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상 공급 과잉 고민해야 할 시기 온다... 암병원별 특색화 필요

 
14일 연세암센터가 외래항암약물치료센터 100병상을 포함한 총 476병상으로 개원하면서 또 다시 빅5병원을 포함한 수도권 대형병원들의 양적팽창이 도마 위에 올랐다.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해마다 암병원들을 신축하면서 병상수를 늘려 지방과 중소병원들의 빈축과 원망을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 병원들은 주변의 원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암병상을 증가시키는데 혈안이 돼 있다.

올해도 연세암센터를 선두로 고대의료원 암병원이 300병상 규모의 암병원 오픈을 계획하고 있고, 서울아산병원도 770병상 증설을 예정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552병상과 서울대암병원 202병상 등을 포함하면 수도권 내 암병상은 3000병상을 크게 웃돈다.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이 암병원에 애정을 쏟는 이유는 다른 센터에 비해 경영에 도움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누적 암 등록 인원은 128만5190명이고, 2012년 새로 등록한 암환자는 24만8555명이다. 해마다 20만명에서 25만명의 신규암환자가 등록된다는 통계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빅5 병원 등 수도권 대형병원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암병원이 지방과 중소병원 등에는 치명적인 악영향과 의료계 생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순천향의대 한 교수는 "빅5 병원들이 마치 블랙홀처럼 서울과 수도권 환자들을 빨아들이면서 의료계 생태를 망가트리고 있다. 몇 년 후 같이 공멸할 수 있다"며 "KTX가 개통되면서 대전은 물론 대구 등의 지방 환자들까지 모두 서울로 쏠리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지방병원들의 상황은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암병원이 빅5와 수도권에 있는 병원에 집중되지 않도록 정부도 몇 년 전부터 지역암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에 암센터가 증가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다시 암센터 증가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10년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언젠가는 암병상 공급 과잉 걱정해야

암병원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증축되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근본적인 의료체계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가장 크다. 또 지방환자들이 진료에서 소외를 받을 수 있고 진료 이외의 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
 
이외에도교수들이 연구보다는 상업적인 영역에 더 집중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거나, 내실보다는 환자를 끌어오기 위한 시설이나 장비 등에 투자하게 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암 전문가들은 병원들이 당장의 수익을 위해 암병원을 증축하거나 신축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일 수 있지만 멀리 보면 틀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의대 유근영 교수(아태암예방기구 사무총장)는 암환자 발생은 당분간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확실해 암병원을 계속 만드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괜찮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유 교수는 "1년에 25만명 정도의 암 환자가 발생하니까 병원 경영을 고려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국립암센터가 계산한 암환자 발생 추이 통계를 보면 암환자 계속 증가하지는 않는다. 몇 년이 될지 정확하게 예언할 수 없지만분명 얼마 후에는 암병상의 과잉공급문제가 발생하고, 그 병상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질보다는 암병원 겉모습에 충실해야
 
암병원이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은 본질보다 겉모습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암센터가 국내 암 연구나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병원의 상업적인 발전을 위해 건립되기 때문이다. 암연구나 환자 진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굳이 엄청난 규모와 장비, 시설 등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우리나라는 화려한 겉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오픈하는 연세암센터도 환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엄청난 시설과 장비를 자랑하고 있다. 지하6층, 지상 15층의 연면적 105,201㎡(약 3만2000평)규모로 15대 암환자를 팀별로 진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수술로봇, IOERT(Intra-Operative Electron Beam Radiation Therapy), 양성자치료기, 토모테라피, 사이버나이프, MRgFUS(자기공명 영상유도 고집적 초음파), PET-MRI, PET-CT, 감마카메라, 사이클로트론 등의 장비를 갖췄다.

미국의 유명한 암병원인 MD앤더슨, 존스홉킨스,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 메이요 클리닉, 듀크대학 암병원, 벤더빌트 암병원 등은 우리나라 암센터 등과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차의대 한 교수는 "미국의 유명한 암병원들이 규모가 대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 병원들은 우리나라처럼 최첨단 의료기기를 갖추거나 병상수가 많지 않다"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이들 병원들이 자랑하는 것은 다른 병원보다 뛰어난 연구성과나 치료성적 등이다. 병원 복도에 치료건수와 의료진 소개, 매스컴에 알려진 것 등을 자랑한다"고 소개했다.

병원들이 뛰어난 시설과 장비, 인테리어 등을 갖추고 암센터가 지어지면 교수들은 좋은 환경에서 환자 진료와 연구에 몰두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의 모 대학교수는 "초창기에 암병원이가 지어질 때 교수들은 암연구를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며 "경영진이 암병원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갔는지 강조하고 그래서 교수들이 이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암병원은 교수를 위한 것도 환자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토로한다.

또 다른 교수는 "암병원이 지어지고 나면 교수들의 진료 부담이 엄청나다. 암연구를 더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 진료를 더 많이 해야 한다"며 "진료의 질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설 중복투자도 문제

암센터들이 시설과 규모로 경쟁을 하면서 부작용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수도권에 한두대만 있어도 될 고가의 장비들이 모든 병원이 구입하는 것은 물론 지방의 병원들도 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장비들을 구입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PET-CT는 물론 감마나이프 등까지 도입하면서 지방에서도 암치료를 할 수 있다며 환자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중복투자인 셈이다.

게다가 빅5 병원의 암센터는 마치 쌍둥이들처럼 비슷하다. 최첨단 시설, 원스톱 서비스, 환자중심 등이 주로 암센터들이 내세우는 모토들이다. 특정 암에 강하기보다는 모든 암을 두루두루 잘하기 때문에 특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흑자의 보증수표라고 여겨졌던 암병원도 적자를 내기도 했다. 2011년 개원한 서울대암병원은 지난해 적자를 기록해 내부적으로 시끄럽기도 했다. 병원의 모 교수는 "암병원을 신축하면 환자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그렇지 못했다"며 "환자가 증가할 것을 대비해 직원은 많이 뽑고 환자는 그 만큼 증가하지 않았으니 적자는 뻔한 결과"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도권 대부분의 암병원들이 500병상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 병원은 202병상이다. 병상수가 너무 적어 적자가 날 수 있는 구조"라며 "다른 병원이 암병원을 짓는다고 따라서 암병원을 짓는 등 양적으로만 팽창시킨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암병원에도 전달체계 필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수도권의 암병원들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의료전달체계가 있듯 암병원도 1·2·3차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의대 한 교수는 "암병원도 세분화가 필요하다. 3차기관의 암병원은 지금처럼 치료건수만 올리려 하지 말고 암의 발생원인, 암화과정, 새로운 항암약물이나 생물학적제제에 대한 연구를 하거나 2차 암병원에서 불가능한 수술이나 암치료성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2차 암병원은 많은 치료 경험을 근거로 해 암치료 성공률을 높이고, 수익의 일부를 연구비로 3차 병원에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모든 암병원이 특색 없이 만들어지는 것을 중단하고 자기 병원만의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세의대 천재희 교수는 "지금은 모든 암병원이 모든 암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표명한다. 하지만 각 암병원만다 특성화된 강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병원과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가천의대암센터는 임상연구중심, 세브란스암센터는 암신약 중심, 한양대병원암센터는 비뇨기과암 등으로 서로의 강점을 키워가야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교수들의 소속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대부분의 의사가 해당 진료과와 암센터에 이중으로 소속돼 있어 진료와 연구를 모두 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암연구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암센터, 제 역할 하고 있지 못해

정부도 빅5와 수도권에 암병원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국가 차원에서 암을 관리하고 지역 암환자의 접근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지역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3개소씩 지역암센터를 지정했고, 2011년 기능형 지역암센터 3개소 등 총 12개소를 지정해 국가암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역별 특성에 따른 암관리사업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지역단위 암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국가암검진사업, 의료비 지원사업, 재가암환자관리사업, 암정보 제공 및 교육, 홍보사업, 완화의료사업, 암환자(생존자) 통합지지 사업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대로 지역암센터가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립암센터와 지역암센터간의 '연계'가 키워드임에도 여러 가지 한계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역암센터의 평가 항목은 항암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등 공동연구내역, 암 진료지침개발 및 암 치료기술 표준화를 위한 협력 내용, 지역암센터로의 환자의뢰 및 재의뢰 현황, 암 정보 인프라 구축 경과사항, 암 전문 인력 양성 교육  참가인원 중 지역암센터 참가인원 수 등인데 이 항목들 모두 저저한 점수를 받고 있다.

서울의대 유근영 교수는 "지역암센터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정부가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원이 없으면 지역에 거점을 두는 암병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국립암센터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정부 지원을 늘리는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신규 암병동 증설하고 보장성 확대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환자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선제적 예방 대책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선제적 예방, 맞춤 예방 등이 새로운 키워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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