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테러(세균전사건)와 관련해서 언급할 것이 있다. 기룡숙 교수가 혼성 설사 사건으로 난처
한 입장이 되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6·25사변이 끝날 무렵, 휴전협정이 한창이던 그 시기 북한측
은 유엔 신탁통치위원회에 검은 표지의 호소문을 제출했다. 표지가 검다고 해서 `블랙 북`으

세계 언론이 크게 보도했다.
 
보도된 내용은 유엔군 측이 전쟁 막바지의 어느 날 새벽에 평안남도 강서지방에 흰 가루를 공
중살포 했는데 그 며칠 후 이 지방 농민인 박윤호라는 사람이 페스트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었
다.
 
일반인들은 무심코 넘길지 몰라도 전염병을 전공한 나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언
젠가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혀낼 것이라고 결심하고 있었다.
 
마침 1955년 늦가을에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와의 전후원
조사업의 일환으로 교환교수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1차 도미그룹에 나도 포함됐
다.
 
나는 그 대학에 도착하자마자 신분증을 얻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의학도서관이었고 블랙
북을 찾았다.
 
도서관 직원은 곧바로 말로만 듣던 표지가 검은 두툼한 책 한권을 찾아다 주었다. `아! 이것

바로 그것이구나…` 괜히 흥분이 되면서 가슴이 뛰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뚜껑을 열었다. 그

데 이게 왠 일인가. 당초 생각했던 호소문이나 신고서, 보고서와 자못 다른 형태의 문서가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일반 중증 급성 전염병을 나열하고 그 원인, 증세, 치
료, 예후 등 일반 전염병 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얼마를 읽었을까. 책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페스트(黑死病)로 죽었다는 박윤호라는 한국사람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죽은 그의 흉복부, 뇌
수(腦髓) 등의 부검소견이 외형 사진과 현미경 사진, 그리고 세균배양소견까지 곁들여 소개돼
있었다. 또 사망하기 며칠 전 공중살포 된 가루 같은 것이 몸에 많이 묻어있다는 설명도 첨부
돼 있었다. 나는 처음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페스트임을 알 수 있었으나 이 한사람 이외에 다른
기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페스트는 우리 인근국가에서 가끔 발생한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국
토 안에서 발생한 것은 이것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페스트는 쥐에 감염되면 토착화, 근절하
기 어렵지만 아직 이북지방에서 페스트가 토착화된 것 같지는 않고 그 후 발병한 사실이 없어
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후 1969∼70년의 설사성 장내세균의 혼합감염을 일으킨 사건이나 이 페스트 사
건, 그리고 최근에 원인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당시 원인이 애매하던 유행성출혈열을 함께 연
계해보면 `한국전에도 생물전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특히 평화시기에 일어난 혼합설사사건은 일종의 생물 테러(Bioterrorism)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혼합설사사건으로 입장이 난처하게 됐던 기룡숙 교수에게는 훌륭한 세 명의 제자가 있
다.
 
물론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들 세사람은 이호왕, 장우현, 그리고 이종훈 교수이다. 기교수
는 이들에게 각자에게 다른 일을 맡겨 자력으로 해결하도록 했으며 직접 간섭하는 일은 없었
다.
 
이호왕 교수(1954년 서울의대졸업, 현 학술원회장)는 하계 뇌염바이러스의 백신개량과 유행
성출혈열의 병원체규명 임무를 맡아 1976년 한탄바이러스, 1980년 서울바이러스를 발견,
유행성출혈열의 원인균을 규명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업적을 올렸다.
 
이 출혈열은 결국 등줄쥐나 집쥐의 배설물을 통해 공기로 전염, 급속히 퍼질 수 있으며 사람
이외에 돼지, 실험용 흰쥐, 말(軍馬)에도 잘 감염된다는 사실을 이교수가 규명한 사실들이다.
또 예방주사의 개발과 실용화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병은 1951년경부터 최전방 한국군인에서 발병하기 시작, 점차 남쪽으로 환자발생지역이
확대되고 후방에 있던 미군부대에서도 환자가 빈발해 일종의 한국 재래병(풍토병)이 아닌가
의심을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전 구 소련과 만주의 국경지대의 토착병 처럼
돼 있던 것이 확인됐다.
 
일본 세균전부대인 731부대(이시히 부대)에서 시행한 연구 중 유행성출혈열이 주요업적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이 병에 대해 한 일본인학자는 `세균전 무기로는 안성맞춤`이라고 할 정도

다. 또 어떤 책에서 일본세균전 이시히부대가 러시아 만주국경지역에서 잡은 쥐가 한 트럭 분
이나 되며 이것을 중국의 어느 지역에 뿌렸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호왕 교수는 지난 50여년 간 뇌염과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
다.
 
장우현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이호왕 교수보다 2년 후배로 1956년 서울의대를 졸업 후 모
교 미생물학교실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쯔쯔가무시라는 우리에게는 경험이 적었던 괴질에 대
한 연구에 열중하시어 1993년 표면항원중 혈청형을 결정짓는 56KD-protein 유전자를 크로
닝하고 이를 이용, 수동적 혈구응집법을 개발해 우리나라 혈청형인 보령형, 연천형을 찾아
Gilliam, Karp를 합쳐 4가지형이 있음을 규명해냈다. 또 56KD-protein으로 Prove를 제작,
PCR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활동으로 약 40여편의 연구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 여러 관련학회에
서 회장으로 활약하시어 성곡학술상, 분쉬의학상과 함께 황조근정훈장도 받은 학자다.
 
그리고 오랫동안 서울대암연구소 소장을 겸임하다가 정년 후 한림의대교수로 자리를 옮겨 학
장(1995∼2001년) 등 학구와 후배육성에 몰두했다.
 
절약과 겸양의 자세로 기교수의 큰 사랑을 받은 이종훈 교수는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수로 재
직하면서 초기에는 바이러스학, 후기에 장기이식분야의 초석이 되는 연구를 많이 했다. 조직
형별 연구소를 세워 조직적합성항원분석이나 형별 항체개발에 진력했다.
 
국내 최초로 가톨릭의대 외과 이용각 교수가 신장이식을 성공적으로 시술(1969년)한 것도 이
종훈 교수의 조직형별 연구소의 존재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구차 오사카대학 예방의학교실에서 연구생활을 하면서 쓴 뇌염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로 박
사학위를 받았다. 27년간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다가 1982년 간암으로 별세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그의 학구열과 인간성을 따르던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수많은 공저논문을 내는 등 업적이 있으나 단독연구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태반혈청
내 항HLA형별 항체의 검색 △사람A형 적혈구항원의 역가적 차이 △조직적합성이식의 연구
등으로서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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