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들이 더이상 백화점식이 아닌 차별화 전략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기 불황과 포괄수가제, 영상수가 인하, 초음파급여화 등의 여파에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폐지 시행 예고까지 악재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선택진료 수당 삭감은 물론 구조조정설마저 돌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대한병원협회 주최 국제학술대회 KHC(Korea Healthcare Congress)에서는 대학병원 차별화 세션이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자리가 모자라 서서 듣는가 하면, 별도로 녹음을 하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공부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대목동·화순전남대 차별화 비결은?

"여성암을 타깃으로 정했을 때 남성 환자들은 어떻게 하느냐, 여성암에 포함되지 않는 진료과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이대여성암병원 유방암 갑상선암센터 문병인 센터장(외과)은 KHC에서 이대여성암병원이 단기간 내 여성암 전문병원으로서 인지도를 쌓고 여성암 환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게된 배경을 소개했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듯, 암도 여성암과 남성암은 다르다는 생각에서 전문 의료진이 특화된 치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여성암 환자를 위한 차별화된 시설과 진료시스템, 장비, 홍보 등은 부정적인 여론에서도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강력하게 추진한 것을 비결로 꼽았다. 개원 이후 환자수가 급증하는 것은 물론 진료수익도 대폭 늘었다. 현재는 다른 대학병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다른 병원이 잘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우리 병원에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며 " 동대문병원을 통합하면서 국내 종합병원 최초로 외래진료 3부제를 도입하고 평일 저녁 진료를 확대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삼아 환자들에게 만족을 준 노력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됐다"고 밝혔다. 오는 2017년 강서구 마곡지구 제2부속병원 건립을 계기로 세계적인 경쟁력으로 무장한 제2의 도약을 추진 중이다.

화순전남대병원은 '변화, 열정, 그리고 집중'을 주제로 한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지방병원에서도 암센터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포화 상태의 병원은 확장 불가능하다는 예측 하에 쾌적하고 저렴한 전원 지역 화순에 자연친화적 설계를 통해 개원했고, 새로운 인력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활발한 소통문화를 강조해 새로운 분위기 만들기에 성공했다.

내년 개원 10주년을 앞두고 '제2의 도약'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최근 '10년의 성찰, 10년의 전망'을 통해 각 부서별 운영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중장기적인 발전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병원 관계자는 "단기간 내 성공신화를 일군 데에는 암·관절분야 집중화와 치료의 신속화가 큰 힘을 발휘했지만, 앞으로는 의료경쟁력의 '차별화'를 통해 글로벌 병원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며 "향후 평생암관리클리닉과 글로벌 헬스케어 등을 위한 혁신적인 노력을 더해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연구중심병원, 병원 중심 산학연 협력 모델 제시

미래 병원 경쟁력의 화두 중 하나인 연구중심병원도 대학병원들의 관심이다. 특히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된 10개 병원이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KHC에서는 아예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의 병원 중심 융합연구의 미래에 대한 별도세션이 마련될 정도였다.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김청수 원장(비뇨기과)은 "가치(value)중심 경영을 축으로 다양한 전략 목표와 실천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며 "병원을 중심으로 각 연구기관, 기업체 등이 협업하는 모델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 홍성화 연구부원장(이비인후과)도 "오는 2020년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과 산업적 성과에 기여하는 글로벌 선도병원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병원이 HT산업 발전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해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들 병원은 R&D를 주제로 산·학·연·병이 참여하는 각종 심포지엄,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학술교류를 펼치고 있다. 여러 기업체, 기관들과 MOU를 체결함으로써 네트워크를 확장해 의료산업화를 위한 기반 마련에 한창이며, 연구전담의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은 '첨단 의료기술과 융합 네트워크로 새로운 의료가치를 창조하는 Innovation Leader'라는 비전 아래 연구기획, 연구수행, 연구 산업화 및 연구 관리의 각 단계별 기능을 강화하고 연구조직을 재편 중이다. 그동안의 연구성과와 개발 과제에 대해서도 낱낱이 공유하면서 새로운 치료기술을 만들어나가자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병원측은 "마이크로 나노플루이딕스 기반 기술, 표적 압타머 암 치료제, 근골격 재생기반기술 및 면역증강제 기반기술 등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50여 개에 이르는 의료기기와 의약품 제조업체를 개방 플랫폼에 참여시켜 각종 신제품을 개발하고 유통·홍보·판매망 구축에 핵심적인 구심점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수요자 중심의 의료기기 국산화에도 앞장서고, 고려대 기술지주회사를 활용해 자회사를 탄생시켜 직접 상품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전세계 병원들도 '혁신' 중요성 강조

차별화가 가능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전세계 병원들의 주요 경영 이슈이기도 하다.

미국 혁신사례로 꼽히고 있는 미국 가이징거 심장병원 최고의료책임자인 알프레드 카젤은 "펜실베니아 동북부와 중부에 위치한 6개의 병원으로 구성된 통합의료기관으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비전속 보험사를 운영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가입자수는 무려 40만명에 달하고 가입자들의 의료기록은 모두 전산으로 통합관리된다. 연결된 병원에서 통합관리를 하고 각자 병원들이 비용효율적인 진료를 고민하게 된다.

가이징거병원은 산업디자인을 진료 프로세스에 이식, 급성기 병원 서비스와 만성질환 외래환자 치료관리 시스템을 재설계했다. 'ProvenCare' 개념을 도입해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치료 과정에 참여시켜 예방 가능한 합병증과 재입원 보증제를 포함하는 묶음식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불필요한 결정(unwarranted conclusion)'을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치료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떠오르는 병원 중 하나인 인도 아폴로병원그룹의 아누팜 시발 디렉터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모두에게'라는 명제는 의료계의 영원한 숙제"라며 혁신적인 연결 의료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주문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도 IT와 통신의 발달로 지리적 한계를 뛰어 넘는 의료서비스 제공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접점을 찾기 힘든 아젠다,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구조가 걸려있다"며 "그러나 원거리 헬스케어 시스템의 거대한 잠재력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고 있어 'Pervasive Healthcare'로 가는 꿈으로 가는 첫 걸음을 떼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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