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소통 패러다임 바꿔야 할 때

정부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원격의료 등의 제도를 논의하면서 의료계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은 지난 10월 국민행복의료기획단의 첫 작업인 상급병실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토론회에서였다.

선택진료비 개선과 관련해 대한병원협회 장호근 보험이사는 국민행복의료기획단에 병협 관련 인사가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 보험이사는 "토론회 자리를 만드는 것은 형식적인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정부가 일방적인 제도 개편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병협을 배제한 채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절차상의 문제도 크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지난 4월 만들어진 기획단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즉 3대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됐는데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를 비롯한 보건의료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언론계 등 16명으로 구성됐다. 의료계측은 이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기획단에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기획실장 2명이 포함돼 있다. 일각에서는 병원계 인사를 포함시킨 건 정부가 형식적인 모양 맞추기 아니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병협은 지난 11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추진 중인 선택진료제, 상급병실 제도 개편은 병원계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원점에서 재논의 할 것을 요구했다.

의료계의 이러한 반발이 억지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기획단에 참여한 한 교수는 "병원의 의견이 안 들어갔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이라며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기획실장 두 분이 병협측의 대표로 참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혀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기획실장 두 분이 충분히 의견을 제시했고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병협측이 원점에서 다시 얘기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병원들의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기획단에 두 명의 병원측 인사가 관계하고 있었으므로 의견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의료계, 반복되는 패턴 언제까지?

이번 상황에서 보듯 의료계의 이슈는 항상 정부가 먼저 안을 제시하거나 결정한 후 의료계가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는 패턴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즉 3대 비급여 문제에 대한 해결할 의지를 보였지만 의료계는 손을 놓고 있다 결국 정부가 안을 던지고 나서야 반대한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의료계는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시키지 않고 소외시키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은 의료계도 정부도 '윈-윈' 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안을 제시하고 의료계가 뒤늦게 반대 의견을 모으는 방법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대한의사협회나 병협이 정부와 협상을 할 때 오직 '수가인상'만을 외치다 수가 인상은 커녕 제대로 된 협상 결과물을 제대로 얻은 적이 없다"며 "단순한 논리보다는 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의사소통을 해 정부와 관계 개선도 하고 또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가 정부 정책에 매일 반대만 하는 이미지로 남지 않고 주도적인 상황으로 가려면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화가 요청되는 제도나 이슈에 대해 의료계가 먼저 연구를 하고 이에 대한 결과물을 내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

그는 "의료계는 국민이 불편해 하는 제도나 사항에 대해 복지부보다 먼저 연구를 하고 데이터를 모아 페이퍼를 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며 "비용이나 시간 등에 발목을 잡혀 의료계가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악순환이 연속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현재의 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해야 한다"며 "분리된 복지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현재와 같은 대립적 관계는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사들 불평만하고 데이터 제출에는 무관심

서울의 한 공공병원장은 의협이 정부보다 먼저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2000년도에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정부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료정책연구소가 연구비용이 부족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운영하는 연구소에 비해 연구의 정보나 질에서 게임이 되지 않아 정부보다 먼저 페이퍼를 만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묻자 그는 의료계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어떤 연구들이 정부 발주로 진행되는지 촉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연구자들을 찾아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데이터를 전달해야 그나마 어려운 의료상황이 반영된 연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의료계가 매번 같은 패턴으로 정부와 부딪히게 되는 것에는 개원의사들의 이기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수가나 의료환경의 열악해진다고 매번 불만불평만 늘어놓을 뿐 실제 의협이나 병협 등이 연구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요구하면 제공하는 병원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의 모 병원장은 "의사들의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의사들은 자신이 해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습성이 있다. 자신이 해 보고 안 되는 것을 깨달아야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협이든 병협이든 무언가를 진행하려고 할 때 협조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의협은 부족하지만 연구를 위해 회원들에게 비급여를 포함한 경영자료를 요구하면 개원의들은 불만만 애기하고 정작 필요한 데이터는 내놓지 않는다"며 "동네병원이 어렵다지만 정작 아직까지 동네병원 경영 데이터가 없는 것이 그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표준의원(표본의원)'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역별, 진료과별로 표준의원을 만들고 비용은 제공한 후 표준의원은 병원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제공해 과연 현재 의원들의 경영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회원들을 설득하지 못해 좌초되는 사례는 많다고 한다. 만성질환관리제도 의료계가 먼저 정부에 제기해 놓고도 정작 개원의들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정부 주도로 넘어가 엉망이 됐다는 것.

그는 "실행하려는 제도의 필요성을 의협 내부가 확실하게 인지하고 또 의사들을 설득할 수 완벽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으면 회원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며 "의협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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