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위원회 편욱범 위원

 

지난해 말 JNC 8(Joint National Committee 8th) 가이드라인이 10년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그간 유럽 가이드라인은 이미 2회에 걸쳐 개정됐고, 캐나다, 일본에서도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그러나 10년만의 변화에 대해 편욱범 교수(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위원회 위원·이대목동병원 순환기내과)는 “한마디로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보수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임상적 근거가 확실한 사항만 포함했다는 의미”라는 것이 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2004년 발표된 JNC 7 가이드라인은 파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권고사항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과거에는 메타분석, 관찰연구와 같은 간접적 자료도 포함했다면, 이번에는 무작위·대조군 연구(RCT)와 같이 근거가 확실한 사항만 남기고 애매한 사항에 대해서는 환자 개개인의 성향과 임상의의 재량에 맡겼다”고 말했다.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도 맞춤치료 전략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 그만큼 임상의의 판단이 중요해졌다.

타깃혈압 오히려 상향조정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고혈압 진단 영역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가정혈압(home BP)이나 활동혈압(ambulatory BP)이 강조되는 추세지만 임상에서는 아직까지 진료실 혈압(clinic BP)이 골드스탠다드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추가 자료가 필요한 실정이다. 치료목표는 60세 이상 고령 환자에서 150/90mmHg로 오히려 상향조정 됐다. 무리하게 약을 써서 타깃혈압 140/90mmHg까지 낮춰도 그로 인한 혜택이 없다는 결론에서다. 마찬가지 이유로 당뇨병 또는 만성 신장질환(CKD)이 있는 환자의 타깃혈압은 140/90mmHg으로 바뀌었다.

치료제 선택에 있어서는 그 폭이 넓어졌다. JNC 7에서 이뇨제를 1차 약제로 권고한 데 비해 JNC 8에서는 베타차단제를 제외한 나머지 4가지 약제(티아지드계 이뇨제, ACEI, ARB, CCB)를 1차 약제로 허용했다. 다만 베타차단제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 유럽,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이드라인에서 베타차단제를 1차 약제에 포함시킨 반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빠졌다. 복합제의 경우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CCB + BB 복합제가 유럽 가이드라인에서 제외됐고, ACEI + ARB 복합제는 유럽, 한국, 미국 가이드라인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국내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대한 영향
그러나 이번 개정 가이드라인 발표가 국내 고혈압 가이드라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편 교수는 “미국에서는 ‘RCT가 없어서 베타차단제를 뺐다’고 주장하지만 ‘RCT가 없더라도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것이 유럽 측의 주장”이라면서 “미국 가이드라인에서도 베타차단제가 1차 약제에서만 빠졌을 뿐 여전히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제약시장 판도나 처방 패턴 등 임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당뇨병 또는 만성 신장질환 동반 환자에서 기존 타깃혈압(130/80mmHg)을 맞추기 위해 약제를 많이 사용해 왔는데 그런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고, 병용약제 개수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생활개선요법에 무게가 실리면서 초기 단계에 약물요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흐름이 최근 모든 가이드라인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4월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동양인 데이터이기 때문에 국내 환자에 대한 적용이 유용할 수는 있으나, 기존 대한고혈압학회(KSH) 가이드라인에 반하는 내용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차 약제에서도 베타차단제가 포함될 것으로 평가돼 국내 가이드라인 개정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평가했다.

편욱범 교수는 “JNC 8 개정판이 오랜 기다림에 비해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보수적이라는 말은 적어도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사항만큼은 확실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면서 “KSH 가이드라인 머리말에서도 명시하고 있듯이,‘각 진료의사가 환자 개개인에 대해 행하는 판단이 우선한다’는 원칙은 모든 가이드라인에서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그는 “결국 외국 가이드라인 발표에 대한 학계의 숙제는 한국인 데이터를 토대로 국내 환자에게 맞는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는 것”이라면서 “충분한 데이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기존에 출시된 여러 가이드라인 중 가장 근거가 있고 국내 환자에게 받아들일 만한 것을 형편에 맞게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고혈압 학계의 미해결 과제
JNC 8 개정판에서는 베타차단제 외에는 이렇다 할 이슈가 강조되지 못했다. 이후 발표될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어떠한 내용을 기대할 수 있을까?

편 교수는 고혈압 학계의 미해결 과제 중 첫 번째로 ‘염분’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염분섭취가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일부에서는 염분섭취를 줄이기 위해 보건당국에서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혈압, 운동, 비만조절, 금연 등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면서 특별히 국내 환자들의 경우 염분섭취량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는 가정혈압과 활동혈압의 임상적 활용을 꼽았다. 그는 “진료실 혈압과 비교해 진단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고 치료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학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찬반논쟁이 있었던 사항이다.

혈압변동성, 야간혈압, 신장신경차단술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이슈다. 편 교수는 “지난 1월 SYMPLICITY HTN-3 연구에서 신장신경차단술의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아직 진행중인 연구로 실패라고 단정짓기는 이르다”면서 “약물요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혈압에 대한 시술적 치료는 차후 가이드라인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신장신경차단술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적응증을 잘못 설정했거나 연구 프로토콜 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사항은 ‘J-curve 논란’이다. 편 교수는 “아직까지 데이터가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라 가이드라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J-curve는 타깃혈압 설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인”이라면서 “최근 학회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추가적인 데이터가 나오면 학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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