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도 '홍수'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가이드라인들이 발표된 가운데, 올해 역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가이드라인들이 발표됐다. 지난해의 화두가 '맞춤치료'였다면, 올해는 여기에 '근거 중심'이라는 핵심이 더해졌다. 이는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이다.

국내 가이드라인, 근거기반 변화
▶ 고혈압 진료지침 업데이트, 692호
▶ 당뇨병 진료지침 업데이트, 693호
▶ C형간염 가이드라인, 697호

국내 가이드라인에서는 선굵은 변화들이 엿보인다. 대한고혈압학회와 대한당뇨병학회는 각각 추계학술대회에서 업데이트된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고혈압 진료지침은 2004년 이후 10여년 만에 개정된 것으로 질환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전환했다. 기존 수축기·이완기혈압 기준만으로 고혈압을 정의하던 것에서 심혈관 위험요소, 표적장기 손상, 동반질환 등 환자들의 임상적 특정을 종합해 전체적인 심혈관 위험도를 분류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생활습관개선 및 약물요법의 전략을 결정토록 했다. 그리고 치료접근 방식을 표로 제시해 임상 의사들이 쉽게 적용해 치료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치료약물에서도 ACE 억제제, ARB, 베타차단제, 칼슘차단제, 이뇨제 등이 관련 근거에서 비슷한 수준의 혈압 강하효과를 보이는만큼 약물 중 환자의 임상적 특성에 맞는 약물을 사용하도록 했다. 또 특수질환이 동반된 고혈압 환자의 혈압목표에 변화를 줬다는 점도 주목을 받았다.

2년만에 개정된 당뇨병 진료지침에서는 치료기준 당화혈색소(A1C)부터 치료 알고리듬까지 주요 부분에 변화를 줬다. 기존 진료지침에서는 단독약물 치료를 A1C 8% 미만으로 설정했지만, 이번 진료지침에서는 6.5% 이상으로 방향성을 바꿨고, 병용요법을 위한 기준도 8~10%에서 7.5% 이상으로 변경해 적극적인 치료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알고리듬에서도 환자 특성에 맞게 다양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독약물에서도 우선된 1차 약물로 메트포르민을 권고하지 않았고, 다양한 약물들을 선택할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병용요법, 3제요법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부분과 인슐린 치료전략을 단일요법부터 3제요법 중 어디에서도 의사의 판단 하에 사용하도록 한 부분도 특징이다.

인슐린 외 약물들의 설명에서도 저혈당혈증 위험도와 체중증가 여부도 새롭게 정리했고, DPP-4 억제제인 삭사글립틴, 리나글립틴, 제미글립틴, 알로글립틴과 GLP-1 수용체 작용제인 리라글루타이드와 엑세나타이드 QW를 사용할 수 있는 약물로 추가했다.

C형간염 가이드라인도 10년의 공백을 두고 업데이트 된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환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치료를 시행하도록 해 모든 C형간염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치료전략에서는 환자의 특성 별로 알고리듬을 제시했다. 표준치료전략은 페그인터페론 알파와 리바비린 병용요법이다. 하지만 유전자 1·4형 만성 C형간염은 48주를 표준 치료전략으로, 2·3형일 경우에는 24주를 표준치료 기간으로 설정했다.

알고리듬 내에서는 치료반응과 치료경험 여부에 따라 단축치료도 고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유럽간학회(EASL) 가이드라인에서 강력하게 권고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단축치료 후 재발 위험성이 제시됐지만 24주와 48주 치료전략을 비교한 국내연구에서 24주 치료군 중 재발했을 때 추가적으로 24주를 치료한 군과 48주동안 지속적으로 치료군 간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가이드라인에서는 6개월 추가치료로 인한 혜택이 환자 부담보다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한편 급성 C형간염의 경우에는 진단 후 8~12주까지 치료를 연기해 자연관해의 가능성도 평가할 수 있다고설명했다.

해외 가이드라인, 변화에 따른 논란
▶ACC·AHA 지질 가이드라인, 696호
▶DSM-5, 672호

미국심장학회(ACC)·미국심장협회(AHA)의 새로운 지질 가이드라인은 지질 관리에 대한 큰 틀 자체를 흔들었다. 특히 이번 가이드라인이 세계적으로 지질관리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2004년 NCEP ATP 3차 업데이트 보고서의 후속편이라는 점에서 여파가 클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가장 큰 변화는 타깃 LDL-C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부분이다. 가이드라인 위원회가 제1순위로 강조한 부분은 '근거 중심'으로, "목표치 효과에 대한 무작위 대조군 임상연구(RCT)의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존 LDL-C 70mg/dL이나 100mg/dL을 타깃으로 치료했을 때 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예방효과에 차이가 있는지를 밝혀준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비스타틴계 약물 역시 ASCVD 위험도 감소효과를 입증한 연구가 없고, RCT도 많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권고하지 않았다. 스타틴 치료전략의 효과를 강조한 부분은 동일하다. 단 환자 그룹에 따라 스타틴의 강도를 조정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4개의 그룹은 △ASCVD 환자(2차예방) △LDL-C 190mg/dL 이상(1차예방) △40~75세 연령대로 LDL-C 70~189mg/dL인 당뇨병 환자(1차예방) △40~75세로 ASCVD 또는 당뇨병이 없으나 LDL-C 70~189mg/dL이면서 10년내 ASCVD 발생위험이 7.5% 이상(1차예방)인 이들이다. 스타틴의 강도는 1일 용량으로 LDL-C 평균 50% 이상 감소를 고강도로, 30~49%를 중강도, 30%미만을 저강도로 분류했다.

한편 10년 내 ASCVD 발생 위험도 평가방법도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브리검여성병원 Paul Ridker, Nancy Cook 박사팀은 "새 ASCVD 위험도 평가방법이 환자의 위험도를 너무 과도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클리브랜드클리닉 Steve Nissen 박사는 "새로운 ASCVD 평가방법은 이전에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에 독립적인 타당성 평가가 진행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나이와 인종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DSM-5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년만의 개정인만큼 수정사항도 많아 발표 전서부터 관심을 모아왔다. 대표적으로 자폐증의 경우 아스퍼거증후군, 아동기붕괴성장애, 전반적발달장애와 함께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정의됐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소아기에서부터 시작해 일부 성인기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더해졌다. 우울장애 챕터에는 분열적 기분조절장애와 월경전 불쾌감장애를 추가했고,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 후 2개월까지 나타나는 우울 증상을 주요 우울삽화에서 제외하는 사별배제 항목은 삭제했다.

이외 강박관련장애 챕터를 신설했고, 물질 남용과 의존을 '물질관련 및 중독 장애'로 묶었으며, 경도인지장애 항목을 신설했고, 폭식장애도 정식진단명으로 승격했다. 큰 변화들이 있었던 만큼 반대여론도 따라왔다. 그 중 이번 개정이 유병률을 크게 증가키시고, 과잉치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미국 듀크대학교 Allen Frances 교수는 "새로운 진단기준에 따르면 평범한 슬픔은 주요우울장애로, 노화로 인한 건망증은 경도신경인지장애로, 짜증은 분열적 기분조절장애로, 과식은 폭식증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고, "이미 과잉진단율이 높은 ADHD는 성인에게도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년간 ADHD 발생률은 3배, 양극성장애는 2배, 자폐증은 20배나 증가했고, 5판의 진단 기준을 적용하면 위양성률과 불필요한 치료율은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심리학회 임상심리학분과(DCP)도 DSM의 분류체계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원(NIMH) Thomas Insel 원장 역시 공식 블로그를 통해 DSM-5의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국정신회건강의학회(APA)는 이런 문제지적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APA는 "DSM은 진료지침과 달리 진단에 대한 정의에 집중하고 있고, 효과적인 비약물치료전략도 있기 때문에 약물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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