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현실주의 그 자체다"

시계를 녹이고 밀로의 비너스상에 서랍을 관통시켜 버린 범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00년을 넘어 그가 우리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들고온 것은 100년전 그것이 아니
라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것이다. 2000년의 디지털적 상상력을 실현해낸 1904년생 달리의 작
품이 바로 그것. 도대체 달리라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일까. 골
똘히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상상력도 날개를 달고 무한 세계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달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6월 12일부터 9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주)마이아
트링크(대표 이경은·고광곤 가천의대 교수 부인)와 (주)유로커뮤니케이션 주최로 `살바도르 달
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서울, 대구, 부산까지 이어지는 순회전으로 달리의 조각, 회화, 가구, 패션, 영
화 등 340점을 선보인다. 특별전 대다수 작품은 달리의 나이가 60대말에서부터 80대 초반
이었을 때 제작된 작품들로 그의 능숙한 완숙기에 생산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비일상적 환상의 세계로 초대
 1904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달리는 세계적 아트스타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나아가 전위적
인 대중문화 전반에서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 세계를 누비며 삐쭉이는 콧수염과 번뜩이는 재기로 화가, 조각가,
패션과 가구디자이너, 시인, 영화제작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압도하는 비일상적 환상과 상상
의 세계를 표현한 작가이다.
 달리는 20세기의 작가이지만, 그의 상상력이 전통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21세기의 디지털
적 상상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회화, 조각 등 순수미술에서부터 가구, 패션과 보
석 디자인, 영화 등 대중문화까지 모든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며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
증한다.
`상상과 현실` 과연 다를까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연을 묘사하는 과학자이자 창조자로서 예술가를
이해했지만, 예술가에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부추기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상상과 리얼리티의 관계를 마치 그림자와 물체의 관계로서 이해해, 상상으로서
는 눈이 보는 것과 같은 찬란함을 묘사할 수 없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반면 달리는, 다 빈치가 그림자와 물체의 관계로서 이해했던 상상과 리얼리티의 관계를 극
복하고 있다. 의식과 내면세계의 비현실은 달리를 통해 현실로 구현되어, 다 빈치가 우려했던
그림자가 아니라 현존하는 대상 그 자체로 변모되었다.
프로이트 영향으로 `무의식`에 몰두
 달리의 천재성은 초현실주의적 사조의 대표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와 나 자신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이란,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라는 점이다"라고 스스로 언급했듯이, 달리
는 초현실주의의 그 자체이다. 의식의 세계가 중시되는 기존 미술과 다르게, 프로이트의 영향
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도입한 달리의 천재성은 `편집증적 비판 방법(Paranoiac-
Critical Method)`으로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그것은 마치 정상인의 의식을 갖고도 광증을 의도적으로 가장함으로써 광인만이 볼 수 있
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고도의 질서가 잡힌 체계적인 태도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편집증적 비판방법`은 한 존재나 사물이 다른 이미지로 보일 수 있는 이중영상 기법
으로 극대화된다.
 그러나 달리의 천재적 상상력은 단지 초현실주의적 사조에 국한된 것이 아니란 점이 이번
전시회의 초점이다.
 그것은 회화, 조각, 패션, 영화 등 20세기 후반 문화 전반의 장르를 가로질러 세기를 넘어
관통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요지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달리는 분명 20세기의 인간이지만, 그의 상상력은 21세기의 사유방식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적 상상력이라는 점이라 하겠다. 아날로그적 사유방식으로는 불가능한 모
든 상상과 비현실을 달리는 자유자재로 변형시키고 실현시켰다.
 그래서 달리는 21세기 디지털적 인간의 원형이자 기린아로 평가받기도 한다.
조각작품 눈여겨 볼만
 `늘어진 시계`의 도상 창시자로서 알려진 달리가 일반대중의 폭넓은 공감대를 일궈냈던 이유
는, 무엇보다 그의 조각 작품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 보
아야 할 작품들도 그것이다.
 1930년대 초반에는 뒤샹의 `레디메이드(M.뒤샹이 창조한 미적 개념으로 기성품을 일상적
인 환경이나 장소에서 옮겨놓으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하고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
만 남게 된다는 개념. 편집자)` 개념을 적극 받아들이기도 한다.
 전화, 가재의 오브제를 도입한 `바닷가재 전화기`의 작업이 그 레디메이드 작업의 대표적 예
이다.
 일반적으로 달리의 조각은 오브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과 이차원적 회화에 근간을 둔
형상을 입체화시킨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번 전시회의 작품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된
다.
 평면회화에서 출발한 2차원적 형상들은 볼륨, 크기, 질감 등의 변형을 통하여 입체 작품으
로 탄생되었다. 달리의 조각 작품들은 회화 속에서 극대화된 상상의 세계가, 조각이 갖는 3차
원적 특성으로 인해 그 리얼리티가 더욱 실체화·구체화된 효과를 준다.
5개 테마로 꾸며진 특별전
 전시구성은 5개의 테마와 1개의 특별 영상설치 작품으로 연출된다. `꿈과 환상`, `관능성과
여성성`, `종교와 신화`, `초현실주의 가구와 패션`, `달리의 주변이야기`와 달리 작품을 재해석
한 인터랙티브 영상설치 `달리에 대한 경의`가 그것이다.
 ◇꿈과 환상=꿈과 환상은 달리의 작품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로
서, `녹아내리는 시계`와 같은 대표적 이미지를 조각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달리
는 예술만이 무의식에 자유를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꿈이 진정한 자신
의 존재 표현이라는 믿음 때문에 꿈과 환상의 세계를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달리는 `편집증적 비판방법`, 즉 마치 광인이 보는 상상과 환
상의 세계를 체계적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관능성과 여성성=관능성과 여성성은 근간을 둔 여성 형태의 조각 작품과 문학적 소재의
삽화 등에서 달리의 무의식적인 성적 강박관념을 관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밀로의 비너스
상에 성적 상징인 서랍을 관통시킨 대형 조각, 회화에서 등장하는 여성 이미지를 입체화시킨
조각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어린 시절의 여성과 관련된 달리의 두려움은, 부인이자 창조의 여신 갈라와의 만남을 통해
해소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다. 관능적인 여배우의 입술에서 차용한 소프트 조각인 입술
소파, 조각에서 성적으로 중요한 상징인 `버팀목`, 닫혀진 공간에 대해 성적 호기심을 자아내
는 `서랍` 등이 여성 형태의 조각에서 반복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와 신화=종교와 신화에서는, 달리가 구약성경, 고대 유대교의 전설, 그리스·로마 신
화, 단테의 고전작품을 상상력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다양한 조각, 회화 작품들이 선보인다.
 `유니콘`,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과 같은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밀턴의 `실락원`과 단테
의 `신곡`에 일련의 삽화를 그린 회화 작품들이 대거 소개된다. 광범위한 종교적 사상을 섭렵하
여 그 종교적 주제에 매료되었던 달리는, 달리는 평생 종교적 관심과 열정 속에서 새로운 환상
과 비현실의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초현실주의 가구와 패션=응용미술의 영역에서 확장된 달리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달리는 많은 가구를 제작한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날리는데 이곳에서는 달리가 디자인한 소
파, 테이블, 의자, 스텐드와 같은 다양한 가구가 선보인다. 이 일상적 사물들은 초현실적으로
전환되어 다소 애매모호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달리의 작품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국내외의 패션 작품 15점이 소개
된다. 오늘날 최고의 패션브랜드인 폴 스미스, 모스키노, 파코라반, 쏘니아 리키엘 등은 그들
의 상상력의 제한에서 벗어나,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달리의 시각을 재해석해 내고 있다.
◇달리 주변이야기=세계 유명 사진가들이 찍은 달리사진 24점이 소개된다.
 이 사진들은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희극적인 달리의 초상 사진에서부터 다양한 이벤트 현
장에 있는 달리의 모습과 주변 인물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달리가 살았던 당대의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이 사진들을 통해 달리의 자유로운 삶의 한
단면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터랙티브 환상여행=인터랙티브 환상 여행 `달리에 대한 경외`는 영상작가 이한수가 동
양적이고 불교적 시각으로 달리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 것으로서 3D, 애니매이션, 레이저 등
이 사용된 인터랙티브 영상 설치 작품이다.
 달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이 달리 불상과 늘어진 시계, 비너스상, 휘어진 지팡이 등이
함께 등장하는 화면은 관람자를 혼성적이고 기이한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관람자의 몸짓에 다양하게 반응하며, 관람자의 얼굴을 변형·투사시키는 이 작품은 관람자
를 생생한 환상 세계로 이끈다.
 본 전시회 이외에도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이 달리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한 초현실
주의 패션쇼와 달리와 브뉘엘의 합작 영화 `안달루시아 개` 상영, `꿈과 환상`이란 주제로 그
림·사진·감상문 공모전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된다. 전시회 문의 (02)732-5616~7,
www.iloveda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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