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 해산과 회장 불신임으로 의협 내분 첩첩산중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와 대의원들의 내분이 '사원총회'라는 또 다른 쟁점을 만나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의협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은 의협 집행부가 요구한 '총파업 재진행' 안건 상정을 거부했고, 노환규 회장에게 더 이상 대정부 투쟁의 수장을 맡길 수 없다는 뜻으로 노 회장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제외시켰다.

여기서 종료되는 듯 하던 상황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대의원들의 반격에 노 회장은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임총 직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했던 것. 회원 2만 4847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85.76%가 총파업 재개에 찬성했으며, 노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78.67%라고 발표했다. 

대의원들은 뒤통수를 맞은 황당한 상황이었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노 회장은 대한한의사협회가 썼던 사원총회라는 카드를 집어 들었다. 대의원들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다.
 
노 회장은 "4월 27일 정기 대의원총회가 열리기 전인 26일 5시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사원총회를 열어 협회의 중요 권한이 회원에게 돌아가도록 의협 정관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현재의 의협 집행부는 회장-의장, 상임위-대의원 운영위원회로 분산돼 있어 긴급한 사안이 있어도 의협이 16개 시도의사회 회장을 통제할 권한이 없어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사원총회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또 "회원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채 대의원의 일부 정치적 인사에 의해 회무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의협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은 갑작스런 노 회장의 반격에 놀랐지만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대의원 자신들이라는 점에서 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사원총회는 노 회장과 대의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걸고 벌이는 볼썽사나운 이전투구가 되고 말았다.  

사원총회란?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비영리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이다. 현재 의협의 최고 의결기구는 대의원총회라 사원총회를 개최할 수 있는 근거는 미약하다. 하지만 의협 집행부는 의료법과 민법에 근거해 사원총회를 추진하고 있다.

의료법 제28조(중앙회와 지부)는 '중앙회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민법 중 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돼 있다. 의료법에는 중앙회의 사원총회 규정이 없으므로 민법을 따르게 돼 있다. 민법 제68조는 '사단법인의 사무는 정관으로 이사 또는 기타 임원에게 위임한 사항 외에는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와 함께 제42조(사단법인의 정관의 변경)는 사원총회를 통해 의협의 정관을 변경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제공하고 있다.

 

"정부 대응 전략은커녕 내분으로 자멸할라"

노 회장이 사원총회를 열겠다고 발표하자 대의원들은 노 회장이 100년 의협의 역사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서울의 한 대의원은 "정관에도 없는 사원총회를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정관을 무시하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될 것이다. 100년 역사를 가진 의협에서 정관도 무시하고, 대의원도 무시하면 앞으로 어쩌자는 것이냐"며 "긴급 설문조사에도 문제가 있다. 노 회장은 대의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 회장은 너무 독선적이다. 다수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면 뒤집고, 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집기를 계속 반복해 의협을 내분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의협은 이제 정부 대응 전략을 세우기는커녕 내분으로 자멸하게 생겼다"고 꼬집었다.

지방의 또 다른 대의원은 사원총회는 의협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노 회장의 악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 회장이 말한 대로 의협 회장이라는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패가 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원격진료를 막는 것이 의협 집행부가 해야 하는 일인데 지금 와 뜬금없이 대의원들의 권한을 막겠다고 사원총회를 들고 나온 것은 최악의 패를 뽑아든 것"이라며 "노 회장은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10만 의사를 끌고 갈 수 있는 리더는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조직에서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도 듣고 또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의 얘기도 들어야 하는데 노 회장은 전혀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 조직을 끌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의협 감사단의 한 인사도 노 회장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감사의 입장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노 회장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다"며 "노 회장이 사원총회를 결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을 아꼈다.

또 다른 대의원은 "노 회장은 회장직을 걸고 막바지 투쟁을 하고 있다. 만약 법적 공방으로 가면 2년간 의협은 공백상태가 된다. 지금은 회원들을 아우르고 화합하고 가야 하는 중요한 상황"이라며 "대의원들을 물러나라고 하고 내부개혁의 대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협의 대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집행부 승인 없이는 새로 꾸리는 비대위도 유명무실해진다. 대의원회 임총에서 노 회장을 비대위에서 배제하기로 했지만, 고문 자격으로 참여시키게 하고 의협 상임이사 4명을 비대위에 참석하라고 결정했다"며 "이런 배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사 결과도 파행시켜 회원들 간 분란만 초래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원총회는 소모적 논쟁만 불러"

사원총회가 대의원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2일 저녁 긴급회의를 열고 3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의료현안 저지에도 촌각이 아까운 이 시기에 회원 간 분열을 조장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는 사원총회를 반대한다고 했다.

협의회 측은 "지금 현재 전체 회원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독단적인 회무를 지양하고 내부 분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며 "우리의 충정이 왜곡되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시도의사회장은 "앞으로 회장단 명의로 이메일, SNS 등으로 회원들에 적극적으로 알리자고 했다. 개개인 이름으로는 공격의 표적이 돼서 회장단 이름으로 내기로 했다"며 "회원들도 마냥 선동되는 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노환규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보다 멀리 바라보면서 의협의 단결과 화합을 도모해도 정부와의 협상에서 이기기 힘들다. 앞으로 한달간은 엄청난 싸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대의원은 "앞뒤 안 맞는 행동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시도의사회장단도 벌써 2년 넘게 참았다. 회원들 간 단합을 위해서 참았을 뿐, 이제 더 이상은 가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일 열린 회의에서 노 회장을 불신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오간 것으로 보아 시도의사회장협의회가 언급한 극단적 선택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회의가 있기 전 몇몇 대의원은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노 회장이 사원총회를 개최하기 전에 의협 회장의로서의 업무를 정지시키거나 또는 구상권 청구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방 한 대의원은 불신임 동의안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의원·젊은의사 극명한 대립

사원총회 개최에 대해 대의원들과 노 회장을 따르는 젊은의사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의원들이 업무정지 등의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은 오히려 대의원들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개원의는 "이번이 대의원들의 행패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의원들이 의협을 위해 하는 것이 뭐가 있다고 권한을 주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사원총회의 안건을 대의원회를 없애고 직선제로 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대의원들은 자기 이익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의사회나 상임이사회 등 유명무실한 그런 조직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권한을 나눠가지고 있다"며 "사원총회를 통해 민초들의 의견을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정관을 바꿔야 한다"고 제기했다. 

노 회장이 사원총회라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은 한의협이 이 방법으로 어느 정도 집행부가 이루려고 했던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의협 집행부와 젊은 의사들은 한약첩약 급여화가 임총에서 결정되자 이에 반발했고 대의원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원총회를 결정했다. 현재 의협의 모양새와 너무나 닮아 있다.

이후 진행된 한의협 집행부와 대의원들의 싸움은 의협의 내일을 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한의협 집행부는 지난해 9월 8일 사원총회를 열어 대의원 의장단과 감사를 해임한다는 등의 안건과 대의원회를 거치지 않고 회원들이 직접 의견을 처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안건을 올렸다.

하지만 정족수 미달로 이 안건들은 처리되지 못했다. 동시에 한의협 대의원들은 법원에 집행부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현재 사원총회의 의결 사항은 효력이 중지된 상태다.

한의협 측 관계자는 "사원총회 때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됐던 회원들의 직접적인 참여는 이번 정총에서 통과됐고, 보건복지부 승인만 거치면 된다"며 "앞으로 대의원총회에서의 대의제도를 유지하면서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회원이 직접 회무에 반영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수시로 회원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회원들의 의견이 직접 한의협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정관을 고쳤지만 한의협은 사원총회를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의견도 있다. 집행부와 대의원들간의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이고 세대갈등도 심해졌다는 것이다.

사원총회, 노 회장의 '패착'될 수도

한의협이 회원이 직접 회무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정관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의협도 같은 결과물을 얻을 것이라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의협보다 의협이 훨씬 큰 조직이기 때문이다.
민법 제75조(총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사원총회에 나온 안건은 과반수 출석과 출석사원의 과반수 찬반으로 결의된다고 돼 있다. 현재 의사는 약 11만 5127명으로 과반이라면 5만 7564명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26일이라는 촉박한 시간도 그렇거니와 5만 7564명 이상이 한 곳에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론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제73조(사원의 결의권)에 따르면 서면이나 대리인으로도 결의권을 행사할 수 있어 위임장을 제출하면 직접 참석한 것과 같이 된다.

지방의 시도의사회장은 "11만명의 과반수 이상의 회원들이 참석하는 것도 어렵지만, 결정이 됐을 때 대의원회를 보류시키는 것은 변호사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며 "법리 해석상 대의원도, 감사단도, 회장도 새로 뽑는 상황이 되는데, 한의사협회도 법적 공방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일 26일 상암운동장에 회원 과반수 이상이 참석한다고 해도 정관개정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 남아 있다. 민법 제42조에 따라 사단법인의 정관을 변경하려면 총사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전체 의사의 7만 6751명이 찬성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시도의사회장은 "노 회장이 회원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대의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지, 중앙집권식으로 사원총회가 성공할지는 모르겠다"며 "법적 다툼으로 해서 할 것인지, 한의사협회처럼 2년 이상 싸울런지, 불신임안이 나올 건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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