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동아줄, 속 빈 강정, 빈수레, 기초체력 약화" 우려

 

과거부터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코프로모션은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최근 약가인하와 내수시장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국내 제약업계 환경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코프로모션은 상류(Upstream) 제약사의 상품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계약을 맺은 양사가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집중적인 영업이 필요한 국내 제약산업의 특성상 다국적 제약사들은 매출 확대와 시장 방어를 위해 대규모 영업인력을 모색했고, 영업인력은 있지만 오리지널 품목이 부족했던 국내 제약사와는 손발이 잘 맞아 코프로모션은 더욱 확대됐다.

코프로모션으로 내수 부진 타계 노력

실제로 약가인하 타격을 받았던 2012년 제약시장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국내 상위사들은 코프로모션과 수출영역 확대 등으로 5.8%의 매출 증가를 보인 바 있다.

특히 유한양행은 비리어드, 트윈스타, 트라젠타 등 대형 코프로모션 품목으로 지난해 약 200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대웅제약도 바이토린, 자누비아, 올메텍 등 대형 품목으로 높은 실적을 올렸다.

또한 2월 체결한 한미약품과 MSD의 쌍방형 코프로모션 계약은 그동안 다국적사 품목을 국내사가 판매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보다 상호 협력적인 윈윈(win-win) 사례로 평가된다.

한미약품은 MSD의 안드리올, 프로페시아, 프로스카 등 9개 품목을, MSD는 한미약품의 히알루미니, 팔팔, 탐수로이신 3개 품목을 코프로모션 한다.

국내자급률 감소…"판매상으로 전락할 수도"

그럼에도 코프로모션에 대한 부작용과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국내 제약산업이 다국적사에 의존도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제약산업 자급률을 저하시키고, 다국적사의 판매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완제의약품의 국내 자급도는 2008년 84.4%에서 2009년 82.0%, 2010년 82.1%, 2011년 80.2%, 2012년 78.8%로 감소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산업의 덩치는 커지는데 기초체력은 약한 약골이 될 수도 있다"며 "다국적사와 국내사가 갑과 을이 되다 보니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할 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제약산업의 슬픈 자화상이다"라고 표현했다.

다국적 제약사의 문을 국내 제약사가 줄을 서서 두드리다보니 수수료 등 계약 조건은 점차 불리해지고, 무리한 매출 달성 요구나 계약 조건에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코프로모션으로 매출은 키웠지만 갑작스럽게 계약이 종료되거나, 여러 사유로 품목을 팔 수 없게 되면 충격을 감당하기 힘든 까닭이다.

또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시장에 진입해 생산활동은 하지 않고 국내 제약사의 영업망만 활용하는 추세로 가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른 관계자는 "계약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점차 수수료 경쟁에 제 살 깎아먹기가 될까 걱정이다. 다국적사를 통해 윤리경영이나 마케팅기법 등 선진기업 문화를 배울 수 있겠지만 어두운 면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화투자증권 정보라 애널리스트도 "코프로모션 확대 이면에는 여러 부작용도 있다"며 "코프로모션으로 인한 일시적 외형 성장보다는 장기적으로 해외시장 수출을 확대해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공정위, 공정거래 가이드라인 제정…다국적사 '발끈'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공동마케팅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도 공정거래법상 위반사항이 없는지 예의주시했다.

시장경제연구원은 2007년 말 공정위 의뢰로 수행한 '의약품 시장 공동마케팅에 대한 경쟁법적 분석 및 시사점 도출(책임연구원 정인석 한국외국어대학 교수)'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는 의약품 공동마케팅이 △판매 목표 강제화 △불공정 행위 조장 △제약사 간 담합 △배타적 지역·거래 등에서 공정거래법상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판매목표 강제행위는 상류 제약사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 이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법 제23조 제1항 4호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상류 제약사가 시장지배적지위에 있다면 법 제3조의2 제1항 4호의 '경쟁사업자의 참가에 대한 부당한 방해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꼽았다.

또 고객유인행위는 법 제23조 제1항 3호의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판매 목표량 요구 자체가 문제 된다기보다 상품 판매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포함한 여러 불공정 행위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며 "불법적 행위의 주체는 판매하는 쪽이 되겠지만 이런 행위를 다국적 제약사가 방치 또는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보고서는 '의약품 공동마케팅'과 관련된 법률위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의약품 공동마케팅 가이드라인' 작성을 건의했으며,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1월 '의약품 공급 및 판매 표준계약서'를 제정했다.

표준계약서는 의약품 판매계약의 모범적인 계약조항을 공정위가 규정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특허라이선스, 코마케팅, 코프로모션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주요 내용은 △공급자 동의 없이 협력사가 자동적으로 재판매권을 갖도록 함 △계약 존속기간 이후 아무런 제한 없이 협력사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함 △개량기술에 대해 거래형태나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을에게 권리를 부여함 등이다.

이처럼 계약상의 갑에게 불리한 조항이 포함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국적 제약사의 반발을 샀고,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즉각 성명서를 통해 철회를 요구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하지만 일단 표준계약서가 제정됨에 따라 공정위의 감독과 규제 대상인 경쟁제한행위 등에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특히 협력사가 자동적으로 재판매권을 갖거나, 마음대로 계약  품목을 임상, 개발해 상용화된 제품을 출시토록 하는 것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와 국내 회사의 협력 가능성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내 사업자와 외국 사업자 간 계약에 있어 동일한 잣대를 마련해야 하는데, 외국 사업자에게만 차별적인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국제 통상과 관련된 WTO협정, GATS협정, TRIPs협정 등에 위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표준계약서 실용화는 아직…갑을관계 여전

한편 지난 1년 동안 표준계약서는 철회되거나 내용이 변경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계약관계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표준계약서에 나온 지침대로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하나의 선을 제시한 만큼, 계약 관계에서 유념할 대상인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제조업감시과 강신민 과장은 "이 정도의 선을 넘으면 레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자각을 주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며 "기업자 입장에서는 규제로 인식할 수도 있으나 스스로 지켜야 할 상한선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 관계에서 목표량을 설정하는 것도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한 것이면 허용될 것이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거래를 끊는다든지 강제성이 있다면 그때 가서 위법성 심사 여부가 도마 위에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표준계약서 사용 현황과 제약사 간 코프로모션 계약관계 등에는 공정위도 특별하게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법인 세종 이덕구 변호사는 "표준계약서 발표 당시 다국적 제약사에서 현행 규정상 표준계약서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경우 어떻게 적용되는지 등에 대해 몇 건의 문의가 있었다"며 "이후 실제로 수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확대되는 코프로모션에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 간의 불합리한 갑을 관계 형성이 업계에는 번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계약 관계는 갈채를 받아야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말처럼 계약에서 부당한 요구가 있다면 자정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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