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등 산학연병원 연합체 형성

최근 병원들이 ‘메디컬 클러스터’를 새로운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병원 혼자만이 아니라 인근 기관, 기업들과 함께 연합해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을 이끌고, 국가 성장동력까지 견인할 것으로 기대했다. 
클러스터의 정확한 개념과 이를 적극적으로 내세운 병원들의 전략을 살펴봤다.

고려대병원 ‘강북클러스터’로 연합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 적극적인 움직임을 선언한 곳은 고려대안암병원이다.

고려대안암병원은 26일 고려의대 유광사홀에서 ‘강북 바이오 메디컬 클러스터 세미나’를 개최하고, 향후 강북 연합 기관들과 어떻게 이뤄나갈지 고민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고려대병원은 강북 바이오 메디컬 클러스터를 발족, 11개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연구산업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로 했다.

클러스터라는 개념은 미국 실리콘밸리, 이탈리아 북부 섬유단지처럼, 일정 지역에 산업과 상호 연관관계가 있는 기업, 기관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산업집적 지역을 말한다. 

강북 일대에는 5000명의 박사급 인재가 일하고 있다. 병원은 고려대의료원, 원자력병원 등을 비롯해 대학은 고려대, 광운대, 국민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삼육대, 서경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한성대 등이 밀집해 있다. 연구소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기업은 아이센스, 바이오다이나모 등 총 11개 기관이 강북 바이오 메디컬 클러스터를 위해 연합했다. 

고려대병원 김영훈 원장은 "무한 경쟁 시대에서 지식기반의 신시장 개척,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향한 각 기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며 "강북 4개구, 주요 대학, 병원, 연구기관이 모인 강북에서 메디컬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체계적, 조직적인 연구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과학기술대 황주성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단 모여야 한다. 그러나 모여있다고 해서 다 클러스터는 아니다"라며 "예를 들면 IT 개발자들은 밤샘을 많이 하는 만큼 김밥, 자장면 등 야식이 연관산업이 된다. 또한 컴퓨터를 쓰다 보면 세부적인 부품을 골라서 쓰게 된다. 기업이 연합하면 부품 구매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개발에서도 전문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기업의 밸류체인 상에 전후방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갖게 되면 방향성이나 시장 확보에 이득을 가질 수 있다. 비공식 네트워크와 신뢰가 쌓이면 서로 정보와 아이디어를 주고 받고 새로운 학습을 할 수 있다. 자동적으로 신규 비즈니스나 새로운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바로 이렇게 성장했다.  
 

10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연구 지원사업으로 변경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은 멈춰선 상태다. 10년 전 1300억원이 할당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연구중심병원 일부 지원으로 흡수됐다.

고려대병원 흉부외과 선경 교수(KU-KIST 융합대학원)는 “10년 전인 2004년 강남북 균형발전 차원으로 의료분야 정책 제안이 요청됐다. 당시 기획재정부에서는 무려 1300억원 예산을 확보했고, 보건복지부 차원으로 첨단의료클러스터 협의회가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2005년은 보건의료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로 하고 패러다임이 전환된 시점이었다. 보건의료산업의 동북아 허브가 되자는 비전을 토대로 산학연병원 밀집지역을 선정, 최소 투자에 최대 효과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예산이 흘러 흘러 당초 취지와는 무색하게 선도형 연구중심사업이 공고됐다. 강남북 균형발전 차원이 아닌, 전국의 6개 병원의 우수한 기관이 하는 연구사업으로 변경됐다. 일찌감치 산업화를 내다보는 획기적인 제안이었지만, 너무 빨랐던 것이다.

선 교수는 “오송, 원주, 대덕특구 등 클러스터와 전략적 제휴를 하자고 했다. 그 다음 네트워킹 코어를 구축하자고 했다. 특히 강남에 비해 강북 도봉, 노원, 강북,성북 등의 건강수준이 낮은 것을 중점으로 삼았다”라며 “바이오 메디칼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최적지가 어딘지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클러스터의 관건”이라고 피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박인석 국장은 “당시에는 산업화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가 부족했다. 그러나 앞으로 병원이 연구중심병원을 중심으로 산업화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라며 “복지부도 기초연구에 자금을 많이 투자했지만, 정작 산업화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을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산업화를 위한 연구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병원, 연구 지원 아닌 산업화 발판 마련해야

병원 입장에서는 단순히 연구가 아닌,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산업화를 고민해야 한다.

고려대 박정호 미래전략실장은 “홍릉클러스터와의 전략적 제안을 했다. 현재 홍릉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연구기관을 어떻게 지식형 클러스터로 만들 것인지 관건이다. 홍릉 단지는 KIST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과 경제를 선도하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KIST를 비롯해 고려대에서도 의대, 생명과학대, 공대 등 바이오메디컬 관련 과가 참여하고 의생명 분야 연구에 매진하기로 했다. 연구기능을 강화하되, 고려대의료원과 경희의료원이 임상을 맡기로 했다. 우선 치매, 노인성 질환을 중심으로 대도시의 고령화 질환을 연구하기로 했다.

KIST 석현광 단장은 “클러스터를 놓고 기관마다 지향점은 같지만 세부적인 역할은 다르다.  국가적인 입장에서 바이오 메디컬 클러스터를 바라볼 때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며 "지식이 밀집된 병원 역시 환자를 살리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책임을 지고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제언했다. 

동북 4구 바이오헬스 클러스터협회 은재형 협회장은 “실제 이 지역에서 산업이 일어나야 한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산업화가 되지 않으면 성과가 없는 것”이라며 “산업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스타기업을 육성하다 보면 정부의 지원도 이어진다”고 부연했다.

서울과학기술대 황주성 교수는 “산학연병원이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의 핵심은 의료인과 의료기기 개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자꾸 모이고 만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새로운 제품이 개발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등 일부 지역도 클러스터 조성 움직임 

다른 병원들 역시 클러스터에 욕심을 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분당서울대병원으로, 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경남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분당 정자동 본사사옥 부지를 메디바이오 클러스터로 조성할 방침을 세운 것이다.

지난달 성남시는 분당서울대병원이 LH 정자사옥 부지를 매입할 시 해당 부지를 병원과 서울대 의대·자연과학대·공대, 판교테크노밸리 등이 연계된 생명과학연구를 중심으로 '병원 중심 메디바이오 클러스터'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정가격은 2784억원이다. 서울대병원은 이사회에 LH 정자사옥 매입 후 활용방안을 보고하고 LH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중심의 메디바이오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연구개발과 산업육성은 물론 임상연구, 환자 치료까지를 모두 한 지역에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성남시는 "성남 지역은 분당서울대병원, 차병원 등 종합병원과 280여개 달하는 제약·바이오기업과 연구소가 판교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차병원그룹은 분당과 판교에 각종 센터를 설립하면서 '줄기세포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차병원이 설립하는 기관은 △줄기세포 통합연구센터 △국제 줄기세포 치료 전문 병원 △암 줄기세포 치료 및 임상연구시설 △차움 미래의학 전문 시설 △줄기세포 치료를 위한 노인의료복지시설 등이다.

차병원 관계자는 “바이오 줄기세포 산업은 향후 미래의 먹거리로 국가간 도시간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성남시와 함께 협력해 전 세계인들이 찾는 세계적인 줄기세포 클러스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서울아산병원의 글로벌 메디컬 클러스터, 강동성심병원의 강동 클러스터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병원은 “이제 병원은 성장 한계에 다다른 만큼, 패러다임이 전환된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라며 “병원 혼자 막대한 자금력을 투입할 수 없더라도, 여러 기관, 기업들과 연합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투자를 효율화하고, 국가 사업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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