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의 자법인 허용에 대해 의료계에서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협에서는 근본적인 저수가 구조 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병협은 찬성하면서 대립각이 형성됐다.
과연 당사자인 병원 입장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투자활성화, 학교법인과 형평성 맞춘 대책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허용이 주내용이다. 외부자본 조달, 연관기업과의 합작투자 활성화, 해외진출 지원 등을 위해 의료법인의 자법인을 허용하게 했다.

그간 학교법인은 자법인 설립이 자유로운 반면, 의료법인은 불가능한 것을 해소했다. 2개의 상급종합병원, 800여개의 중소병원이 의료법인으로, 학교법인과 비교했을 때 부대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는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

대신 자법인의 수행가능사업을 부대사업으로 제한하고 환자 진료에 이용은 금지하게 했다. 수익은 고유목적사업으로 재투자하되, 모법인 출자비율도 제한하게 했다. 부대사업 범위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연구개발, 의료관광, 호텔과 숙박, 서점 등으로 확대했다.

또한 의료법인이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이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경영상태 악화로 폐업하는 병원이 있다면 주민들의 불만을 초래하게 되지만, 합병이 허용된다면 우량 병원과 통합할 수 있다고 봤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보건의료 분야는 우수한 자원이 많이 몰려있어 성장가능성이 무한하지만 규제가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어려운 중소병원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800여개의 의료법인의 규제를 완화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의료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지난 10일 열린 보건의료 투자활성화대책 TF에서는 복지부 차관을 단장으로 복지부, 기재부, 미래부, 산업부, 고용부, 문화부, 식약처 등의 실장급이 참여했다.

복지부 이영찬 차관은 “투자활성화대책은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보건의료의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는 목표가 있다”며 “지난해 의료관광 수입이 1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성장 잠재력 높고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해외환자 유치 등 의료수출 분야과제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병협 김윤수 회장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던 의료법인병원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 등은 개인의료기관, 사회복지법인, 사립학교법인 등 타법인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했다. 동시에 심각한 위기에 처한 848개 의료법인의 경영난 개선을 위한 조치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의협 노환규 회장은 병협은 의료인 단체가 아니며 의사 단체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병원 소속의사와 무관한 병원 경영자들의 단체이며, 이들 중 다수가 비의료인들로 구성됐다고 비판했다.

자법인 허용은 의료영리화, 민영화의 논리에도 불이 붙어있는 상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원격의료 허용과 투자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보건의료산업에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자본이 투입돼 이윤을 추구하고,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명백한 의료민영화정책"라고 꼬집었다.

예시로 들었던 안연케어, 헬스커넥트 어떤 기업?

정부는 세브란스병원의 안연케어, 서울대병원의 헬스커넥트 등을 예시로 들며 자법인이 진료 외에도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주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안연케어는 세브란스병원의 의료기기, 소모품, 의약품 등의 구매를 담당하는 유통 자회사이다. 그러나 사실 상 병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장비를 구매하면서 단가를 낮추도록 유도하거나, 리베이트 의혹의 소지가 발생하곤 했다.

만일 의료가 아닌 외부 투자자본을 받으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제 가격을 받도록 해야 하지만, 이 경우 모법인에는 오히려 손해가 된다. 병원에 필요한 제품의 판매, 유통은 의료 연관기업들과 결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유통자회사, 즉 간납업체로 인한 부당거래, 리베이트 의혹까지 제기되자 지난해 복지부가 병원 유통구조 문제를 개선하고자 했다. 갑자기 투자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유통자회사가 튀어나온 것이 황당하다. 실질적으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법인을 설립해 갑의 횡포를 휘두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업 활성화 명목으로 반강제적인 투자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병원이 업체들에 기부금을 내라는 압박을 행사했던 것처럼, 출자와 공동투자에서도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자법인은 의료기기와 의약품의 유통, 구매 등은 못하게 법으로 막고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관련업체들은 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다른 자법인 예시인 SK텔레콤과 서울대병원의 합작회사 헬스커넥트는 원격의료를 사업 모델로 가지고 있는 만큼 개원의들의 거부감이 상당하다.

한 개원의는 “분당서울대병원이 헬스커넥트를 소개하면서 개원가로 만성질환자를 보내주되, 환자를 대상으로 평소 건강관리 시스템을 같이 사용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병원이 환자를 빼앗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기가 어렵고 자칫 대학병원 산하 의원으로 전락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판 여론을 뒤로 하더라도 의료법인 역시 IT회사와 함께 환자 관리, 환자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병원에 오는 환자 뿐만 아니라 지역을 넘나드는 환자 관리를 위한 사업을 해볼 수 있고, 만약 원격진료가 법으로 허용되면 본격적인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현금 유동성 확보에 도움...의료본질 훼손 우려도

결국 의료법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력으로 무장하거나 구매력이 있는 곳이라면 유통, IT 등 사업다각화를 위한 수익사업을 해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본과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곳은 그저 남의 떡이 된다.

다만 기존 학교법인에서 세웠던 자법인의 예시는 병원-투자업체 동반성장의 측면에서 마땅한 성공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헬스커넥트는 아직 이렇다할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안연케어는 의료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당장의 현금 유동성과 비용절감을 위한 사업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판매 정도에 그치거나 비타민 수액 등을 맞을 수 있는 숙박업 장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 모법인인 병원이 진료 중에 은근히 상품 판매를 강요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의사들에게 판매 실적 줄세우기를 할 우려도 있다.

의료계에서 빗댄대로 택시기사에게 기본요금만 받고 껌을 팔아야 하는 왜곡된 취지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현재 병원의 수익성이 썩 좋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하는 외부 업체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적인 분석도 나왔다.

투자활성화대책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참여할 의사가 있는 병원만 자법인을 설립해 부족한 수익구조를 개선하라는 것으로, 건강보험 틀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의료영리화 등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며 “기존 작은 병의원들도 그저 지역의원에 머무를 생각을 하지 말고 사업다각화를 하고 합병을 하고 규모를 키워 국가경쟁력이 될만한 병원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개원의들은 “의료가 자본의 물결에 휘말리면 동네빵집의 전철을 밟으면서 대기업 의원만 남고 전부 무너지는 구조가 된다. 가뜩이나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자본에 잠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법인의 수익사업 확대로 물을 흐려놓으면 의료의 본질이 왜곡된다. 보다 근본적인 저수가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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