혈압성 질환이 10위에 올라 있다. 인구 10만명당 고혈압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9.6명에 이른다. 이를 연령별로 자세히 분석해 보면, 노령층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고혈압성 질환 사망은 인구 10만명당 30~39세가 0.2명, 40~49세가 1.2명, 50~59세 3.0명, 60~69세 11.5명, 70~79세 55.4명, 80세 이상은 345.0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증가세를 감안한다면, 노인 고혈압은 심각한 보건이슈에 해당한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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