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집행부 후폭풍 가능성, 사분오열된 마음 모으는 숙제 남아

 

과반수가 넘는 의사들이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진행했던 2차 협상안을 받아들임으로써 24일 예정됐던 총파업은 유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일 정오 의협은 2차 총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회원투표를 시행한 결과 '의정 협의결과를 수용하고 투쟁을 유보 한다'는 의견이 62.16%, '협의안을 불수용하고 총파업을 강행한다'가 37.84%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표에는 의사회원 9만여명 중 4만1226명이 참가해 총파업 유보에 2만5628명, 총파업 강행에 1만5598명이 손을 들었다.

이날 의협 노환규 회장은 "총파업 철회가 아닌 유보다. 앞으로 정부가 의정 협의결과를 잘 지켜나가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며 "총파업 철회는 정부가 원격진료, 투자활성화 대책을 철회할 때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진료가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한 후 정책이 폐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국민들께 가장 죄송하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났고, 이를 막으려고 의협에서 일어선 것이다. 정부가 이를 사과해야 하나, 이에 앞서 의협도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일단 의료계가 집단휴진이라는 극한 상황을 피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2차 협상과정에서 복지부와 의협이 이면합의를 했다는 소문에서부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공익위원 구성에 대한 잡음, 전공의 처우개선에 대한 대한병원협회의 반대의견 등 투표를 종료하는 날까지 시끄러웠다. 건정심 공익위원에 대해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내면서 의협이 정부와 협상을 잘못했다며 투표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전문가들은 이제 의협이 그동안의 과정을 찬찬히 돌아보고 또 어떤 것을 얻고 또 잃었는지에 대한 복기가필요한 시간이라고 조언한다.

복지부, 아낌없이 줬다는데 의사는 뭘 얻었나?
 
개원의들은 이번 투쟁을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할까? 답은 'NO'다.

의정 2차 협상에서 민초의사들은 실질적으로 얻은 것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비인후과의사회 신창식 전 회장은 "수가제가 언급되긴 했지만 우리 쪽에서 가져가는데 돌려주거나 회복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만관제나 1차의료 활성화에 쓴다고 했다. 우리 것 가져가서 남에게 퍼주는 것"이라며 "어느 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개원의는 "원격진료는 시범사업 후 복지부 뜻대로 할 것이 뻔하고, 투자활성화도 복지부 그림대로 움직임 것이고, 투자활성화는 중소병원에 해당하는 일"이라며 "결국 10일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이 기대할 것은 건정심 공익위원을 바꾸는 것 정도인데 이 또한 복지부와 의협의 얘기가 다르다. 성과를 무엇으로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의사들이 얻은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는 반면에 복지부의 생각은 다르다.

의협이 원하는 원격진료 시범사업, 건정심 구조의 합리적 개선, 1차 의료발전협의회에서 논의됐던 규제 등을 모두 해결해줬다는 반응이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모두 주었다는 것이다.

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가 사회적 변화에 맞게 건보제도 등을 변경시켜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의사들의 불만이 컸다. 하지만 앞으로는 의사들이 현업에서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협의안에 의사들의 요구를 충분히 담았다. 앞으로 상호협력을 통해 국민건강에 기여하자"고 말했다.

건정심 공익위원 변경 변수는 없을까?
 
의협 집행부는 건정심의 공익위원의 구성을 바꾸게 된 것을 성과로 판단하고 있다. 제도개선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20일 파업 결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노 회장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으로부터 "16일 의정 협의 결과문에 명시된 사항을 존중하며, 이를 상호협의 하에 이행해 나갈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공개 발표, 의정협의 결과 발표후 계속됐던 건정심 구조에 관한 논란도 해소했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협 집행부의 성과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단순하게 기분에 취해있을 때는 아니라는 조언도 함께 나온다.

의료계 한 인사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나 정부는 의사들의 파업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파업을 막아야 했을 것"이라며 "복지부는 앞으로 시민단체나 환자단체 등의 강한 항의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그때 상황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협에 비해 잃은 것이 없는 복지부가 건정심 공익위원 구조에 대해 모두 알면서 의협의 파업을 막기 위해 선물을 주듯 준 것"이라며 "복지부가 나중에 말 바꾸기 한 것도 시민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을 하니까 마치 몰랐다는 듯이 얘기하는 것이다. 의협이 마치 새로운 것을 얻어낸 것 모양 기쁨에 취해있는 것은 웃긴 일"이라고 비판했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도 사안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복지부가 건정심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 당장 법을 바꾸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복지부는 행정부라 그런 힘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건정심 구조를 바꾸려면 국민건강보험법을 바꿔야 하는 등 법개정사항의 절차가 필요한데 복지부가 자신들의 권한 이상의 약속을 의협에게 했다"며 "실제 건정심 구조가 변경될지 어떻게 될지는 국회에 가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는 의협에 속지 않으리~

의협이 전과 다르게 의료수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원격진료와 의료 영리화 반대 기치를 내걸면서 한동안 보건의료단체와 심지어 보건의료노조까지 손을 잡으면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의협이 2차 협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잠시 동안의 밀회는 끝났다.
 
 

그리고 또 다시 과거처럼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려는 집단이라는 맹비난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원색적인 단어들이 그대로 적힌 성명서가 우후죽순 발표됐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6개 건강보험가입자포럼, 보건의료노조와 경실련, 인의협 등이 일제히 의협을 비판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의협은 의료민영화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집단휴진을 강행했고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런데 이번 합의결과는 정부와 갈등을 유도해 의사들의 이권만 챙겼다"며 "의협의 파업 본질은 의료민영화 반대에 있지 않음이 명백해졌다. 의협의 실리 확보를 위한 요구사항 관철이 파업의 일차적 목적이었으며 합의결과가 이를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고 강한 비판을 했다.

민주노총도 가세했다. 2차 의정합의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특히 건강보험 수가결정 및 건정심 구조개편 등 국민건강이 아닌 의협의 이익만을 반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민노총은 "건정심 구조개편은 사회적 논의구조의 근간을 위협하고, 공급자단체의 영향력만 강화하는 개악"이라며 "현재 건정심에 유일하게 의협만 2인이 참여하는 게 '공정한 거버넌스'인지 먼저 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의협 집행부의 편협한 협상을 현장 의사들이 바로잡아야 한다"며 "만약 인술이 아닌 상술의 길을 선택한다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의 내홍은 누가 수습하나?

 

파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됐지만 지난해부터 의협 집행부는 심한 내상을 입었다. 노 회장을 지척에서 보좌하던 이용진 기획부회장, 이상주 보험이사, 이주병 대외협력이사, 박용언 기획이사 등이 노 회장 곁을 떠나겠다고 사직서를 냈다.

또 노 회장은 끊임없는 불협화음으로 지역 의사회장들과도의 관계도 껄끄러워졌다. 몇몇 지역의사회장들은 중심으로 이제 노 회장으로는 더 이상 의협을 끌고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해 의협 집행부 사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해부터 긴 파업 과정을 거치면서 각 직역에 있는 의사들이 사분오열됐다는 점이다.

의협과 대한병원협회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고, 대학병원 등과 개원가의 미움과 반목도 커지고 있다. 또 10일 파업에 참여했던 지역의사회와 참여하지 않았던 지역의사회와의 파열음도 생겨났다. 어느 곳 하나 관계가 원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 

노 회장의 또 다른 고민은 그의 지지기반이었던 전의총과 의원협회 회원들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느냐다.

또한 24일 총파업에 적극적이었던 회원들은 의사의 힘을 보여주고 의료개혁을 통해 또 다른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들도 있다.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노 회장의 고민이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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