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병원 신임 김명문 기획마케팅팀장(가칭)은 소위 10대기업 임원 출신이다. 명문대 출신에 명문기업 출신이라는 화려한 스펙이지만, 그도  짧아진 기업의 정년 수명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해당 기업은 문제없는 퇴사를 위해 취업자리를 알선해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고, 면접을 거쳐 한국대학병원에 올 수 있었다. 

한국대학병원장은 우선 조직 내 만연해있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고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기존 팀장을 해고하고 교체시키고 싶었으나, 사립대학교직원법 상 불가능하다. 노조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할 수없이 새로운 임원을 채용하고 기획마케팅팀을 신설한 것이다. 김 팀장을 통해 병원에서 기업이 하던 별도의 마케팅기법을 적용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대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병원이 생존할 수 있는 탈출구로서 기대보고 싶었다. 전임 기획팀장은 당연히 팀장직이 박탈되고 평직원으로 남았다.  

"잘할 수 있겠지요? 어려운 병원 좀 살려주세요."
"네, 기업에서 연간 수십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하고 전방위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의욕으로 가득했던 김 팀장은 병원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부서에서 쓸 수 있는 예산이 기업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각 팀장들 간 누가 가장 예산 적게쓰는지 내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적은 예산조차 그나마 쓰지도 못하고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업에서는 TV 광고부터 일간지 광고, 각종 캠페인을 펼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경품이벤트로 온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산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없는 예산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도 의료법 상 제약도 많다. 3대 비급여 개선방안이 나오자 병원의 수익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시뮬레이션마저 나왔다. 예산은 더욱 절감해야 한다.

게다가 상품의 마케팅과 사람의 마케팅은 차이가 난다. 상품은 상품에 대해 이해하고 여러 채널로 마케팅이 가능하지만, 병원에서 마케팅이 필요한 사람은 한두명도 아니다. 수백명에 달하는 의료진을 개별적으로 알고 이해해야만 출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기도, 다 알기도 어렵다. 일년에 한 명씩만 만나더라도 한바퀴 돌려면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각자의 홍보마케팅이 필요하면 알아서 나를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
그럴리 없다. 의료진은 모두 바쁘다. 진료에 쫓기고 수술에, 회의에, 각종 활동에, 심지어 논문까지 쓰느라 정신없다.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도 모자른 사람들이다. 게다가 진료실적으로 압박마저 받지 않는가.

김 팀장은 생각한다. '아, 그간의 경험은 병원과는 많이 다르구나. 없는 예산에 발로 뛰는 마케팅이 필요한 곳이구나. 일 좀 편하게 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나도 밖에선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아쉬움이 남지만 정년이 보장되니 참고 다니기로 한다. 그렇다고 팀 구성원들과 즐겁게 다니기도 힘들다. 전임 팀장과도 껄끄럽고, 팀원들도 본인보단 그를 더 따른다.

기업 출신 임원이라고 해서 무작정 능력자일까? 과연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사람을 교체하려는 생각 전 내부 분위기부터 살펴보면 어떨까? 혹시 조직 전체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변화를 줄 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가능하다면 채용이 필요하겠지만, 병원에 필요한 인재상은 화려한 스펙으로만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실패경험'(지면신문 ‘외양간 고치기’)은 과거의 시행착오를 토대로 더 나은 경영전략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실제 실패경험 사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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