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보험,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얼굴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은 그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가져와 결국 전국민건강보험제도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영리자회사 설립이 자유로워지면 부대사업이나 의료법인간 인수합병으로 병원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게 된다. 당연히 비급여 항목을 늘리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로 인해 의료비는 커지게 된다. 비급여 진료비 1%가 증가할 때마다 1000억원씩 진료비가 증가할 것이란 데이터는 2009년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결과도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도달하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도 악화되고 민영의료보험 의존성은 심화된다. 국민은 어쩔 수 없이 민영의료보험에 더 많이 가입하게 되고 전국민건강보험제도는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도 아니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2% 정도로 낮아 전체 가구 80%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또 갈수록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가구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불안감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보험업계가 이미 포화상태에 들어섰기 때문에  사보험 시장을 벗어나 국민건강보험이란 성곽을 깨고 민간의료보험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인 공격을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나영명 정책실장은 "민영의료보험의 역할이 커지고 국민들은 실비보험과 민영의료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건강보험제도를 건드리지 않고도 무너뜨릴 수 있고 결국 건강보험을 민영화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위험할 수 있다는 반응에 대해 정부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1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편의 증진과 의료서비스산업발전 정책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이창준 과장은 "건강보험 강제가입제와 병원 건강보험당연지정제는 유지할 것이므로 국민건강보험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자법인 허용은 영리병원,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발표했다.

민간의료보험 가입 실태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의존도도 점점 커지고 있다. 건보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개인의료보험 현황과 영향 분석'이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국내 개인의료보험시장 규모는 보험료 기준으로 약 17.1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컨소시엄으로 보건의료 이용실태와 의료비 지출 등을 조사하는 한국의료패널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총 7006가구 중 5238가구(75.41%)가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고, 2009년 6277가구 중 4885가구(77.82%)로 증가했다. 2010년에는 5912가구 중 4579가구(77.45%)였다.

가구당 평균 가입 개수는 2008년 3.36개, 2009년에 3.64개, 2010년에는 3.80개로 가구당 민간보험 가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가구당 월평균 납입료 또한 2008년 20.1만원, 2009년 21.7만원, 2010년 23.2만원으로 커지고 있다.

가구 소득별 민간보험 가입률은 2008년과 2009년에는 증가했지만 2010년에는 감소했다. 2010년 기준으로 가구소득이 5000만원 이상인 가구의 민간보험 가입률은 95.6%이었고, 소득 최하위층인 1000만원 미만인 가구는 33.0%로 소득별로 차이를 나타냈다.

 
민간보험 급여 수령의 주된 사유 중 가장 건수가 많은 것은 평균 1.77건의 통원비였다. 약 20.3만원의 수령액을 보였고, 그 다음으로는 입원급여 명목으로 평균 1.66건, 약 284만4000원이었다. 수령 금액을 중심으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장해급여로 평균 4건, 2310만원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수술급여로 평균 1.35건, 약 283만원의 수령액을 나타냈다.

1월 15일 국회에서 '가계동향 분석을 통해 본 가계의료비 지출실태와 민간의료보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포천병원 가정의학과 김종명 과장(정의당 건강정치위원회)은 2012년 가계동향 조사자료에 따르면 사보험의 실제 지출은 월 평균 402만305원이고 가계가 실제 부담하는 사보험료는 월평균 소득이 407만원의 10%에 이르는 지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사보험 지출의 가장 큰 항목이 보장성 보험(생명보험항목)으로 총 30만원에 이르며  사보험의 76%를 차지하고 있다"며 "가계동향조사에는 민간의료보험이 종신보험과 같은 다른 보험이 구별되어 있지 않아, 정확히 가계에서 지출하는 민간의료보험의 규모는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이 시장에서 커질수록 의료이용 약극화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2008~2010년의 추이를 보면 소득간 민간의료보험 가입개수와 월 보험료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의료 불안의 정도와 부담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구매능력으로 인해 민간의료보험을 거의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과장은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소득에 따른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며 "시장에서의 소득격차를 유지, 심화시키는 사보험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세제혜택 등) 대신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는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복지를 강화하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정책위원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의 사회복지제도는 시장에서의 소득격차를 줄이고 소득재분배 효과를 가져와 소득불평등과 사회양극화를 줄이는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보험 구매는 시장소득에 좌우 되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정책위원은 "시장에서의 소득격차를 유지, 심화시키는 사보험 활성화 정책 대신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는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과 민영의료보험 연계?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는 없는 상태다. 보험연구원 이태열 고령화 연구실 실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공·사 보험 역할제고 방안' 세미나에서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의 전반적인 재정에 미치는 악영향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간의료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을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다. 이 실장도 "민간의료보험은 리스크 관리능력을 제고하고 사회적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노인, 취약계층 등에 대한 상품 공급노력이 필요하다"며 "민간의료보험에서 과잉의료의 징후가 있는 계약 및 고객정보를 공공보험에 통보하거나 비급여 부문의 표준화 및 제3자 청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좀 더 적극적인 모색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경희대 정기택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78%가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민영건강보험료를 효과적으로 보장성 강화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교수는 "막대한 민간건강보험료를 건강보험 재원의 한 축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사보험 즉 국민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의효율적인 연계 방안이 모색해야 한다"며 "공사보험을 연계해 본인부담금을 보장하는 실손형 보험을 활용하면 본인부담이 40%에 육박하는 건보 보장체계의 허점을 개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인제대학교 이기효 보건대학원장은 건강보장체계 기본 틀을 유지 및 강화하면서 민간의료보험의 보완 관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 원장은 "공보험의 지속적 확대 및 강화의 틀 안에서 민영보험이 국민건강보장의 기반인 보건의료공급 시스템 또는 보건의료서비스산업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사보험 협력방안으로 보험사기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험사기의 예방과 색출을 위한 실효성 있는 협력방안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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