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료민영화 이슈 재점화
의료계도 의료를 '공공재'로 인정해야 하나?

정부 “의료 민영화 수순 아니다”
vs. 의료•시민계 “눈 가리고 아웅”


대한의사협회가 15일 여의도공원에서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개최한 이후 정부와 의료계의 의료 민영화 논란과 의협이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손을 잡은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등에 대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초기 집회 목적으로 원격의료 반대와 의료 정상화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료 민영화 논란만 남아 의료계 내부에서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다. 의협 노환규 회장도 의사궐기대회 이후 여러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의료 민영화 주장을 키워드로 인터뷰를 하고 있어 의료 민영화가 주요 포털의 상위권에 랭크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 등을 두고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하고, 의료계는 의료 민영화라 생각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보건복지부 이영찬 차관이 의료계에 TV 공개 토론을 제안한 후 노환규 회장이 제안을 환영하면서 ‘토론 참석자’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비롯한 지난 13일 발표한 자법인 설립, 부대사업 확대 등 4차 투자활성화 대책 등은 절대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의료는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인데 그동안 이해관계 대립으로 발전을 막고 있던 규제를 푼 것이란 입장이다. 또 보건의료 서비스의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해 일자리를 늘리고 부가가치를 제고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제로섬 경쟁에서 벗어나 해외수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윈-윈' 상황으로 전환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수익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복지부의 주장에 의료계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의료 민영화의 논란이 생각보다 거세지자 복지부가 진화에 나서고 있다. 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법인 자법인은 글자 그대로 부대사업 수행을 위한 것이지 의료업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결코 의료민영화 또는 영리병원과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현재 학교법인은 자법인 설립이나 운영이 자유롭기 때문에 수익사업 수행에 대한 법인간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해 자법인 허용을 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원격의료 반대’•‘의료 정상화’ 이슈는 잠잠
“궐기대회 목적 어디 갔나?” 의료계 내부 ‘어리둥절’


논의의 초점이 의료 민영화의 정의로 옮겨 붙으면서 온라인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의협 노환규 회장은 페이스 북을 통해 "민영화라는 단어는 국가가 운영하던 공공기관을 민간에게 매각 또는 운영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전체 의료기관의 93%가 민간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의료 민영화라는 표현은 엄밀하게 따지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기관이 정부와의 강제계약(요양기관강제지정제)에 의해 공공의료를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구조"라며 "의료 민영화란 단어는 민간의료기관이 맡고 있던 공공의료의 기능을 전면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료 영리화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민간의료기관이 93%라고 해서 공공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게 한양대 의료사회학과 신영전 교수의 주장이다.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의 역할을 늘리느냐 또 그 권한을 누가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복지부 등이 하는 행태는 분명 의료 민영화 방향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권한을 대자본이나 대기업 등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오래 전부터 요구해 온 것을 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만일 의료 서비스를 공공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면 지금의 논의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의료 서비스를 두고 헤게모니 게임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정책위원장은 "의료나 철도 등은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돈이 되든 안 되든 운영돼야 하는 서비스"라며 "현실적으로 93%의 민간의료기관이 제대로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돈 있는 사람들의 논리로 요양기관강제지정제 등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일어나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 = 공공재 인정? “돈 벌지 말자는 거냐”
 
의료계 내부로 의료 민영화를 두고 시끌시끌하다. 15일 의사궐기대회를 연 것은 원격의료와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세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집회 이후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17일 민주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집회에 참석한 많은 회원이 당황해하고 있고, 참석하지 않은 회원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며 투쟁의 본질이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민주의사회는 "의사들이 생각하는 의료 민영화와 시민들이 생각하는 의료 민영화의 본질은 다르다"며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며 의협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은퇴한 한 의대교수는 "전공의, 전임의, 봉직의 등의 숫자만 합쳐도 전체의 40% 이상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들을 끌어 안고 전체 파이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한다"며 "보건의료노조의 공공성 확립, 의료 민영화 반대에 의협이 끌려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변했다.
 
다른 대학의 교수도 "의료계는 현재 병의원이 비영리법인이라는 한계에 갇히고 공공재로 인식하는 것을 반대해 왔다. 갑자기 공공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돈을 벌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며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의협과 보건의료노조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고, 자칫 정치 내공이 상당한 노조에 의협이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당장의 이슈화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하되, 무엇이 다음 세대 의사들에게 유리할지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와 악수 이해 안돼”
당장 이슈 벗어나 장기 안목 필요

 
의협이 보건의료노조와 손잡은 것에 대한 찬반의견도 팽팽하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의료 공공성 강화나 비급여 폐지 등을 요구하는데 의협이 이와 같은 노선을 걷는 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협 한 관계자는 "적정수가로 가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간 보건의료노조와의 갈등은 따지고 보면 쓸데없는 것"이라며 "그들의 월급을 올려주려면 결국 병의원에 이익이 많이 남아야 한다. 편법을 쓰지 않고 적정진료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면 '적정수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의사들이 바라는 바와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바라는 바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 궐기대회 때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도 같은 맥락의 얘기를 한 바 있다. 유 위원장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긴 시간 동안 서로 갈등하고 이해하지 않았는데 결국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을 원하면서 다르게 말해 오해가 생긴 것 뿐이다"라며 "이번 궐기대회를 계기로 서로의 목적을 충분히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의료 공공성 확대도 보건의료노조와 의협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는 이미 진주의료원 때부터 공감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의료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같은 톤으로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협과 보건의료노조가 같은 목소리를 내면 적정부담, 적정급여, 적정수가의 논리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신영전 교수는 "20년 전부터 적정부담과 적정수가의 문제는 논의돼 왔다"며 "결국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정부가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병원계는 다른 생각…“영리 활동 숨 터 줘야”
“현 수가체계론 수익 못 내…해외환자 유치 준비에 도움될 것”


한편,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대한병원협회의 찬성은 물론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서 의협과 대립각을 세웠다. 현재 같은 수가 체제에서는 수익을 거둘 수 없는 만큼 새로운 판로 개척, 해외진출 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들병원 이상호 이사장은 "현재 건강보험 체계에서는 모든 의료행위가 저수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대로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수도 없다"며 "외국인 환자만큼이라도 자유수가로 책정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영리활동을 할 수 있는 별도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면 의료기관의 경영을 돕고 진료비에 의존하지 않도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의 우려대로 자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쌓으면서 의료수출을 하고 해외환자를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 병협 회장인 세계병원연맹 김광태 회장도 "한국 의료가 우수하고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병원을 운영해 부를 축적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지금부터라도 준비해 다음 세대에서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정부에서도 기대감으로 들떠있다. 당장 내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의사 연수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위상 제고는 물론 의사 1인당 3000달러의 연수료도 받는다. 이후에 중동에서의 추가적인 환자 유입도 기대되면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중동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일선 개원의 중에서도 의협과 달리 투자활성화 대책에 찬성하는 입장이 많다. 전문병원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 일부 개원의가 이를 정부와 수가 탓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새로운 판이 짜여 지는 지금 이야말로 일선 개원의가 해볼 수 있는 일이 많다. 커다란 변화의 흐름에서 어떻게 대비하는지에 따라 5년, 10년 뒤의 격차가 상당해질 것"이라며 "목마른 자가 바닷물이라도 마시듯, 현실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주문했다.

찬성하는 개원의들은 “원격의료, 영리병원 반대 외에 다른 것은 문제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며 “왜곡된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지나친 관치의료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환자안전, 국민건강에 직결된 일이라는 여론으로 끊임없이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의사들의 귀족 투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의료민영화에 빗대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이슈화를 기회로 삼아 의료계가 주장하는 바를 더욱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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