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산업 보호로 높아진 문턱…서류 준비하다 '포기'

지속적인 정부의 약가인하, 내수시장의 한계로 많은 제약사가 수출로 눈을 돌렸고 실제로 수출 실적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지 상황에 대응하고 성공적인 수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품질 향상은 물론 전문인력 채용, 전략적인 마케팅 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쉽게 진입했던 동남아시아나 개발도상국 의약품 시장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최근 제약사가 느끼는 현지 상황과 의약품 수출에서의 고충,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베트남 입찰자격서 우리나라 하위권

최근 신설된 베트남의 병원 입찰 규정은 베트남 시장을 공략하려는 제약사들에게 고민을 안겨줬다.

베트남 정부가 입찰을 주도해 가격을 결정하는데,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계 기업을 견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입찰에서 제약사를 세 가지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첫 번째 그룹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허가된 의약품이 우선된다.

또 PIC/S(의약품상호실사협력기구)와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가입국이 우대된다.

두 번째 그룹은 베트남 제약사들이고 한국을 포함한 인도, 중국 등 그 밖의 국가는 순위가 끝으로 밀려난다.

또한 동일군의 인도, 중국산 저가 의약품과 경쟁해야 하며, 단계별 의약품 입찰에 대한 숫자도 제한돼 있어 시장 진입에 한계가 명확하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PIC/S 가입이 결정되면서 입찰 부분에서 변화가 기대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베트남은 5년마다 품목별로 의약품에 대한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예전에도 품목 갱신은 있었지만 최근 베트남 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해외 의약품에 대한 비자 절차를 강화시킨 것.

이에 기업들은 새로운 요건에 맞춰 베트남 측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며, 이러한 서류들은 ASEAN 기준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일부 제약사는 베트남 수출을 포기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비자 갱신을 못받는 비율이 20~30% 수준이라고 귀뜸했다.

에이전시를 통해 수출하는 중소제약사와 달리 현지 공장과 지사를 갖고 있는 상위제약사는 수출에 유리한 점이 많지만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가 동반돼야 하는데, 동남아시아는 시장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다 보니 리스크가 동반되는 것도 고려할 사항이다.

 

 

자국산업보호 '철통'

 

 

인도네시아는 자국 산업 보호가 특히 강해 현지에서 생산되는 외국제품은 등록을 못하게 하거나, 하더라도 인도네시아에서 5년 이내에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립을 약속해야 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다.

이에 대웅제약은 2012년 인도네시아 제약사인 인피온과 합자회사인 'PT.Daewoong-Infion'을 설립하기도 했다.

대웅제약 측은 "역으로 현지에서 합자사를 통해 제조하면 다른 수입제품이 진입할 수 없기에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등록기간이 약 2년 이상으로 거의 EU 수준의 서류를 요구하며 서류 작업도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아세안 국가들은 CTD(국제공통기술문서)가 아닌  ACTD(아세안공통기술문서)에 따른 자료를 받고 있어 준비에 소요시간 및 비용이 가중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을 진행하거나 준비하는 제약사는 사실 GMP 기준은 만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수출국의 등록서류 기준은 높아지는 추세이며, 예전에 허가받은 품목들은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자료를 보유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서류 준비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란·이라크 등도 폐쇄적

이 밖에 이란도 자국 생산 의약품과 동일 품목은 수입을 금지하며, 이라크는 동일 품목에 대한 등록 업체 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중국은 등록 시 까다로운 절차와 긴 등록시간, 등록 절차의 잦은 변경, 높은 자료수준 요구, 비싼 임상비용 등이 수출장벽으로 꼽혔으며, 일본 역시 까다로운 허가 규정과 잦은 클레임, 중간 유통업체로 벤더를 거쳐야 하는 등 폐쇄적인 거래 형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제약사들이 해외진출의 난관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각 국가별로 다른 허가절차에 대한 어려움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허가를 위해서는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가 필요해 모든 품목을 다 수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동남아시아도 과거 간단한 서류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자료를  요구해 최소한의 등록기간(2년)과 수준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별 데이터 찾기 힘들어

이에 정부나 제약협회가 국가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제약사에 제공하면 수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나라별로 필요한 데이터가 제공되면 현지 상황에 맞는 수출 전략을 짜는 것도 용이하고, 시장에 대한 예측도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요구에 제약협회 이재국 상무는 "협회 차원에서 현지 사례들을 취합하기에는 인력문제 등의 한계가 있다"며 "한국제약산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딩 기업들이 현지에서 겪은 사례와 노하우 등을 공동자산으로 생각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생해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는 데 부담은 있을 수 있으나,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업이 이뤄지는 통큰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보건산업진흥원 등 기관도 외국에 파견된 조직이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국가들의 정보를 파악해 제공한다면 신뢰도 또한 높고 수출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해외인력 영입 적극 고려를"

전문인력 확보와 의약품 품질 향상 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나 관련기관의 지원보다는 제약사가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임상약학회지의 '의약품 해외 수출을 위한 한국 제약산업의 해결과제' 연구에서 윤수진(성균관대 임상약학대학원) 등 연구팀은 "지금까지 글로벌 진출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 제약사가 관련 전문인력이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경험 있는 인력을 영입하고자 한다면 적극적으로 해외 리쿠르트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인력을 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면 인도와 같은 국가에서 인력을 적극 영입하고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또 해외진출을 하기 위해 국제적인 컨설팅 업체와 연계하는 것도 하나의 대책이며, 역량있는 인력들이 수직적 구조의 의사 전달체계가 아닌 쌍방향 의사 전달체계 속에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임상시험 질적 성장도 '숙제'

한국의 임상시험이 양적, 규모적 성장은 했지만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질적 성장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4년간 국내 제약사의 임상시험은 2010년 140건, 2011년 209건, 2012년 208건, 2013년 227건으로 양적인 증가를 이뤘지만 선진시장 진출 시 임상시험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아울러 선진 시장을 주도하는 다국적 제약사의 경우 프로토콜을 개발할 때 연구 감독자, 생물 통계학자, 약제학자, 안전성 감독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팀을 구성해 개발에 참여하고 4~12주에 걸쳐 자체 검토와 심사를 통해 프로토콜을 완성하는 반면, 국내사는 충분한 준비과정 없이 불과 1~3인의 임상전문가가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식약처도 임상관련 규제는 선진국과 비슷해 선진시장 진출에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세부지침과 SOP(표준절차문서)가 없어 제약사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심사기준을 파악해 관련 자료를 준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수출에 대한 장기적 안목과 체계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수출에 경쟁력을 확보할 만한 규모의 경제적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규제기관은 정책만 선진화 할 것이 아니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SOP를 마련하고 일괄적인 정책운영으로 국내 제약기업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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