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의약품공장 자금 모금" 당부 마지막 고국 연설




세계보건의료계의 큰별이 떨어졌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로 유엔산하 최대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2일 61세 한창 일할 나이에 뇌졸중으로 타계한 것이다.
 162㎝ 정도의 작은 키로 지구촌의 건강·보건을 책임지는 업무를 헌신적으로 수행, `유엔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이총장. 유명을 달리한 이날, 한반도에는 하루종일 슬픔을 함께하는 빗방울이 뿌려졌고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UNOG) 유엔기는 조기로 게양됐다.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국제기구, 언론사들도 갑작스런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WHO총회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이 있었으며, 이곳에 참석하고 있는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을 비롯 의약계 단체장들은 조문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지구촌 가족의 건강을 돌봐온 이총장의 인류애가 중도에 멈춰서면서 국가와 국민에게 크나큰 손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총장은 지난 2003년 7월21일 임기 5년의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취임했고 뛰어난 역량과 친화력으로 최근까지 연임이 당연시되는 외교계의 분위기가 있어왔다.
 고인은 취임과 함께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말라리아같은 전염병과 에이즈 예방 사업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조류독감`의 확산방지와 백신개발을 독려했으며, 전세계 금연운동 전개도 보건사업의 핵심으로 부각시켰다.
 특히 지난 3월 귀국시에는 복지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를 개선하기 위해 기초의약품 생산시설자금 1천만달러 모금을 계획중에 있다"며, 참여를 당부하기도 했다. 북한을 돕자고한 이 브리핑이 고국에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이 됐다.
 이총장은 1976년 서울의대를 졸업(30회)하고 춘천의료원(1976~1979)근무후 하와이대학 보건대학원(1979~1981)에서 역학석사를 취득했다. 1983년 WHO서태평양지역 사무처 나병자문관으로 세계보건기구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으며, 질병예방 및 관리국장·본부 백신국장·정책자문관·자원동원 및 대외협력업무담당·결핵국장등 WHO의 요직을 두루 거쳐 국가원수급에 해당되는 사무총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WHO 백신국장 재직 당시 소아마비 유병률을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려 미국의 과학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으로부터 `백신의 황제`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영국 의학전문지 란셋은 `조용한 뇌성(Quiet Thunder)`으로 칭했다. 이 때의 경험이 소아마비 퇴치에 근접했다고 선언하게 됐다. 또 결핵국장 시절엔 북한에 결핵치료제를 공급하는 등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결핵퇴치사업을 추진, 북한 지도부와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세계보건기구 조직과 각종 사업을 활성화시켰던 그는 탁월한 정치력도 인정받았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에 있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2차례나 불러 `굿맨`으로 칭찬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를 포함한 유명인사들로부터 각종 질병 퇴치 기금을 받아내는데도 탁월한 수완을 보여주었다.
 이 총장의 이런 노력은 회원국들의 호응을 받아 유엔 산하 다른기구와는 달리 여유있는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고 또 오는 7월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인 G8(서방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는 의대생 시절 경기도 안양 나자로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던중 봉사활동을 위해 이곳을 찾은 일본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를 만나 의대졸업 3년후 결혼했다. 사무총장이 되어선 가족과 떨어져 제네바 외곽 도시인 니용의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생활해왔다. 돈을 벌려고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사업가의 길로 가라고 할 정도로 돈욕심이 없는 반면 일 욕심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또 테니스광일 정도로 코트를 종횡무진했고 스쿠버 다이빙, 스키, 크로스 컨트리 등도 즐겼다.
 "확신과 열정에 찬사람, 오늘 우리는 위대한 한 인간을 잃었다"는 코피아난 유엔사무총장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낮은 곳을 향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이총장의 모습은 늘 그리워질 것이다. 고인의 장례식은 24일 WHO장으로 제네바에서 열렸으며, 29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사진설명/23일부터 28일까지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1층 1강의실에는 세계를 향한 위대한 인술인생을 살다간 이총장의 명복을 빌기위한 발길이 끊않다.
손종관 기자 jkson@kimsonline.co.kr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